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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張華

    장화 프로필

  • 국적 중국
  • 출생-사망 0232년 - 0300년

2015.02.03.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장화(張華)
장화는 자가 무선(茂先)이고, 범양(范陽) 방성(方城) 곧 오늘날의 하북성 고안현(固安縣) 남쪽 지역 사람이다. 위(魏)나라 명제(明帝) 태화(太和) 6년(AD 232)에 태어나, 진(晉)나라 혜제(惠帝) 영강(永康) 원년(AD 300)에 죽었다.
≪진서(晉書)≫ <장화전(張華傳)>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어렸을 때 홀로되고 가난하여 양을 기르는 것으로 살아갔다. 그러는 중에도 학문을 좋아해서 미래를 예언한 책과 점술에 관한 책, 그리고 방술(方術)에 관한 책들을 두루 익혀 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한다. 학업이 뛰어나고 박학다식했으며, 기억력이 좋아 당시 사람들에게 자산(子産)으로 비유되었던 장화가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은 <초료부(鷦鷯賦)>를 지어 진류(陳留) 사람인 완적(阮籍)의 칭찬을 받아서였다. 유명해진 장화는 위나라 말기에 좌저작랑(佐著作郞), 장사(長史) 겸 중서랑(中書郞) 등을 맡아 보았으며, 진나라에서는 황문시랑(黃門侍郞)·중서령(中書令)·산기상시(散騎常侍)·태자소부(太子少傅)·중서감(中書監)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고, 관직이 사공(司空)에서 끝났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장사공(張司空)’이라고 불렀다.
조왕(趙王)인 사마륜(司馬倫) 등이 역적모의를 하였을 때 장화는 음모에 가담하는 것을 거절해, 사마륜과 손수(孫秀) 무리에게 피살되었고 삼족이 몰살됐는데, 이때 나이가 69세였다. 장화가 죽을 당시 집에 남은 재산이라고는 없었고, 오직 서적들만 책상과 상자 속에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천하에 기묘하고 신비한 것이나, 세상에 별로 없는 것들이 모두 장화의 처소에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박식하고 견문이 넓어, 세상에서 그와 비교할 자가 없었다”고 한다.
장화는 방술에 정통하였을 뿐 아니라 시와 부를 잘 지었는데, 시어가 부드럽고 화려해 후세 사람들은 “여자아이의 정이 많고 풍운(風雲)의 기가 적다”고 평한다. 그러나 당시 정치상황에 대한 우려와 감개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있다. 원래는 장화의 문집이 있었지만 소실되었고, 오늘날 전해지는 ≪장사공집(張司空集)≫ 한 권은 명나라 사람인 장부(張溥)가 모아 놓은 것이다.
장화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는 신비하고 기이한 것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수많은 책을 두루 보았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곧 ≪박물지≫의 기본 성격을 결정지었고 ≪박물지≫가 이루어진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역자 - 김영식(金映植)
김영식은 전북 남원 출생으로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안경기(拍案驚奇) 연구>로 석사 학위를, <송원(宋元) 화본소설(話本小說)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의 선임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 강릉원주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논문으로 <송 이전 설화 예술의 탐색>, <송 이전 설창과 그 저본에 관한 탐색>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문선역주(文選譯註)≫(전 10권, 공역, 소명출판), ≪상군서(商君書)≫(홍익출판사), ≪오월춘추(吳越春秋)≫, ≪월절서(越絶書)≫, ≪열자(列子)≫, ≪귀곡자(鬼谷子)≫(이상 지식을만드는지식), ≪상상의 나라 곤충 이야기≫(벤포스타), ≪사단칠정논변≫(공역, 한국학술정보), ≪역주사단칠정논쟁≫(전 2권, 공역, 학고방) 등이 있다.

<박물지>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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