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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욱

    최형욱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62년
  • 학력 1996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문학 박사
    1988년 타이완 국립정치대학 대학원 문학 석사
    한양대학교 중문과 학사
  • 경력 한양대학교 중문과 교수
    2000년 경동대학교 전임강사
    연세대학교 시간강사

2015.10.26.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
자(字)가 탁여(卓如), 호(號)는 임공(任公)이며, 필명(筆名)은 음빙실주인(飮冰室主人)·음빙자(飮冰子)·만수실주인(曼殊室主人)·신민자(新民子)·소년중국지소년(少年中國之少年) 등등이다. 서구 열강의 침략과 대항의 최전방 지역이었던 광둥성(廣東省) 신후이(新會) 사람으로, 반경반독(半耕半讀)의 향신(鄕紳) 가정에서 태어났다. 동치(同治) 12년(1873), 즉 아편전쟁이 일어난 지 33년 뒤, 태평천국의 난이 평정된 지 10년 뒤, 서구의 충격이 한창 중국으로 물밀듯이 거세게 쳐들어오던 시기였다.
량치차오는 중국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중요한 근대 전환기를 살면서 끊임없이 시대를 이끌어 간 대표적 지식인이었다. 신문·잡지 및 교육을 기반으로 변법유신(變法維新)을 도모하고, 근대화된 서구 문명을 선전함으로써 폐쇄되었던 근대 중국에 새로운 개혁의 기풍을 일으켰으며, 특히 탁월한 계몽주의 사상가·정치가·언론인·교육자·문학가로서 중국 문화사(文化史)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일반적으로 량치차오의 생애는 크게 수학(修學) 시기(1873∼1894), 유신 운동과 계몽 활동 시기(1895∼1903), 입헌 추진과 정치 재개 시기(1904∼1917) 그리고 강학(講學)과 저술 시기(1918∼1929) 등 네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량치차오의 인생 역정은 한마디로 중국의 근대화를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정계에서 은퇴한 1917년 무렵까지는 주로 정치가로서 학술 활동을 병행하면서 자신이 말한 학자의 임무인 ‘세상을 깨우쳐야 한다(覺世)’는 사명감 아래 근대 중국의 신문화(新文化) 창도자·실천자로서 소임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1918년 이후로는 학술 연구에 전념하면서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傳世)’ 전통문화의 수호자로서 최선을 다했다.

최형욱
한양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1988년 타이완 국립정치대학 대학원에서 〈청대 양호파의 원류 및 그 문학 이론 연구(淸代陽湖派的源流及其文學理論硏究)〉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연세대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1996년 〈량치차오의 문학 혁명론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양대 중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 및 저역서로 〈조선의 량치차오 수용과 량치차오의 조선에 대한 인식〉, 〈량치차오의 중국 국민성론 및 조선 국민성 비판 탐구〉, 〈중국 근대의 계몽주의 문학 사조〉, 〈량치차오의 시계 혁명론이 개화기 한국 시론에 미친 영향〉, 〈량치차오의 추풍단등곡(秋風斷藤曲) 탐구〉, 〈한중 전통문화 관련 디지털 인문 콘텐츠 실태 비교 및 수준 향상 방안 연구〉, 《신편 명심보감》,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등이 있다.
평소 중국의 근현대 문학 이론, 근현대 한중 사상·문학 비교, 특히 중국 근대 문학과 현대 문학의 연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원서발췌 음빙실문집>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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