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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황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56년
  • 학력 미시간주립대학교 대학원 러시아문학 박사
    미시간주립대학교 대학원 러시아문학 석사
    미국 아메리칸대학교 국제지역학대학원 러시아지역학 석사과정 수료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 학사
  • 경력 충북대학교 교수
    한국노어노문학회 회장 역임

2015.01.08.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은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폴타바의 소로친치 마을에서 1809년 4월 1일 태어났다. 1819년 고골은 폴타바 사립 기숙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821년 네진의 김나지움에 입학해 신학, 고전문학, 독일어, 프랑스어 등을 수학했다. 학창 시절 문학과 연극에 관심을 갖고 학내 문학 서클 편집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고골은 푸슈킨을 너무나 존경한 나머지 ≪예브게니 오네긴≫을 포함한 그의 시를 노트에 옮겨 적기도 했고, 연극에도 관심을 갖고 부친이 썼던 우크라이나 희곡과 프랑스 희곡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1828년 11월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바실리예프카 영지에 잠시 머문 후, 공직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홀로 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한 고골은 1829년부터 내무성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1829년 그는 김나지움 시절부터 쓰기 시작했던 낭만주의풍의 서정시 <이탈리아>와 전원시 <간츠 큐헬가르텐>을 자비로 출판했는데, 비평가들의 혹평을 두려워해 ‘V. 알로프’라는 필명으로 출판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비평가들로부터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과 더불어 혹평을 받았고, 이에 실망한 고골은 1829년 8월 1일 모든 작품을 회수해 직접 소각하고, 6주간 독일의 류벡과 함부르크를 여행하고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그해 11월 법무성으로 옮겨 근무하면서 고골은 1830년 <바사브류크 , 혹은 이반 쿠팔라 전야>, <게트만>의 첫 장, 그리고 단편 <여자>를 시인 델비그가 주관하고 있던 ≪문학 신문≫에 기고했다. 이 작품들은 호평을 받았고, 그 결과 고골은 주콥스키와 푸슈킨과 돈독한 친분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는 1831년 관리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주콥스키의 추천으로 여자 기숙학교 역사 교사로 근무하면서 그해 9월 ≪지칸카 근교 농가의 야회≫ 1부를, 그리고 이듬해 3월에는 2부를 각각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푸슈킨을 포함한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이로 인해 고골은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작품집의 출간으로 문학적 명성을 획득한 고골은 1834년에 여자 기숙학교의 역사 교사직을 사임하고, 페테르부르크 대학의 역사학과 조교수로 근무했다. (당시 페테르부르크 대학생이었던 투르게네프는 고골의 세계사 강의를 수강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고골의 강의가 형편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듬해 고골은 ≪지칸카 근교 농가의 야회≫의 3부라고도 불리는 ≪미르고로드≫와 ≪아라베스키≫를 발표했다. 전자는 1832년부터 2년에 걸쳐 집필한 작품집인데 <옛 기질의 지주>, <타라스 불바>, <비이>, 그리고 <이반 이바노비치와 이반 니키포로비치가 어떻게 싸웠는가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고골은 ≪미르고로드≫의 제목 밑에 ‘≪지칸카 근교 농가의 야회≫의 속편’이라는 문구를 기입함으로써 네 작품의 주제가 ≪지칸카 근교 농가의 야회≫와 연관성이 있으며, 우크라이나를 근거로 한 낭만성과 환상성을 내포한 작품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아라베스키≫에는 13편의 에세이와 3편의 단편 등 총 1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조각, 미술과 음악>, <중세 시대에 관해>, <세계사에 관해>, <초상화>, <소러시아의 구성에 대해>, <푸슈킨에 대한 몇 마디>, <오늘 날 건축에 대해>, <알-마문>, <인생>, <쉴로저, 뮬러, 그리고 헤르더>, <네프스키 거리>, <우크라이나의 노래>, <지리에 관한 생각>, <폼페이의 최후>, <5세기 말 인류의 이동에 대해>, <광인 일기> 등이다.
1835년 후반부터 고골은 상상을 초월한 악몽을 다룬 단편 <코>, 주인공의 속물성 자체를 서술 전개 방식으로 사용한 단편 <마차>, 약혼녀와 결혼식을 거행하기로 작정하고 연미복을 주문한 주인공이 결혼을 망설이다가 마지막 순간 창문을 뚫고 탈출하는 희곡 <결혼>(마치 평생을 미혼으로 지낸 고골의 내면세계를 보여 주는 듯한 작품), 그리고 가짜 검찰관의 소동을 다룬 희곡 <검찰관>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835년 12월 18일 페테르부르크 대학교수직을 사임하고 원고 집필에 매달린 고골은 이듬해 1월 30일 주콥스키의 저택에서 개최된 파티 석상에서 <검찰관> 대본을 낭독했고, 마침내 3월 초고를 완성했다. <검찰관>은 1836년 4월 19일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극장에서 초연됐다.
공연 직후 보수와 진보 진영에서 상반된 견해가 도출되었다. 전자는 분노하며 ‘중상모략을 담고 있는 5막 연극’이라고 혹평했고, 고골을 ‘파렴치함과 냉소가 넘치는 풋내기 러시아인’이라고 폄하했다. 반면에 후자는 이 작품을 러시아 사회와 관료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규정하고, 고골을 혁신적인 작가로 떠받들며 극찬했다. 그리고 1836년 5월 모스크바의 말르이 극장에서 두 번째 상연되었을 때도 대다수 관객들도 폭소를 터뜨리며 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단지 고위 관리에 대한 풍자 작품으로 인식하고 웃음으로 일관하는 관객들의 반응에 실망한 고골은 6월 6일 친구 다닐레프스키와 유럽 여행을 떠난다. 그 후 12년(1836~1848) 동안 고골은 외국에서 집필 활동을 하게 된다.
1836년 10월 스위스 베베이에서 고골은 <죽은 혼> 1부를 집필하기 시작했고, 1837년 겨울 프랑스 파리에서 <죽은 혼> 1부의 대부분을 완성했다. 1839년 겨울에 잠시 러시아로 귀환한 고골은 러시아 문단의 친구들 앞에서 <죽은 혼> 1부의 1장을 낭독했다. 1840년 4월에 고골은 ≪모스크바 신문≫에 “자기 마차가 없는 사람들 가운데 나와 함께 빈으로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연락 바람. 여행 비용 공동 부담”이라는 광고를 싣기도 했다. 스위스를 거쳐 1840년 10월에 로마로 돌아온 고골은 러시아 화가들과 사귀면서 창작 활동을 지속했고, <타라스 불바> 개정판과 단편 <외투>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1841년 <검찰관> 개정판과 <죽은 혼> 1부를 완성했고, 1841년 겨울에는 잠시 러시아를 방문해 <초상화> 개정판을 ≪동시대인≫에 발표했으며, 1842년에는 <결혼>, <도박꾼들>, <검찰관> 개정판, <타라스 불바> 개정판, <외투>, 그리고 <죽은 혼> 1부를 발표했다.
고골은 1843년 초부터 <죽은 혼> 2부를 집필하기 시작했으나 육체뿐 아니라 정신 건강도 악화되어 5월에 치료 목적으로 독일을 방문했고, 이후 유럽 각지를 돌아다녔다.
1845년부터 ‘선과 악’의 문제, 그리고 ‘종교와 윤리’의 문제가 고골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우울증을 앓기 시작한 고골은 그동안 집필했던 <죽은 혼> 2부를 1845년 7월에 소각했다. 1846년 병세가 심각해지면서 고골은 창작 활동을 거의 중단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 그는 ≪친구들과의 왕복 서한≫이라는 에세이집을 1847년 1월 발표했다.
고골은 1848년 3월 팔레스타인 성지순례를 하고 4월에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데사, 바실리예프카 영지, 그리고 수도원 등을 방문하고 10월부터 모스크바에서 <죽은 혼> 2부 집필을 재개했다. 1850년 12월 고골은 주콥스키에게 <죽은 혼> 2부가 거의 완성되었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죽은 혼> 2부를 계속해서 수정 보완하고 있던 고골은, 1852년 2월 이 작품에 등장하는 긍정적 인물에 대한 묘사에 큰 결함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 결함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1852년 2월 11일 밤 <죽은 혼> 2부를 소각하고 금식에 들어간 고골은 3월 4일 아침 모스크바 자택에서 사망했다. 고골은 <죽은 혼> 1부를 완성한 직후부터 집필했던 2부를 1843년, 1845년, 그리고 1852년 2월 각각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소각했던 것이다. 고골이 사망하고 소각되지 않은 2부는 초고 1장뿐이다. 문단의 지인들은 고골의 제작 노트에 있는 2부의 단편을 보정해 2장, 3장 그리고 4장을 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고골이 사망하고 3년이 지난 1855년에 <죽은 혼> 2부 1~4장을 출간했다.

역자 - 김문황
김문황은 서울고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아메리칸대학교(American University) 국제지역학 대학원에서 러시아 지역학 석사 과정을 수료한 후, 미시간주립대학교(Michigan State University) 슬라브어문학 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고골 전공)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강사를 거친 후, 충북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노어노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타라스 불바>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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