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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승

    강석승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인하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단국대학교 대학원 행정학과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학사
  • 경력 경기대학교 겸임교수
    통일부 통일교육원 연구개발과장
    통일부 정보분석본부 정세분석팀장

2015.10.29.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에드워드 기번
1737년 런던에서 태어난 기번은 유년 시절이 병약했지만 신흥 부르주아로서 평생 동안 생계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는 유복한 생활을 한 점이 다른 작가들과 다소 다르다. 그는 1752년 15세 때 귀족에게 허용되는 특별 자비생 자격으로 옥스퍼드대학교의 매그덜린칼리지에 입학해 공부하던 중 이신론에 입각한 종교 비판서들을 읽고 로만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비공개로 영세(領洗)까지 받는 등 종교 논쟁에 연루되기도 한다.
기번은 1758년까지 스위스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중 라틴어, 고전, 시, 웅변 및 철학 등을 섭렵하면서 자신의 역사관을 형성했다. 또한 그리스어와 프랑스어를 능란하게 말하고 쓸 수 있을 정도로 습득했다.
기번은 쉬잔 퀴르쇼와 파혼을 한 뒤 오로지 독서에만 전념했고 저술에 흥미를 느껴 1761년 최초의 저술인 [문학 연구에 관한 에세이]를 프랑스어로 출판했다.
기번은 7년전쟁(1756∼1763) 말기에 햄프셔 민병대 대위로 입대해 국토방위에도 헌신했다. 민병대가 해산되자 경제권을 쥐고 있던 아버지는 기번의 국가에 대한 공헌을 인정해 기번의 숙원이었던 유럽 여행을 승인한다. 그는 1763년 곧바로 유럽 여행길에 올랐고 여행이 끝나 갈 무렵인 1764년 10월 15일 이탈리아 여행 중 폐허가 된 로마의 카피톨에서 로마제국의 쇠망에 관한 작품을 쓸 영감을 받았다.
1770년 부친이 죽고 비로소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자산을 정리하고 런던으로 이주해 [로마제국 쇠망사]의 집필에 전념하게 된다. 1776년 전 6권 중 제1권을 출판하는데, 이 책은 대단한 호평을 받아 1년 내에 3판까지 발간되었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완성하는 동안 그는 정치 분야에도 관여하는데, 1774년 프리메이슨의 런던 지부에 가입했고 1783년까지 토리(Tory) 당원으로 하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제2·3권의 집필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 매우 늦어 1781년 간행되었는데 이는 그가 하원의원인데다 무역식민위원회 위원이라는 공직까지 맡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서유럽인인 기번으로서 비잔틴 문명에 흥미를 느낀 것도 아니고 사료 준비도 불충분했던 것이다.
그런데 해인 1782년 그가 지지하던 노스 경의 내각이 미국 독립전쟁을 둘러싸고 붕괴되면서 그 역시 공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단 2년 만에 제4권(1784), 다시 2년 뒤에 제5권(1786), 다시 이듬해에 제6권(1787년)을 완성했다.
기번은 당대에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작은 체구와 유별난 용모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고, 이 때문에 그에게 남다른 콤플렉스가 있었음은 사실이다. 그가 끝까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낸 것이 그의 신체적인 조건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여하튼 그처럼 부유한 사람이 [로마제국 쇠망사]와 같은 대작을 완성했다는 것은 인간 승리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역자 - 강석승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동 대학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천대학교, 경기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통일부 통일교육원 연구개발과장, 통일부 정보분석본부 정세분석팀장 등을 역임했다. 지은책으로는 《북한학개론》《국제사회와 북한》《북한총람》《북한대사전》 근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쇠망사》 등이 있다.

<로마제국쇠망사>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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