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9년 5월 26일(러시아 구력) 모스크바 귀족 가문의 일원인 세르게이 르보비치 푸시킨과 나데즈다 오시포브나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외증조부는 표트르대제를 섬긴 에티오피아의 왕자였다. 딜레탕트 문학가였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프랑스문학을 읽으며 자랐고, 열두 살이 되던 1811년 차르스코예 셀로에 있는 왕립 학교 리세에 입학했다. 리세를 졸업한 뒤외무부 관리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문학 서클에 활발하게 참여하다가, 진보적 자유주의 사상을 담은 정치시들로 인해 좌천되어 남부 지방으로 거취를 옮겼다.그곳에서 1823년부터 서사시 『예브게니 오네긴』 집필을 시작했다. 이듬해 어머니의 영지가 있는 러시아의 북부 미하일롭스코예로 유배를 갔고, 서사시 『집시들』을 완성했다. 1825년 희곡 『보리스 고두노프』를 집필하나 검열로 인해 5년간 출간되지 못한다. 1828년 푸시킨은 나탈리야 곤차로바를 만나 첫눈에 반하고, 이듬해 5월 약혼한 뒤 1831년 결혼했다. 그 사이인 1830년 푸시킨은 『예브게니 오네긴』을 완성했고 드라마 『소비극들』과 산문작가로서의 포문을 연 소설 『벨킨 이야기』, 서사시 『콜롬나의 작은 집』을 비롯해 다수의 서정시를 창작했다.1833년 푸시킨은 푸가초프 반란에 관한 연구를 시작, 우랄 지방으로 가 4개월간 조사를 하게 된다. 이 여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의 영지 볼디노에 머물렀고 여기서 그는 마지막 서사시 『안젤로』와 『청동기마상』, 소설 『스페이드 여왕』, 그리고 시 「가을」과 역사서 『푸가초프 반란사』를 집필했다.1837년, 푸시킨은 아내 나탈리야와 염문설이 돌던 당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그해 1월 27일, 당테스의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에 푸시킨은 치명상을 입었고, 이틀 뒤인 1월 29일 총상으로 인한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푸시킨은 자신의 서재에서 환한 얼굴로 “생이 끝났다”고 정확한 발음으로 말한 후 숨을 멈추었다./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문학연구소(푸시킨스키 돔)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상국립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러시아를 이해하는 아홉 가지 키워드』(공저) 『우리에게 다가온 러시아 발레』(공저) 『우리에게 다가온 러시아 오페라』(공저) 『백년의 매혹: 한국의 지성, 러시아에 끌리다』(공저), 역서로는 『러시아인, 조선을 거닐다』 『대위의 딸』 『적자색 섬』 『눈보라』 등이 있다.
<푸시킨의 문장들>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