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디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강제 새로 고침(Ctrl + F5)이나 브라우저 캐시 삭제를 진행해주세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리디 접속 테스트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테스트 페이지로 이동하기

이경의

    이경의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62년
  • 학력 파리 제4대학교 대학원 박사
    파리 제4대학교 대학원 석사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 학사
  • 경력 경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2015.02.26.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마리보
마리보(Marivaux)는 1688년 2월 4일 파리에서 태어났으나 11세 되던 해에 부친이 오베르뉴 지방 소도시 리옴에 소재한 조폐국 책임자로 발령이 난 까닭에 지방에서 소년 시절을 보낸다. 오라토리오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우고 고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문학에 입문한 마리보는 17세기 초 프랑스에서 유행한 바로크 소설이나 프레시오지테 경향을 반영한 작품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18∼20세에 오베르뉴 지방과 인접한 리무쟁의 중심 도시 리모주에 머물던 마리보는 단막극 <신중하면서도 공정한 아버지>를 지역 사교계에서 공연했는데, 극작가로서 집필한 최초의 습작이다.
1710년 파리로 상경해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지만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관심을 다시 문학으로 돌린다. 1713년 프레시오지테 경향을 반영한 장편 연애소설 ≪호감이 주는 놀라운 효과≫를 발표한 데 이어 ≪진창에 빠진 마차≫(1714), ≪변장한 일리아드≫(1717) 등의 소설을 연이어 집필하며 문필가로서 명성을 확보했으며, ≪메르퀴르 드 프랑스≫ 같은 신문에 기사를 기고하며 기자로도 활동한다.
1716년 피에르 카를레 드 샹블랭(Pierre Carlet de Chamblain)이라는 본명을 버리고 집 근처에 있는 길 이름에 착안해 마리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이듬해 파리 근교의 고도(古都) 상스의 부유한 부르주아지 출신으로 막대한 지참금을 가져온 콜롱브 볼로뉴 (Collombe Bollogne)와 결혼하지만 당시 프랑스 경제를 뒤흔든 스코틀랜드 출신 투자가 존 로 (John Law)가 야기한 경제 파탄의 희생자가 되어 재산 손실을 입는다. 마리보에게 닥친 또 하나의 불행은 그의 부인이 결혼 7년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네 살에 불과한 딸을 혼자서 기르게 된 마리보는 이제 작가적 명성이 아니라 생계를 꾸려 가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루이 14세 치세 말에 추방되었던 이탈리아 극단은 오를레앙 공이 섭정하면서 20년 가까운 공백을 깨고 1716년 파리로 복귀한다. 1720년대에 들어 코메디 프랑세즈 배우들에 준하는 지위를 확보한 이탈리아 극단은 자국 언어로만 공연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프랑스어로 된 작품도 무대에 올리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점은 마리보가 다시 극작을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소설에서 극작으로 방향을 전환한 마리보는 1720년 <사랑과 진실>, <사랑으로 세련되어진 아를르캥>을 이탈리아 극단에서, 비극 <한니발>을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올리는 등 무려 세 편의 작품을 한꺼번에 쏟아 냈다.
극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중에도 마리보는 ≪프랑스 관객≫이라는 저널을 간행해 연극 평론을 기고했다. 1725년에 발표된 희극 <노예들의 섬>은 주인과 하인의 신분이 전도된 상황에서 과거 주인들이 저지른 여러 오류를 자성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연애 희극이 아니라 사회극으로서 위상을 확보한다. 1726년 이탈리아 극단 여배우 실비아가 질병으로 무대에 오르지 못하자 마리보는 이듬해 두 편의 희극을 코메디 프랑세즈에 제공하는데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걸리버 여행기>에서 영감을 얻은 <이성의 섬>과 <놀라운 사랑>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놀라운 사랑 속편>이 그것이다. 마리보는 이후에도 이탈리아 극단과 코메디 프랑세즈의 무대에 번갈아 작품을 올렸는데 그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작품을 이탈리아 극단에 제공했다는 점에서 극작가로서 개인적인 성향이 드러난다.
1730년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과 우연의 유희>를 발표해 이탈리아 극단은 물론 궁정에서도 공연되는 영광을 누린 마리보는 청년 시절 그를 문단으로 인도했던 소설로 다시 눈을 돌린다. 1731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한 성장소설 ≪마리안의 삶≫은 10년 뒤에야 마무리된다. 1734년에 시작한 두 번째 대작 ≪출세한 농부≫는 끝내 미완으로 남았지만 그가 18세기 소설에서 형식과 미학을 혁신한 공로는 그의 극작과 더불어 후세에 인정받게 되었다.
마리보가 극작과 소설 집필을 병행하던 1730년대 그를 후원했던 인물은 탕생 부인(Madame de Tencin)이었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 드나들었던 살롱을 주도했는데, 1742년 마리보가 경쟁자였던 볼테르(Voltaire)를 물리치고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는 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피선된 이후 마리보는 몇 차례 연설문을 집필한 것을 제외하고 무대에서 공연될 만한 성공작을 더 이상 발표하지 못하고 위축된 노년을 보내다 1763년 파리에서 사망한다.
18세기 후반 이후 19세기까지 마리보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의 작품 상당수가 이탈리아 극단에서 발표되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왕실에서 전폭적으로 후원하는 코메디 프랑세즈 무대가 아닌데다가 외국 출신 배우들이 공연하는 무대에서 올린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근본적으로 호의적일 수 없다는 점에서 마리보는 엘리트 코스를 거친 극작가로 평가받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극작가로서 이 같은 원죄는 20세기 들어 그의 대사와 섬세한 심리묘사에 주목한 평론가와 연극인들로부터 작품이 재조명되면서 두 세기 만에 벗겨지게 되었다.

역자 - 이경의
이경의는 1962년 인천 부평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초·중·고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서강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며 연극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파리 4대학에서 프랑스 고전극 연구를 시작해 몰리에르 연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과정과 박사준비과정을 이수한 데 이어, 1994년 <17세기 프랑스 희극에 등장하는 바르봉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부터 경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프랑스 문학사를 비롯해 프랑스 연극과 영화, 그리고 동화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이중의 변심> 저자 소개

이경의 작품 총 8종










본문 끝 최상단으로 돌아가기

spinner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