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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에켐 드 몽테뉴 Michel Eyquem de Montaigne

    미셸 에켐 드 몽테뉴 프로필

  • 국적 프랑스
  • 출생-사망 1533년 2월 28일 - 1592년 9월 13일
  • 경력 사상가

2024.12.2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16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모럴리스트. ‘에세이’라는 글쓰기 장르의 원조라 할 《수상록》을 남겼다.
1533년 프랑스 서남부 도르도뉴에서 태어났다. 교육열이 높은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가정교사에게 맡겨져 라틴어를 모국어처럼 익혔고, 6세 때 보르도 인근의 기옌 학교에 입학해 중학 과정을 마쳤다. 16세 무렵부터 툴루즈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1556년경 페리괴 조세재판소의 법관에 이어 1557년 보르도 고등법원의 법관으로 일했다. 1558년 《자발적 복종》을 쓴 철학자이자 법률가 에티엔 드 라보에시를 만나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었으나 1563년 페스트로 그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1568년 사망한 아버지 피에르의 뒤를 이어 몽테뉴 영주로서 영지를 상속받았고, 이듬해 스페인 신학자이자 철학자 레몽 드 스봉의 《자연신학 또는 피조물의 책》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발간했다. 아버지를 잃은 지 얼마 안 되어 남동생 아르노가 운동 경기 중에 입은 부상으로 요절한 데다 몽테뉴 자신이 낙마 사고로 죽을 뻔했다. 1570년에는 첫아이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몽테뉴는 보르도 고등법원 재판관의 딸 프랑수아즈 드 라샤세뉴(1545~1602)와 결혼해서 딸 여섯을 낳았지만,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찍 죽었다.
공직 생활에 부담과 환멸을 느껴 1570년 37세로 보르도 고등법원 법관직을 사임하고 이듬해 초쯤 자신의 성으로 돌아와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했다. 1572년경 집필을 시작한 《수상록》의 초판은 1580년 보르도에서 출간되었다. 그해 신장결석을 치료할 겸 여행길에 올라 스위스, 독일을 거쳐 이탈리아에서 오래 머물다 1581년 말에 몽테뉴 성으로 돌아오는데, 이 경험을 기록한 일기는 몽테뉴 사후에 발견되어 1774~1775년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보르도 시장으로 선출되어 일했으며, 두 번째 임기에는 종교 전쟁과 페스트로 피난을 떠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동안 가필과 수정을 거듭해온 《수상록》의 3권 107장에 이르는 신판을 1588년에 간행했고, 1590년에는 관직을 맡아달라는 앙리 4세의 요청을 건강을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다. 1592년 자택에서 중증 후두염으로 숨을 거두었다.

<고전의 세계 개정판> 저자 소개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작품 총 15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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