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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창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55년
  •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문학 박사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사
  • 경력 동의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2014.12.31.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프리드리히 니체
독일의 작센 주 뢰켄 마을에서 목사인 카를 루트비히 니체의 아들로 태어났다. 1849년 니체의 아버지가 죽자 니체의 할머니는 니체 가족을 이끌고 나움부르크로 이사했다. 나움부르크에서 니체는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두 고모 등 네 명의 여자들 틈에서 성장하면서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다.
니체는 어려서 예술, 특히 음악에 재능을 보였는데, 열 살 때 다성(多聲)의 무반주 악곡인 모테트를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열다섯 편의 시를 쓰기도 했다. 니체는 열네 살 되던 해인 1858년 나움부르크를 떠나서 포르타의 김나지움으로 학교를 옮겼다. 여기에서 니체는 크루크, 핀더 등의 친구와 함께 예술·문학 동아리 ‘게르마니아’를 만들어 매월 한 번씩 모여 각자 소논문을 발표하고,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악보도 논했다. 니체는 횔덜린, 장 파울, 쇼펜하우어, 바그너 등 낭만주의 문학가, 철학가 및 음악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864년 10월 니체는 도이센과 함께 본 대학에 입학했다. 포르타의 김나지움에서 니체는 무엇보다도 고대 그리스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본 대학에서는 고전언어학 강의를 들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니체는 지도 교수인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겨, 그곳에서 소논문 두 편을 썼다. 1869년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고전언어학 교수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리츨 교수는 니체에게 임시 박사 학위를 주선해 주고 니체를 추천했다. 니체는 25세에 바젤 대학의 고전언어학 임시 교수로 채용되었고, 그 다음 해인 1870년 정식 교수가 되었다. 1872년 니체는 첫 작품 [비극의 탄생]을 출판했다. 1873년에는 [반시대적 고찰] 1편을 출판했다. 1878년에는 [인간적인 것, 너무나 인간적인 것] 1편을 출판했다. 니체는 자주 병치레를 하였고, 1879년 극도로 몸이 쇠약해지자 바젤 대학의 교수직을 사임했다. 그 사이 니체는 바그너와 다년간 교제하다가 사이가 나빠져 결별했고, 말년에 [니체 대 바그너] 등의 작품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혹평했다. 니체는 병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접어들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 [바그너의 경우], [이 사람을 보라] 등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니체는 1889년 1월 3일 이탈리아의 투린에서 정신병 발작을 일으킨 후, 어머니와 함께 예나에서 거주하다 어머니가 죽자, 누이동생 엘리자베트가 니체를 바이마르로 옮겼고, 니체는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죽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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