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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 국적 영국
  • 출생-사망 1806년 - 1861년

2017.07.21.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

잉글랜드 북부 더럼(Durham)의 재력가에게서 8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난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Elizabeth Barrett Browning, 1806.3.6-1861.6.29)―배릿가(家)는 자메이카에서 수 세기 동안 노예를 부리며 설탕농장, 방앗간, 유리공장, 선박무역업 등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갑부 집안이었다. 아버지의 주요수입원도 자메이카에 있었고 그녀의 외가도 상당한 재력가였다.
엘리자베스는 집에서 남동생들의 가정교사로부터 라틴어와 희랍어를 배우며 역사, 철학, 문학 등의 고전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열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밀턴의 《실낙원》과 셰익스피어의 극 작품들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여섯 살 혹은 여덟 살 때부터 시를 썼다는 엘리자베스 배릿―그녀는 여덟 살 때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1688-1744)의 호메로스 영어 번역본에 완전히 매료되어, 열 살 때부터 희랍어를 배워서 호메로스 풍의 장편서사시 《마라톤전투》 (The Battle of Marathon, 1820)를 직접 쓸 만큼, 지적으로 아주 열성적인 학생이었고 문학적으로 매우 예민한 감성을 지닌 조숙한 시인이었다.
아버지의 완강한 결혼 반대를 무릅쓰고 브라우닝과 둘만의 비밀 결혼식을 올린 다음에 이탈리아로 도피하는 모험까지 감행한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그녀는 워즈워스의 뒤를 이을 계관시인 후보로 거론될 만큼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여류시인이었다. 그 자리는 테니슨에게 돌아갔지만, 1861년 6월 29일 15년간의 행복한 이탈리아생활을 뒤로하고 남편의 팔에 안겨 “아름다웠어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저세상으로 떠났다.


편역자: 김천봉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1969년), 안타깝게도, 몇 년 전에 폐교된 소안고등학교를 졸업하고(1988), 숭실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1994)와 석사학위를 받았으며(1996),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셸리 시의 생태학적 전망》이라는 논문으로 영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2005년). 인하대학교, 인천대학교, 아주대학교와 가천대학교에 출강하였고 지금은 주로 숭실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영문과에 출강하고 있다. 프리랜서 번역가로서 주로 영미 시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는데, 그동안 《겨울이 오면 봄이 저 멀리 있을까?》, 《서정민요, 그리고 몇 편의 다른 시》, 19세기 영국 명시 시리즈 6권, 19세기 미국 명시 시리즈 7권, 20세기 영국 명시 시리즈 8권, 《이미지스트》와 《이미지스트 시인들》, 《왜, 누가 수많은 기적을 이루나?》, 《희망의 식탁은 행복밥상》, 《오직 앓는 가슴만이 불변의 예술작품을 마음에 품는다》, 《사랑도 가지가지》, 《외로운 마음밭에 꽃詩를》, 《쓸쓸한 마음밭에 꽃詩를》, 《허전한 마음밭에 꽃詩를》, 《19세기 영미名詩 120》, 《사랑에게 다 주어라》, 《봄여름가을겨울 바깥풍경마음풍경》, 《여름의 보들보들한 징후, 빛과 공기의 은밀한 정사》, 《슬픈 마음밭에 꽃詩를》, 《새벽처럼 차갑고 열정적인 詩》 등을 출간하였다.

<당신이 꼭 나를 사랑해야겠거든: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 시선>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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