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마리보(Marivaux)
보마르셰(Beaumarchais)와 함께 18세기 희극 작가를 대표하는 마리보(Marivaux)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는 그가 남긴 작품에 비해 훨씬 적다. 1688년 2월 4일 파리에서 태어난 마리보는 11세가 되는 해에 화폐 주조국의 책임자로 발령 난 부친을 따라 오베르뉴 지방의 리옹을 거쳐 리모주에 정착해 소년기를 보낸다. 오라토리오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우고 고대 작가들을 비롯해 르네상스 시대와 17세기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을 접한다. 청년기에 접어든 마리보는 1710년에 파리에 복귀해 법학 공부를 시작하지만 이내 자신의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문학에 입문할 것을 결심한다.
24세가 되는 1712년에 처녀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단막극 <신중하고 공정한 아버지>를 리모주에서 공연하지만, 정작 그가 문단에 데뷔한 것은 극작이 아닌 소설 장르를 통해서다. 1713년에 발표한 ≪호감이 주는 놀라운 효과≫는 사교계의 취향을 반영하는 이른바 ‘프레시오지테(préciosité)’ 경향의 장편 연애소설이다. 이후 마리보는 ≪진창에 빠진 마차≫(1714), ≪변장한 일리아드≫(1717) 등의 소설을 발표하며 사교계의 살롱에 출입하기 시작한다. 파리에서 문필가로서의 명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마리보는 ≪메르퀴르 드 프랑스≫ 같은 신문에 자신의 기사를 올리면서 기자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마리보는 1716년 피에르 카를레 드 샹블랭(Pierre Carlet de Chamblain)이라는 본명을 버리고, 집 근처에 있는 길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마리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이듬해 마리보는 파리 원교(遠郊)에 있는 고도(古都) 상스의 부유한 부르주아지 출신으로 막대한 지참금을 가져온 콜롱브 불로뉴(Colombe Boulogne)와 결혼하지만, 당시 프랑스 경제를 뒤흔든 스코틀랜드 출신의 투자가 존 로(John Law)가 야기한 파산 사태의 희생자가 되어 대부분의 재산을 날리고 만다. 경제적으로 파산한 마리보에게 닥친 또 하나의 불행은 그의 부인이 결혼 7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네 살에 불과한 딸을 혼자서 양육하게 된 마리보는 이제 작가적 명성이 아니라 생계를 꾸려 가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마리보의 극작 활동은 1720년에 본격화되어 <한니발의 죽음>, <사랑과 진실>, <사랑으로 세련되어진 아를르캥> 등 무려 세 편의 작품이 같은 해에 발표된다. 루이 14세 치세 말기 맹트농 부인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 추방되었던 이탈리아 극단의 배우들은 오를레앙 공의 섭정 시작과 더불어 1716년, 파리 무대로 복귀해 예전에 거두었던 성공을 재현하고 있었다. 마리보가 1720년대에 완성한 15편의 극작 가운데 무려 11편을 이탈리아 극단에서 공연한 것으로 보아 코메디아 델라르테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마리보는 극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중에도 ≪프랑스 관객≫이라는 신문을 창간하는가 하면, ≪마리안의 삶≫(1731∼1741), ≪출세한 농부≫(1735) 같은 작품을 발표해 소설의 형식과 미학을 혁신했다. 마리보는 1742년,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문필가로 평가되는 볼테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한림원 회원으로 선출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한림원 회원이 된 이후 마리보의 작품 활동은 현저하게 감소해 1763년 파리에서 사망할 당시 그는 동시대 문단에서 거의 잊힌 존재가 되었다.
1980년대 이후 프랑스 연극계와 평론계의 인사들은 마리보의 연극을 새롭게 조명하기 시작했다. 18세기의 몰리에르로 추앙받던 보마르셰를 제치고 마리보는 이제 몰리에르와 비교되는 작가로 평가가 역전되었다. 두 작가 모두 이탈리아 희극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연애 감정의 세밀한 묘사에서 마리보가 몰리에르를 능가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역자 - 이경의
이경의는 1962년 인천 부평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초·중·고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서강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며 연극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파리 4대학에서 프랑스 고전극 연구를 시작해 몰리에르 연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과정과 박사준비과정을 이수한 데 이어, 1994년 <17세기 프랑스 희극에 등장하는 바르봉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부터 경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프랑스 문학사를 비롯해 프랑스 연극과 영화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사랑과 우연의 유희 / 논쟁>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