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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Aleksandr Sergeevich Pushkin

  • 국적 러시아
  • 출생-사망 1799년 6월 6일 - 1837년 2월 10일
  • 학력 리체이귀족학교
  • 데뷔 1814년 시 친구인 시인에게

2017.12.1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푸슈킨은 1799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몰락한 귀족이었으나, 프랑스 고전 문학으로 채워진 서고는 조숙한 아들의 문학적 재능을 키워 주었다. 어린 푸슈킨은 페테르부르그 근교 차르스코예 셀로의 황실 리세에서 교육을 받았다. 여덟 살 때 처음 프랑스어로 시를 쓰기 시작한 푸슈킨의 공식적인 문단 데뷔는 열다섯 살 되던 해인 1814년이었다. 이듬해 원로 시인 데르자빈이 참석한 자리에서 낭독된 시 [차르스코예 셀로의 회상]은 그를 러시아 문학의 기대주로 자리매김해 주었다. 이어 1820년에 발표된 첫 서사시 [루슬란과 류드밀라] 역시 선배 시인 주콥스키의 극찬을 받았다.
리세를 졸업한 뒤 1817년부터 1820년까지 외무성에서 근무하다가, 체제 저항적 시들이 문제가 되어 러시아 남쪽으로 유배되었다. 형식적으로는 전근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귀양이었고, 푸슈킨은 1827년까지 페테르부르그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이 유배 기간은 시인으로서 생산적인 기간이었을 뿐 아니라 서구 문학의 영향에서 벗어나 성숙기에 돌입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 기간에 그는 역사극 [보리스 고두노프]를 쓰고 [예브게니 오네긴]을 시작하여 제6장까지 진행했다. 1826년 출판된 그의 첫 시선집은 두 달 만에 품절되는 인기를 얻기도 했다.
푸슈킨은 위험인물로 간주되었으므로 페테르부르그에 돌아온 다음에도 황제의 검열 없이는 그 어떤 작품 발표도 할 수 없었고 여행도 불가능했다. 그는 언제나 빚에 시달렸다. 1830년 미인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결혼했으나 아내와 관련된 소문은 그에게 정신적인 타격을 주었다.
푸슈킨은 아내의 연인으로 여겨진 프랑스인 당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결투에서 부상한 뒤 이틀 만인 1837년 1월 29일 사망했다. 시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인파가 집 앞에 모여드는 바람에, 주콥스키는 시시각각 푸슈킨의 상태를 적어 문밖에 고시해야 했다. 그의 서재에는 총 3,560여 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었는데, 그 책들에 눈길을 멈추었던 시인의 마지막 한마디는 "안녕, 친구들!"이었다.

역자 - 석영중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87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슬라브어문과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에 러시아 시의 리듬(1992), 러시아 현대 시학(1996), 논문 만젤쉬땀의 시인과 독자, 흘례브니꼬프의 산문 [까]와 종합주의적 비전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나는 사랑한다, 좋아!(1993, 마야꼬프스끼),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1988, 스뜨루가츠끼), 우리들(1996, 자먀찐), 알렉산드르 뿌쉬낀 문학작품집(1999) 등이 있다. 1986년 제1회 번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에는 알렉산드르 뿌쉬낀 문학 작품집으로 한국 백상 출판 문화상 [번역상]과 러시아 정부에서 수여하는 뿌쉬낀 메달을 받았다.

<예브게니 오네긴>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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