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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칼 마르크스 프로필

  • 국적 독일
  • 출생-사망 1818년 5월 5일 - 1883년 3월 14일
  • 학력 1841년 예나 대학 철학 박사
    베를린대학교
  • 경력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 참여
    1851년 런던 데일리 트리뷴 유럽 통신원
    1842년 라인신문 편집장

2019.08.26.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독일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 1818년 유대인 법률가 가정에서 태어나 1883년 세상을 떠났다. 헤겔철학의 영향을 받아 청년헤겔파로 활동하며 무신론적 급진 자유주의자가 되었다. 평생의 학문적 동반자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던 엥겔스와 경제학을 연구하였고,『독일 이데올로기』를 공동 집필하며 유물사관을 정립하였다. 이후『공산당선언』을 발표해 각국의 혁명에 불을 지폈다. 그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 법칙을 해명한『자본론』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전 3권으로 구성된『자본론』의 제1권은 1867년에 함부르크에서 출판되었으며, 제2권과 제3권은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후 엥겔스에 의해 1885년과 1894년에 세상에 나왔다./1942년 10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해방과 더불어 귀국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모교인 대구상고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녔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서울대 조교 생활을 그만두고 외환은행 조사부에 들어가 런던 지점에 부임하면서 영국 생활을 시작했다. 영국의 사회보장제도와 1973년 10월의 석유 파동 이후 사회 변화에 흥미를 느껴 런던대학교 정경대학에서 경제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1977년에 경제학 석사 학위를, 1982년에 ‘마르크스의 공황이론’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10월 귀국하여 1987년 1월까지 한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학장 불신임안 사태로 해직되었다. 민주화 열기 속에서 좌파 정치경제학의 불모지였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된 이후 20여 년간 주류경제학의 틈바구니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을 가르치다가 2008년 2월에 정년퇴임했다. 성공회대학교 석좌 교수를 역임했고, 2015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저서로는『자본론을 읽는 시간』『자본론의 현대적 해석』『자본주의경제의 위기와 공황』『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공저)『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도입과 전개과정』『새로운 사회를 위한 경제 이야기』『알기 쉬운 정치경제학』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민주화 이후 최초로 완역한『자본론』과,『국부론』『고삐 풀린 자본주의』(공역) 등이 있다./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원 석사 2년 차에 서울대에 처음 부임한 김수행 교수의 첫 조교를 지냈으며, 그의 지도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산대학교를 거쳐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지금은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주요 저서로『하이에크: 해체적 읽기』등을 썼으며, 주요 논문으로「트랜스크리틱-도덕적 명령과 진리에 대한 강박 사이」등을 발표했다.

<자본론을 읽는 시간> 저자 소개

칼 마르크스 작품 총 28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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