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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 국적 러시아
  • 출생-사망 1809년 3월 31일 - 1852년 3월 4일
  • 데뷔 1830년 단편 <이반 쿠팔라의 전야>

2014.12.08.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니콜라이 고골
우크라이나 소로친츠이에서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고골은 네진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처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졸업 후 열아홉 살 때 페테르부르크로 가, 1829년 V. 알로프라는 필명으로 서사시 [한스 큐헬가르텐]을 자비로 출간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실망한 고골은 책을 모두 소각한다. 고골이 작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831년 고향의 신화와 전설, 민담을 소재로 한 연작소설 [디칸카 부근 마을의 야화]를 발표하면서부터이다. 그후 고골은 페테르부르크 대학 역사학부에서 중세사를 강의하다 1835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집필활동에 전념하여 [넵스키 거리][광인 일기][외투]와 같은 페테르부르크를 소재로 한 단편들을 발표한다. 특히 [외투]는 고골의 단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삶의 목표가 고작 외투인 소시민의 모습과 비인간적인 관료제도를 희비극적으로 그려낸다. 1836년에는 부패한 러시아 관료제와 인간의 속물근성을 풍자한 희곡 [검찰관]을 발표해 호평을 받지만, 보수적인 관리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유럽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러시아 농노제도를 풍자한[죽은 혼 1, 2]를 집필하지만, 그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2권의 원고를 소각하는 등 정신적 혼란에 빠져 지내다 1852년 생을 마감한다.
리얼리즘 문학의 창시자라 불리며,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러시아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역자 - 이경완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고골 문학의 아라베스크 시학 연구: [아라베스끼] 문집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밖의 대표 논문으로 [성서 해석학의 관점에서 고골의 종교성 고찰], [고골, 우크라이나인 그리고/혹은 러시아인?: 성서적 기독교의 관점에서 고골의 민족적 정체성의 양가성에 대한 고찰], [로트만과 고골의 대화: 기호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신화적 인식을 중심으로], [체홉의 ‘소삼부작’에 나타나는 상자성의 중첩 구조], [근대 자유주의와 푸시킨의 오리엔탈리즘의 모호성] 등이 있다. 현재 고려대 러시아 CIS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죽은 혼>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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