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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2.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김은숙
내 어린 날은 늘 혼자였다. 바로 위 오빠와 터울이 여덟 살이나 지고 몸도 허약하여 잠시 잠시 밖에 나가 동무들과 놀기도 했으나 이내 집으로 들어왔다. 들어와 툇마루에서 혼자 인형을 만들고 만든 인형들과 얘기를 주고받으며 놀았다. 놀다가 겨워지면 그 자리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시시로 모양이 바뀌는 구름처럼 시시로 바뀌는 생각 놀이에 빠져들곤 했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가 뜨거워지면 방에 들어가 엎디어 어른들이 보는 잡지(미 공보원에서 발행된 ≪자유의 벗≫)의 미끈미끈한 종이를 훌훌 넘기며 잡지 속 그림에 폭 빠지곤 했다. 큰 도시에 우쑥우쑥 올라선 빌딩들, 신작로보다 더 넓은 길을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 칼로 자른 듯 네모반듯하고 새하얀 이층 양옥집, 그 양옥집 파아란 잔디 마당의 삼색 파라솔과 파라솔 아래 노란 머리 식구들이 둘러앉아 있는 모습들. 어린 내게 그림들(엄밀히 말하면 사진이겠다)은 황홀 그 자체였다. 잡지의 글은 영어로 써 있는지라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림을 보며 나는 신나게 상상의 나래를 달고 내 멋대로 이야기를 꾸며 내고 내 안에 숨은 꿈의 이미지들을 그려 보곤 했다.
‘세상 어딘가에 아주아주 멋진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나는 별이 될 테야.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이름을 가진 별, 그 별이 주인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빛을 내도록 날마다 닦아 줄 거야….’
다소 결과론적인 말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지금 생각하니 그때 내가 꿈꾸던 그 별이 동화가 아니었을까. 동화를 써 오면서 조금이나마 빛이 나고 향기도 내게 된 덕분에 내 삶이 조금은 따뜻하고 윤택해졌다고 확신한다. 특히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 놀이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어린 친구들을 위해 어른인 내가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이러한 유년의 하루하루가 나로 하여금 좋은 동화를 쓰도록 단련시킨 훈련 과정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늘 일기를 썼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으나 국민학교(그때는 초등학교를 그렇게 불렀다) 다닐 때 대학 노트에 날마다 일기를 쓰는 친구를 보고 자극을 받았던 기억을 한다. 아무튼 내 글쓰기는 문학과 직접적인 연계가 없이 제 풀로 싹을 틔웠다 하겠다. 웬만큼 읽을 것은 읽었지만 그래도 많은 작품을 읽다가 특별히 자극을 받았다거나 문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집안 식구 누구에 의해 인도되었다거나 하지 않았다. 굳이 말한다면 자생적 글쓰기라 할까. 글을 쓸 때 혼자이듯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책을 보고 혼자서 꿈을 그리던 시간들이 훗날, 활자의 질서 안에 모여들어 나를 작가의 자리로 끌어올려 준 힘이 되어 주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중학교 1학년 때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가고 홀로 고향에 남아 학교에 다니면서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포개져 혼자에 꽤 익숙해 있었음에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때 나는 일기를 무척 길게 쓰곤 했다. 학교에서 돌아와도 엄마를 볼 수 없고 얘기 한마디 나눌 언니들도 없고 섬이 되어 버린 나를 위로해 줄 내 편은 오직 일기장뿐이었다. 일기를 쓰면서 나는 일기를 통해 내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 거기 힘들 때 나를 위로해 주는 내가 있어 좋았고 기쁠 때 나를 예뻐해 주는 내가 있어 좋았다. 사춘기 소녀의 마음속 깊은 데 고여 있는 생각들을 글로 옮겨 다시 보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참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을 새삼 깨달았다. 글을 쓴다는 것이 왠지 나를 조금은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아쉽게도 그때 일기장은 지금 내게 없다. 그러나 내 가슴에 추억으로 남아 있다.
추억은 기억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일에 대한 추억은 꿈속, 아니면 내 안의 무의식 속에 있으리라. 보통 어린 시절 얘기를 할 때면 우선 또렷이 기억에 떠오르는 장면들을 가지고 쉽고 편안하게 풀어 나간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다르다. 언제 어디선가 낯선 정경임에도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으로 슬그머니 작품 어느 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거나 창 너머로 슬며시 고개를 디민다.
추억 끝에 그리움이 딸려 온다. 그러고 보니 그리움 또한 기억인 게다. 그리움의 기억은 수채화처럼 지금도 내 삶의 주변으로 번진다. 나이가 들수록 번짐은 심해진다. 때로 현실을 접고서라도 그리움의 실체를 따라잡고 싶을 만치 애절하다. 다양한 그리움의 실체들이 시간별로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가장 오래된 기억이건만 지금도 어제처럼 또렷한 유년의 시간, 지병처럼 따라다니는 빈혈 증세에 시달리던 중, 고등 학창 시절, 대학 캠퍼스에서의 분방하던 시간, 원인이 무엇이든 늘 곤궁했던 형편에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세계문학전집을 월부로 사고 의기양양했던 시간, 사회인이 되어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각계의 예술인들을 만날 수 있었던 시간들, 가정을 꾸리고 일인 다역으로 살아온 시간들이 손을 내민다. 그중에도 나이가 들면서 더욱 강하게 나를 끄는 그리움은 단연 유년의 그리움, 곧 나의 태가 묻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리움들을 이야기로 잉태하기 시작한 것은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다.
아, 그전에 신문사 문화부 기자 시절 얘기를 잠깐 해야겠다. 문화 기사는 다른 부서 기자와 달리 수식어가 들어가고 어느 정도 문체미를 필요로 했다. 유명한 해외 가수의 내한 공연 기사를 쓰려면 감성적인 표현이 들어가야 했고 화가의 전시회 기사를 쓸 때 화가의 그림을 글로 대변해야 하는 고도의 미문을 요했다. 바로 그 기사로 해서 나를 오래 품어 온 시에로의 안테나를 동화 쪽으로 돌리게 된 계기가 만들어졌다. 바로 이영희 선생님과의 인연이다. 이영희 선생님은 당시 문화부 차장으로 내 기사의 데스크를 보신 분이다. 초급 기자가 기사를 쓰면 부서 안에서 기사를 점검하고 조언을 해 주는 선임 기자인 셈이다. 이분이 취재를 다니다 지인으로부터 내가 쓴 기사를 보고 칭찬을 대신 들었다며 내게 들려주곤 했다.
나아가 신문사 사주에게 특별 청을 넣어 당시 여성이 결혼을 하면 무조건 그만두어야 하는 사회 통념을 깨고 결혼 후에도 신문사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미혼으로 들어와 결혼을 하고 기자 생활을 한 첫 케이스로 알고 있다.
만삭의 몸으로 복대를 친친 감고 3백 명이 넘는 편집국 기자 및 일반 직원들의 눈총 같은 눈길에 늘 긴장을 하며 취재를 다니고 기사를 썼다. 그 무렵 문화면에 ‘이 주일의 시’라는 코너가 새로 만들어졌다. 시를 고르는 일을 시인 박목월 선생님이 하게 되어 매주 선생님한테 시를 받으러 갔다. 몇 번이나 갔을까, 할 즈음 선생님이 “김 기자, 시 한 편 써 오세요. 등단을 해서 시작 활동을 하세요” 하셔서 속으로 놀랐다. 나는 그 자리에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무슨 오기였을까, 무지에서였을까. 선생님으로부터 선의의 제안을 받은 순간, 나는 ‘내가 누구에 의해 들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하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목월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부음이 신문에 실렸다. 죄송한 마음을 기도로 대신했다. 그리고 만삭의 몸에 빨간 불이 켜지면서 신문사를 휴직 상태로 하고 집에 들어앉았다.
나는 지금도 내가 다니던 신문사에 휴직 상태로 되어 있다. 그래서 퇴직금도 여태 못 받고 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설혹 요구한다 해도 받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지만.
‘전치태반’이라는 고위험군 산모가 되어 난산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가까스로 살아나 아기 엄마가 되었다. 동시에 전업주부가 되었다.
신문사를 쉬기 직전 이영희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드렸다.
그때 이영희 선생님이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을 내게 했다.
“김 기자, 시도 좋지만 동화를 써 보면 어때요? 내가 좋은 선배 작가를 소개해 줄게요.”
그때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영희 선생님 소개로 처음 뵌 동화작가가 김요섭 선생님. 난 처음엔 이분이 이영희 선생님 부군인 줄도 몰랐다. 그렇게 이영희 선생님은 냉정했다. 조금은 차갑다 느껴질 정도로. 그런데 그 점이 나를 끌리게 한 점이기도 하다.
아기는 예쁜데 집에서 살림만 하자니 답답하고 공연히 화가 나기도 하고, 심신이 신문사에 다닐 때보다 더 고단했다. 마음의 평정을 잃으니 사는 게 온통 무의미하고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다. 이 시간을 또 다른 기회로 삼자.’
아기를 업고 동네 서점에 가서 책을 사 오고 요섭 선생님이 제시하는 숙제를 했다. 다름 아닌 습작 훈련이다. 도제처럼 혹독했다. 한번은 내게 독일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으셨다.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답해 드리자 그럼 됐다 하시면서 충무로에 다녀오라 했다. ‘무슨 용무?’ 하는데 거기 소피아 서점이라는 독일 문학 전문 서점이 있는데 거기 가면 헤르만 헤세의 동화집이 있을 거다 그걸 번역해 당신에게 보내라 하셨다. 아기를 업고 엎드린 채 사전을 찾으며 형편없이 짧은 독일어 실력을 사전 찾기로 휘갑을 치면서 작품을 읽어 나가며 숨이 막힐 만큼 감동의 너울에 휩싸이고 말았다.
‘아, 동화는 이렇게 쓰는구나. 이걸 가르쳐 주시려고 충무로에 다녀오라 하셨구나.’
처음 인사차 딱 한 번 뵈었을 때 너무 과묵하고 표정이 없으셔서 어떻게 저런 분이 동화작가람, 했는데 이분은 영혼이 행복해하는 동화를 쓰시는구나. 비로소 동화의 본령이 무엇인가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또 좋은 동화는 좋은 시와 같다는 동심원을 발견하고 시를 쓰고자 했던 나의 소망이 동화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 속에 동화의 소재가 넘쳐나고 아이들의 생각이 날로 커 가는 현장에서 나의 생각도 함께 커 가는 것을 체감하고 얼마나 황홀했는지 모른다. 그런 것이 없이 그냥 덤덤하게 아이들을 키웠다면 내가 얼마나 심심하고 지루했을까.
진고생을 해서 번역 원고를 보내 드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요섭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화 한 편을 써서 보내라는 주문이었다. “못 해요” 하지 못하고 맥없이 “네-” 하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이 큰일 앞에서 나는 누구보다 먼저 내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 주었다. 그리고 썼다.
물활의 세계에서는 과거·현재·미래가 한자리에 모여 속삭일 수도 있고 우주 공간도 마음대로 헤엄쳐 다닐 수도 있음을 그동안 감명 깊게 읽었던 동화를 통해 알게 된지라 내 상상 여행은 순조로웠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등단 작품이 <하얀 조개의 꿈>이다(≪아동문학사상≫).
그때 받은 원고료 3만 원(그때 화폐 가치로는 결코 적은 원고료가 아니다)의 감회는 지금도 나의 가슴에 훈장처럼 남아 있다. 그 후 전업 작가가 된 이후에도 원고료라는 이름으로 얻는 돈은 다른 데서 일해 받는 돈과 느낌이 달랐다. ‘감동의 값’이라는 생각에 실제 액면가보다 몇곱 몇십 곱의 시너지적 가치를 내 스스로 덧붙였다. 그래서 원고료를 받으면 금방 쓰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가 조심조심 꺼내 쓰곤 했다.
어린이 문학이 무엇인가? 말을 선사하는 일이다. 어떤 말을 선사할 것인가? 생각의 씨앗이 박힌 말을 선사해야 한다. 말을 통해 생각의 씨앗을 심어 줌으로써 마음을 키워 주는 것이다.
어린이가 몸만 큰다고 어른이 되지 않는다. 마음이 커야 어른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을 키워 줄 생각의 씨앗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그것은 문학을 통해 가능하다.
나의 동화 <여왕을 만났어요>에 좋은 생각의 씨앗 하나가 들어 있다.
옛집 담장 아래 작은 꽃밭에서 장미 세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제가끔 향기의 향연을 벌이고 우리 가족을 부르곤 했다. 어느 해던가, 그런데 세 그루 중 한 그루, 분홍 장미가 유독 탐스럽게 꽃을 피웠다. 신기해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뿌리 둘레의 흙이 포슬포슬하고 그 곁에 원뿔 모양의 흙탑 너댓 개가 쌓아져 있었다. 꽃삽을 가지고 와서 가만히 뿌리 근처를 파 보았다. 아- 지렁이들이 오글오글 모여 흙을 부수고 있지 않은가. 화앗- 생각 하나가 혜성처럼 피어올랐다. 이야기 한 꼭지를 만들었다. 제 집을 빼앗기고 그것도 모자라 새 침입자 장미를 위해 입이 헐도록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꽃을 피우느라 열병을 앓는 장미를 위해 땅속과 땅 위를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바람길을 내주는 지렁이 랑이의 헌신적 사랑 이야기다. 거기 지렁이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가장 곱고 부드러운 꽃잎 하나를 선사하는 장미의 고운 마음을 보탰다. 랑이는 주인집 식구들로부터 우연히 장미가 ‘5월의 여왕’이라는 말을 듣게 되고 황홀해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랑이가 여왕을 만났어요. 와서 보세요!”
유독 탐스럽게 핀 장미에 눈을 준 순간 떠오른 나의 판타지 세계에서 어린 친구들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잠시 동안은 희생이고 손해일지 몰라도 길게 보면 모두에게 아름다운 일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나오는 장미와 지렁이처럼 다른 사물과 사물 사이도 가능하다. 이처럼 동화의 판타지는 얼핏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두 사물 사이 새롭게 관계를 맺어 줌으로써 세상을 아름답고 촉촉하게 가꾸어 준다. 불화로 시작된 두 생명체의 관계가 화해의 모티브로 바뀌는 현장 체험이다. 이처럼 서로가 서로를 해코지하지 않고 상생하는 새로운 관계들을 판타지 동화를 통해 많이 접함으로써 어른이 되어서도 밝고 선한 삶을 살 힘을 비축할 수 있을 것이다.
1981년 상재한 첫 작품집 제목은 ≪꽈리불≫이었다. 내 유년의 시간에서 얻어 온 일화를 떠올리며 얻은 제목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시골집에 갔다가 밤이 되었는데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찾아 엄마가 호롱불을 들고 들판을 헤매는 것을 보았다. 돌아오지 않은 이 아이를 특별한 아이로 추어주었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대신해서 별아기를 만나고 숲 속 친구들을 괴롭혔던 여우 대장의 마음을 고쳐 주는 우리 모두의 사랑스러운 아기로 만들었다.
판타지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는 나만의 독특한 판타지 세계를 색칠해 오고 있다.
첫 작품집 속 중편동화 ≪빨간 왕관의 나라 하얀 왕관의 나라≫로 대한민국 문학상을 받았다. 상을 주는 주최측으로부터 수상 소식을 전화로 듣는 순간 나는 내가 아닌 줄 알았다. 동화를 쓰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나 감사하며 받았다. 문예진흥원에서 있었던 시상식에 문단 동료, 선후배들은 물론 우리 가족들도 와서 축하해 주었다. 솔직히 다들 놀라고 있었다. 정치학을 공부한 내가 각중에 문학을 한다 하더니만 문학상까지 받는다니 어찌 안 그랬을까.
난생처음, 그것도 나라에서 주는 문학상을 받고 나는 문학을 통한 ‘더불어 삶의 길’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오직 갈 길은 좋은 작품을 쓰는 일이라고.
내킨 김에 전공을 바꿔 문학 공부를 체계적으로 해 보자 맘먹고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그러나 애가 셋이고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가리늦게 공부라니…. 시험을 보고 합격 통지를 받으니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어쩌랴. 내킨 걸음인 것을, 하고 허위허위 잠을 줄여 가며 공부를 했다. 오후 수업이 끝나면 줄행랑을 치듯 택시를 타고 집에 오고 아침 수업 땐 또 만학의 아줌마가 지각을 해서는 안 되지 하고 또 택시를 잡아타고, 그러느라 꼼쳐 두었던 비상금 주머니가 헐렁헐렁해지고 말았다. 긴장과 고생의 클라이맥스는 졸업 논문 쓰는 일, 일반 대학원에서 동화로 석사 논문을 쓴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일반 문학 전공자의 연구 논문을 기웃거리며 독자적인 논지를 찾아 전개해야 하는 작업은 당시 심정으로 죽을 것 같은 고통이었다. 너무도 막막해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게다. 그래도 썼다. 패스도 했다. 지도 교수가 학문의 길을 가는 쪽으로 조언을 주었지만 접기로 했다. 더 좋은 작품을 쓰는 데 도움이 되려고 잠깐 들어온 곳이니 이제 홀가분하게 나가자, 하고.
잡지에 작품이 실리고 잇달아 책이 출간되고 작품집이 차곡차곡 쌓여 가는 동안 내 나이도 쌓여 갔다. 30대가 가고 40대가 오고 다시 50대, 60대를 치닫고 있다. 그사이 상복이 두 번 또 찾아왔다. 1998년 소천아동문학상을, 2000년엔 방정환문학상을 받았다. 작가가 되어 작품으로 상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기쁘고 소중한 선물이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동시에 내가 받은 상이 주는 참뜻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아주 어릴 때 내겐 좀 엉뚱한 데가 있었다. 거울 속 나를 바라보며 궁금해했다. 내 안엔 보이는 나 말고 무엇이 들어 있을까? 철학이란 단어는 까맣게 모를 때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거울은 대답을 해 줄 것 같아 심심하면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내 안엔 보이지 않는 어떤 세계가 분명 있을 거 같은 생각을 한 게다. 그것이 맞다는 확신을 가진 건 커다란 빙산 얘기를 듣고서다. 무지무지 큰 빙산 아래 그것보다 훠얼씬 거대한 밑둥이 바닷속에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지리 시간에 배우고 나서 나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빙산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빙산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삶이 얼마나 싱겁고 맛없는 삶일까 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 살지는 않으리라’ 하고 다짐했다. 그 다짐을 좋은 판타지 작품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단편 동화들을 그런 다짐 속에 잉태했다. 내가 낳은 모든 작품이 다 맘에 드는 건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어느 하나 버리고 싶지는 않다. <꽈리불>, <새야 새야 녹두새야>, <낙엽 한 장만 한 바람>, <날아라 구구>, <우주로 날아간 뒤주왕자>, <꽃을 몰래 가꾸는 거인>, <1959년 솜리 아이들> 등…. 단편은 물론 장편을 쓸 때도 어린 영혼들이 그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상상력을 극대화, 자유롭고 신나는 세상을 탐험할 수 있기를 소망해 왔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어린이들이 자연 속에, 혹은 사물 안에 숨겨져 있는 무관한 것끼리의 관계의 암호-를 해독하고 날마다 물음표라는 비눗방울을 하늘에 띄우며 자라기를 소망해 왔다. 그 소망은 내가 동화를 쓰는 마지막 날까지 이어질 것이다.
약력과 작품 및 수상 연보
1947년 전북 익산생.
1969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70년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로 근무.
1981년 단편동화집 ≪꽈리불≫(효성사) 출간. 대한민국 문학상 아동 부문 우수상 수상.
1984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원 국문과 석사 졸업.
1987~1997년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삼승 도서관’을 열고 공부방 겸 도서관으로 운영.
1988년 장편동화 ≪엄마의 일기≫(현암사) 출간.
1989년 장편동화 ≪새야 새야 녹두새야≫(현암사) 출간.
1991년 단편동화집 ≪뽕뽕돌과 성게≫(새남) 출간.
1992년 단편동화집 ≪초대받은 꽃반디≫(덕암클래스) 출간.
1993년 장편동화 ≪작은 아이들의 세계여행≫(오늘) 출간.
1995년 장편동화 ≪날아라 구구≫(현암사) 출간.
1997년 단편동화집 ≪낙엽 한 장만 한 바람≫(교학사) 출간.
1998년 <낙엽 한 장만 한 바람>으로 소천아동문학상 수상.
2000년 단편동화집 ≪숲 속의 시계방≫(문공사) 출간.
2001년 단편동화집 ≪핑키가 팬지를 만난 얘기≫(예림당) 출간.
2002년 장편동화 ≪아홉 글자 이름의 집≫(파랑새어린이), ≪우주로 날아간 뒤주왕자≫(교학사) 출간.
2003년 단편동화집 ≪고추 서리≫(대교) 출간. <우주로 날아간 뒤주왕자>로 방정환문학상 수상.
2004년 장편 소년소설 ≪1959년 솜리 아이들 1, 2≫(대교) 출간.
2004년 김요섭 선생님이 창간(1970~1973)했던 계간 ≪아동문학사상≫을 복간, 연간 무크지로 발행하기 시작.
2005년 장편동화 ≪끝순이네 새 식구≫(영림카디널, ≪수평아리의 모험≫ 개작), ≪광복 60년 동안 가장 빛나는 남북한 명작 동화≫(공저, 효리원) 출간.
2006년 단편동화집 ≪두레박 속의 우물≫(영림카디널), ≪아버지≫(공저, 늘푸른아이들), 단편옴니버스동화 ≪채소야, 놀자!≫(가문비) 출간.
2007년 장편동화 ≪빨간 왕관의 나라 하얀 왕관의 나라≫(효리원), ≪꽃을 몰래 가꾸는 거인≫(효리원) 출간.
2008년 단편동화집 ≪내가 변하고 있어요≫(영림카디널), ≪이야기를 파는 가게≫(영림카디널) 출간.
2009년 단편동화집 ≪아빠에게 선물을≫(공저, 교학사) 출간.
2010년 단편동화집 ≪엄마를 그렸어요≫(공저, 교학사), ≪낱말학교≫(공저, 교학사), 팁글 모음집 ≪세상을 향기롭게 만드는 배려 33가지≫(영림카디널) 출간.
2011년 단편동화집 ≪생각이 새콤달콤≫(교학사) 출간.
해설 - 최정원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불어불문학과,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불어불문학과 석사, 동대학원 비교문학과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대학에서 ‘현대비평론’, ‘글쓰기’, ‘동화창작론’ 등을 가르친다. 청소년 소설 ≪클론≫, ≪카르마≫, 동화 ≪꽃눈 잎새 낙엽 그리고 흰눈≫, ≪황금나라≫, ≪내 동생 아날로≫, ≪올챙이 어항 탈출기≫, ≪내 복에 산다 감은장아기≫, ≪바리공주≫, 그림동화 ≪라바≫, ≪달님과 꽃시계≫, ≪하늘새 방울이≫, ≪구렁덩덩 신선비≫, ≪태양의 동쪽 달의 서쪽≫, ≪눈의 여왕≫ 등의 책을 냈다. ≪세상을 살린 10명의 용기 있는 과학자들≫, ≪인생을 축제로 이끄는 마음의 로드맵≫ 등의 책을 번역했다. 1987년 1월 중앙일보사에서 ‘소년중앙문학상’을, 1994년 11월 MBC문화방송에서 ‘MBC창작동화대상’을 수상했다.
<김은숙 동화선집>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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