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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3. 업데이트
로마 최고의 시인. 정식 이름은 ‘푸블리우스 베르길리우스 마로(Publius Vergilius Maro)’다. 이탈리아 포 강 중류 만투아(현재 만토바) 근교 안데스의 서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부 겸 도자기공이었다. 고향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후 메디올라눔(현재 밀라노)으로 가 웅변술과 여러 학문을 배웠다. 기원전 54년 로마로 가 본격적으로 웅변술을 배운 후, 실제 소송 사건 변론을 맡기도 하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이에 베르길리우스는 정치계 활동을 포기하고 문학에 전념하기로 다짐했다. 기원전 52년 나폴리로 간 그는 3~4년간 에피쿠로스학파에 들어가 지내며 그리스 철학을 깊이 공부했다.
이후 『전원시(田園詩, Eclogae)』와 『농경시(農耕詩, Georgica)』를 써서 이름을 알리며,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측근인 정치가 마이케나스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작품 활동을 했다. 이때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알게 되어 평생 동안 황제의 도움을 받았다. 베르길리우스는 로마 건국 이야기를 다룬 서사시를 써보라는 황제의 권유로 『아이네이스』를 쓰기 시작했다. 로마 시대 라틴 문학 중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아이네이스』는 호메로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그가 살던 시대에 호메로스의 작품들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필 11년째에도 끝내지 못한 채 병으로 사망하고 말아 미완성 작품으로 남았다. 원고를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원고를 그대로 살려내어 오늘날까지 이 작품이 전할 수 있게 했다.
<아이네이스>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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