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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딜타이 Wilhelm Dilthey

    빌헬름 딜타이 프로필

  • 국적 독일
  • 출생-사망 1833년 11월 19일 - 1911년 10월 1일
  • 학력 베를린대학교 신학 학사
  • 경력 베를린대학교 교수

2015.01.19.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독일의 모스바흐 비브리히라는 소도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스물셋에 신학 시험을 치르기도 했지만 결국 방향을 철학으로 바꾸게 된다. 이런 연유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졸업 후 베를린 그래머 스쿨에서 잠시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곧 사직했다. 이후 1864년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자격 취득 논문을 썼고, 2년 후 스위스 바젤 대학을 시작으로 킬 대학, 브레슬라우 대학을 거쳐 1882년부터는 베를린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는 등 별다른 외부 활동 없이 철저히 강단 학자로서 살았다.
그는 정신적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수립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었고 평생 그 포부의 실현에 모든 학문적 정력을 쏟아부었다. 1883년에 쓴 《정신과학 입문》에서 그는 이러한 연구의 중요한 논의들을 제시했다. 그는 이성 중심의 칸트 철학에 비추어 자신의 철학적 목표를 ‘역사이성 비판’으로 설정했다. 칸트가 자연과학과 수학의 도움을 빌려 순수이성의 가능 근거를 밝히려 했다면 딜타이는 삶의 철학을 통해 역사이성의 가능 근거를 밝히겠다는 것이었다.
칸트의 형이상학적 추리에 대한 반감, 헤겔의 역사에 대한 관심 수용 등을 통해 역사이성 비판으로 나아간 딜타이는 독일 역사주의의 실증적 역사 연구에 상당한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역사주의에 숙명처럼 따라붙는 상대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그는 개인적인 삶이 사회나 역사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의 삶인 동시에 역사 속의 삶이며 그러한 공동체와 역사의 교차점으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 말년에 이르러 그는 정신과학의 방법으로서의 해석학에 주목해 이를 정교화했다. 그는 합리적으로 구성된 체계들을 믿지 않았으며, 그것들의 복합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않은 채로 두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학문적 업적은 오랫동안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며, 사후에 편찬된 저서와 해설서를 통해서야 그가 주장한 역사적 삶의 철학적 방법론이 빛을 보게 되었다.

<개정판 | 체험·표현·이해> 저자 소개

빌헬름 딜타이 작품 총 9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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