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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김현 프로필

  • 경력 전남대학교

2016.04.05.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카를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1818〜1883)
프로이센의 트리어에서 7남매 중 첫째로 태어나 유대인 변호사인 아버지와 네덜란드 출신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유대인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몸소 겪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성장 후에는 소속된 사회에 동화되기보다 유대인으로서의 이방인 기질과 이에 연유한 예리한 지성을 무기로 사회에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겨눴다.
대학에서는 법학을 공부했으나 문학과 철학,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고 스물아홉 살부터 헤겔 철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해 학문 연구의 방향을 ‘현실 속에서 이념을 찾는다’로 잡았다. 베를린 대학 강사로 활동하던 브루노 바우어를 비롯한 청년헤겔학파와의 지적 교류를 통해 헤겔 좌파의 급진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당시 프로이센 정부의 보수적인 정책 기류 탓에 대학 강단에 서지 못하고 《라인 신문》의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프로이센 정부의 검열 강도가 계속해서 심해지자 파리로 망명해 청년헤겔학파의 일원인 아르놀트 루게와 《독불 연보》를 발간했고, 여기에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등을 포함한 급진적인 기고문을 다수 게재했다. 하지만 헤겔 사상과 청년헤겔학파가 관념적 급진성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라는 진단을 내린 후에는 헤겔의 급진주의에 결별을 선언하고 현실에 관한 경제적 연구로 나아가 독자적인 사상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만난 엥겔스와 평생에 걸쳐 학문 활동을 함께했으며 프로이센 정부의 압력으로 파리에서까지 추방당한 후에는 당국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프로이센 국적을 포기하고 죽을 때까지 무국적자로 살았다. 1845년에 브뤼셀로 거처를 옮겨 엥겔스와 함께 《독일 이데올로기》를 출간했고, 프로이센의 탄압이 브뤼셀까지 이어지자 1847년 영국으로 망명해 남은 생의 대부분을 런던에서 보냈다. 런던에서는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연합의 당 강령인 《공산당선언》을 발표했고 이후에는 대작 《자본》 등을 집필하며 여생을 연구에 전념했다.

<개정판 |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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