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디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강제 새로 고침(Ctrl + F5)이나 브라우저 캐시 삭제를 진행해주세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리디 접속 테스트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테스트 페이지로 이동하기

홍명희

    홍명희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888년 7월 3일 - 1968년

2021.01.28.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본관은 풍산(豊山), 호는 가인(假人, 可人) · 벽초(碧初). 1888년 7월 3일 충북 괴산 출생. 그의 부친 홍범식(洪範植)은 군산군수로서 경술국치 당시 자결한 순국열사이며, 장남 홍기문(洪起文)은 저명한 국어학자이자 한학자이다. 또한 손자 홍석중(洪錫中)은 북한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로 최근 그의 소설『황진이』가 남한에서 주는 만해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홍명희는 유년시절 향리에서 한학을 수학한 후 서울 중교의숙(中橋義塾)을 거쳐 동경(東京)에 유학, 다이세이중학(大成中學校)을 졸업했다. 육당 최남선 ? 춘원 이광수 와 더불어 조선 3재(三才)라 불리며 후일 한국현대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과 깊은 교우를 나누는 한편, 광범한 독서를 통해 서양과 일본의 근대문학과 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3·1운동 당시 괴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동아일보, 시대일보 등 신문사 편집국장 및 오산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민족통일전선 의 실질적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1929년 신간회 민중대회사건으로 재차 투옥되었다. 1928년부터 1940년까지 『조선일보』와 『조광』에 대하장편역사소설 『임꺽정(林巨正)』을 연재하여 작가로서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 1947년 민주독립당 당수 · 민족자주연맹 정치위원장으로서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하고 통일정부수립운동을 추진하던 중,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참가차 평양에 갔다가 북에 남았다. 북한에서 내각 부수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1968년 사망했다. 『임꺽정』은 봉건제도에 저항하는 백정 출신의 도적 임꺽정의 활약을 통해 조선시대 민중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재현한 점에서, 식민지시기 대표적 역사소설이자 한국근대소설사상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1952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휘문, 중경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때부터 8년 동안 ‘한겨레 그림판’을 그렸다.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로 있으며, 《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 1, 2》 《인생만화》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같은 책을 펴냈다.교육에 관심이 많아 서울시교육청 혁신학교 정책자문위원장을 맡은 적도 있다.이상석 선생과는 이팔청춘, 고입 재수 시절에 만나 지금까지 둘도 없는 동무로 지내고 있다.

<임꺽정> 저자 소개


본문 끝 최상단으로 돌아가기

spinner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