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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7권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역사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7권

한일 회담 한일협정, 박정희와 일본 우익의 검은 커넥션

구매종이책 정가15,000
전자책 정가10,500(30%)
판매가10,500

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7권>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제7권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미숙성, 굴욕·저자세, 졸속 처리로 한일협정을 체결했다는 사실과 일본 극우들에게 “형님으로 모시겠소”라며 머리를 숙이고, 검은돈을 받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한일협정을 맺었는지 자세히 살피고, 박정희 정권이 맺은 한일협정이 왜 문제가 되는지, 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지도 분석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 18년을 통틀어 가장 장기간 동안 반대 시위가 일어난 까닭도 살핀다.


출판사 서평

“형님으로 모시겠소”
일본 극우들에게 고개 숙인 박정희
미숙성, 굴욕·저자세, 졸속 처리로 한일협정 체결

과거사에 대한 일본 측 사과 받아내기는커녕
망언 덮어준 박정희 정권

박정희와 일본 우익, 그리고 한일 회담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7권의 주제는 ‘한일 회담 한일협정’이다. 서중석 교수는 이 책에서 박정희 정권이 미숙성, 굴욕·저자세, 졸속 처리로 한일협정을 체결했다는 사실과 일본 극우들에게 “형님으로 모시겠소”라며 머리를 숙이고, 검은돈을 받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한일협정을 맺었는지 자세히 살피고, 박정희 정권이 맺은 한일협정이 왜 문제가 되는지, 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지도 분석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 18년을 통틀어 가장 장기간 동안 반대 시위가 일어난 까닭도 살피고 있다.
“박정희는 만주 인맥에 의존해 한일 회담을 타결하려 했고 한일 관계를 심화시키려 했으며 경제 건설을 하고자 했다. 이것은 1964년, 1965년에 엄청난 규모로 시위가 일어나게 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아울러 박정희 집권기에 널리 사용된 ‘친한파’, ‘반한파’도 박정희 정권 때 한일 관계가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의 만주 인맥과 그 뒤를 이은 군국주의자들은 유신 체제 지지·지원에 멈추지 않고 전두환·신군부 체제의 출현과 존속을 적극 지원하고 지지했다.”

군사 정권의 미숙함, 무경험, 경솔함, 독단, 독선

한일 관계는 참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문제다. 옛날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그렇다. 해방 후 한일 관계의 분수령 중 하나가 일반적으로 한일협정으로 불리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가로놓인 문제들의 상당수가 한일협정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도 차분히 되짚을 필요가 있다. 미국은 중국과 소련에 대항하여 한?미?일 3각 안보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한일 국교 정상화를 강력히 요구했고, 정통성의 취약점을 경제 개발로 만회하려는 박정희 정권은 이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런데 한일 회담은 이승만 정권 때도, 장면 정권 때도 있었는데 왜 박정희 정권 때 대규모 시위 또는 반대 활동이 전개됐을까? 1964~1965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은 특히 시위가 많이 일어났던 박정희 정권 18년을 통틀어 가장 장기간에 걸쳐 전개됐고, 1979년 부마항쟁을 제외하면 그 규모도 대단히 컸던 시위·반대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큰 시위, 반대 운동이 2년에 걸쳐 벌어졌다.
이처럼 큰 저항에 직면한 이유는 군사 정권의 미숙함, 무경험, 경솔함, 독단, 독선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정희가 취한 태도와도 관련돼 있었다. 일본에 보인 굴욕적 저자세, 졸속 처리하려는 태도 같은 것이 학생과 국민들에게 큰 반감을 샀던 것이다.

과거사 사과 받아내기는커녕 망언 덮어준 박정희 정권

전 국민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1965년 2월 20일 한일기본조약이 가조인되었고, 6월 22일 일본에서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되었다. 가장 중요한 일본의 사죄는 어물쩍 넘어갔다. 시이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상은 “한일 양국의 오랜 역사 가운데 불행한 기간이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로서 깊이 반성하는 바이다”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박정의 정권이 가장 매달렸던 청구권 자금도 문제가 참 많다.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문구는 두고두고 피해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이와 관련해 하나 더 생각할 문제는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원폭 피해자, 사할린으로 끌려갔다가 그곳이 옛 소련 땅이 되면서 돌아올 길이 막막해진 이들의 문제는 한일 회담 과정에서 논의되지도 않았다. 이렇게 버림받은 사람들의 문제는 한일 국교 정상화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일본한테서 받은 이 돈은 일본이 1950년대에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지불한 것보다도 더 적은 것이었다. 청구권 자금을 받은 방식과 그 사용처도 논란이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이 받아야 할 금액을 일본으로부터 일괄 수령하는 방안을 관철했고, 그렇게 받은 금액을 피해자들에게 온전히 전하는 대신 기간 시설 건설 등에 상당 부분 사용했다. 경제 건설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였다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고 피해자들에게 돌아간 몫이 얼마 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일본은 분명 우리보다 앞섰으니 형님으로 모시겠소”

무엇보다 문제는 박정희가 만주 인맥에 의존해 한일 회담을 타결하려 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기시 노부스케, 시이나 에쓰사부로, 고다마 요시오, 야쓰기 가즈오, 이시이 미쓰지로 등 만주국을 실질적으로 경영하거나 대륙 침략 과정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만주 인맥은 박정희 군사 정권의 출현을 적극 환영했다. 5·16쿠데타 이후에 기시 노부스케는 이렇게 얘기했다. “다행히 한국은 군사 정권이기 때문에 박정희 등 소수 지도자들의 나름대로 된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액수로 박 의장을 만족시키기만 하면 저쪽에는 국회도 없는 것이고, 만일 신문이 이것을 반대한다 하더라도 박 의장이 그들을 봉쇄해버릴 수 있으니까 되는 것이다.” 민정 이양기에 박정희가 군정을 연장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만주 인맥을 중심으로 한 일본 극우 세력은 적극적으로 환영하기도 했다.
1961년 박정희는 일본을 방문해 30시간을 머문다. 거기서 그는 만주군관학교 교장 같은 사람을 일본 정부에 요청해 만나고, ‘깍듯이’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 교장은 군국주의 파시즘이 골수까지 박힌 사람이었다. 박정희한테는 일본 패전 이전의 군인 시절에 대한 상당한 향수 같은 것들이 있었고, 첫 일본 방문에서 만주군관학교 시절 교장 등을 만나는 ‘사건’이 일어난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일본 도착 다음 날인 1961년 11월 12일, 박정희는 기시 노부스케, 이시이 미쓰지로, 이케다 하야토, 사토 에이사쿠 같은 사람들과 만났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박정희는 유창한 일본어로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명치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만큼은 알고 있다”, “그들 지사와 같은 생각으로 해볼 생각이다”라고 이야기해서 그 자리에 있던 그 사람들이 놀라고 즐거워했다고 한다. 또 자신이 일본 육사 출신이라는 걸 내세우면서 “강한 군대를 만드는 데에는 일본식 교육이 가장 좋다”며 자꾸 일본 정신을 강조했다고 한다.
1965년 한일 회담 조인을 한 당사자인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이 쓴 《대통령을 그리며》에 이런 말이 나온다. 1961년 11월 기시 노부스케 등을 만난 자리에서 박정희가 이렇게 얘기했다고 쓰여 있다. “선배님들, 우리를 좀 도와주십시오. 일본은 분명 우리보다 앞섰으니 형님으로 모시겠소. 그러니 형 같은 기분으로 우리를 키워주시오.”
이렇게 졸속으로 맺은 한일협정은 지금까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일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에 들어서고 한국이 자주적으로, 대등하게, 자신감을 갖고 일본을 대하게 된 것은 한국이 민주화로 나아간 1987년 6월항쟁 이후였고, 정부 차원에서는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이후였다. 그 긴 세월 동안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지극히 비정상적이었던 건 박정희 정권 때 맺은 한일협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불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만주 인맥의 대부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가 이끄는 정권이 저런 극단적인 짓을 계속하고 있고 박정희 유신 체제와 ‘친연성親緣性’이 강한 박근혜 정권이 그것에 야합하면서 그 불행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저자 프로필

서중석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48년 8월 25일
  •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학사
  • 경력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대표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공동대표
    1988년 신동아 기자

2019.01.0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서중석은 194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했으며, 6월항쟁 당시 《신동아》 취재기자로 역사적 현장에서 그날의 사건들을 생생히 목격하고 기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이며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 상임 공동대표,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저자 김덕련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에서 기자로 일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신문사 일을 하면서 틈틈이 역사 관련 책 작업을 함께해왔다. 《세계를 바꾸는 파업》, 《근현대사 신문》(2권),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5권)를 함께 쓰고 만들었다.
주요 저서로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 《한국 근현대 민족문제 연구》 《한국 현대 민족운동 연구 1·2》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남북협상: 김규식의 길, 김구의 길》 《조봉암과 1950년대》(상·하) 《비극의 현대 지도자》 《배반당한 한국 민족주의》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한국 현대사 60년》 《이승만과 제1공화국》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6월항쟁》 등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연표

첫 번째 마당
어느 정권이 들어섰어도
안 할 수 없었고 또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마당
한일 회담 반대 운동
왜 박정희 정권 때 거세게 일어났나

세 번째 마당
“형님으로 모시겠소”
일본 극우들에게 고개 숙인 박정희

네 번째 마당
박정희 군사 정부는 왜
대일 배상 요구를 그토록 빨리 포기했나

다섯 번째 마당
3·24에 불붙은 한일 회담 반대 시위,
기름 부은 박정희-일본 검은돈 의혹

여섯 번째 마당
사망 선고된 박정희의 ‘민족적 민주주의’,
“박 정권 물러나라”로 번진 6·3운동

일곱 번째 마당
6·3사태로 궁지에 몰린 박정희?
오히려 장기 독재 발판 마련했다

여덟 번째 마당
과거사 사과 받아내기는커녕
망언 덮어준 박정희 정권

아홉 번째 마당
“영광의 제국주의” 망상 못 깬 일본,
면죄부 주며 반성 가로막은 미국

열 번째 마당
예비역 장성과 기독교 보수 세력조차
문제투성이 협정에 분노했다

열한 번째 마당
동남아 배상금에도 못 미친 3억 달러,
버려진 ‘위안부’, 애물단지 된 독도

열두 번째 마당
무장 군인, 학원 난입해 폭거 자행
위수령 선포에도 터져 나온 “비준 무효”

열세 번째 마당
일본에서도 불붙은 한일협정 반대,
그러나 과거사 반성은 드물었다

열네 번째 마당
친한파·반한파 명칭의 서글픈 역설,
박정희 정권과 일본의 검은 유착

열다섯 번째 마당
박정희 밀어준 일본 극우,
박정희가 키운 전두환·신군부와도 밀착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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