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시성(詩聖) 괴테의 시를 모은 ≪괴테 시선≫ 제6권은 ≪서동시집≫이다. 페르시아의 대시인 하피즈의 ≪디반≫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괴테는 하피즈의 모티프를 차용해 ≪서동시집≫을 쓴다. 디반에 담긴 현세적인 삶의 즐거움에서 종교적 동경으로, 물질에서 정신으로 승화하는 주제, 아이러니와 유머로 가득한 문체, 2행 대구의 ‘가젤’ 시 형식을 활용한 ≪서동시집≫은 서양과 동양의 ‘만남의 책’이다. ≪괴테 시선 6≫에는 괴테가 ≪서동시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쓴 <메모와 논문들>도 함께 수록했다.
서방 작가가 쓴 동방 시집
“디반(Divan)”은 페르시아어로 “모임”이나 “그룹”, 특히 “시집”을 의미한다. 1819년 괴테는 ≪로마 비가≫와 비교되는 ≪서동시집(west-östlicher Divan)≫을 내놓는다. ≪로마 비가≫가 시인이 로마 스타일로 생각하고 살면서 쓴 ‘사랑의 시들’이라면, ≪서동시집≫은 페르시아 스타일로 쓴 시들이다. 괴테가 1814년 12월에 그때까지 쓴 50편의 시들을 모아서 붙인 제목은 “페르시아 시인 마호메드 셈세딘 하피즈의 ≪디반≫과 지속적으로 관련된 독일 시 모음”이었다. 그다음 해에 괴테가 슈투트가르트의 출판업자인 코타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짧게 “독일 디반”이라고 불렀고, 1816년 2월 코타가 발행하던 ≪교양인들을 위한 아침 신문≫에 게재하기 위해 보낼 때는 “서동시집 또는 동방과 지속적으로 관련된 독일 시 모음”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또한 ≪1817년을 위한 부인 수첩≫에 부분적으로 인쇄할 때의 제목은 “괴테가 1814년과 1815년에 모은 서동시집”이었다. 1819년에 처음 출판할 때의 제목은 “괴테의 서동시집”이었으나, 그 밑에 아랍어로 “서방의 작가가 쓴 동방의 디반”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1827년에 괴테가 마지막으로 직접 편집해서 코타 출판사에서 발행된 전집에는 “서동시집”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괴테와 동방 연구
1814년 6월 괴테는 요제프 폰 하머가 번역한 하피즈의 ≪디반≫을 읽게 되었는데, 이 만남은 괴테에게 새 시대를 열어 주었다. 이 만남은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시대 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괴테의 정신과 “새로운 파괴력을 담은 ‘건강한’ 창작의 힘”을 하나로 결합해 주었다.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했던 괴테의 세계관은 동방의 문학에 나타나는 열정과 정신의 결합을 이해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원래 동방의 세계는 괴테에게 낯설지 않았다. 비록 괴테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우선적으로 다루었지만, 동방에 관한 연구의 끈도 절대 놓지 않았다. 1773년에는 ≪마호메트≫ 드라마를 쓰기 위해 아랍 문화를 연구했고 1783년에는 사막을 유랑하는 고대 아랍인인 베두인들의 작품을 영국계 아랍인 존스가 번역한 책을 기초로 번역했으며, 1797년에는 ≪프랑크푸르트 신문≫에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이라는 글을 싣기도 했다. 그는 1811년 ≪시와 진실≫에서 자신의 청소년 시절에 관해 쓰면서 구약 성서에 나오는 가부장들(족장들)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기도 했는데 이런 가부장들의 모습을 괴테는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느꼈고, 이런 생활 형태를 동방이나 고대 그리스에서 찾았다. 괴테는 어린 시절 이후에도 계속 동방에 관한 여행기를 즐겨 읽으면서, 학자들이 동방에 관해 쓴 책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그래서 불어나 영어, 라틴어나 독일어로 쓴 책들이 낯설지 않았다. 괴테는 예나대학의 동양학 교수를 추천할 만큼 동방에 대한 전문가였다.
비교 불허의 연작시
괴테는 대부분의 “디반” 시를 직접 손으로 깨끗하게 써 놓았다. 그리고 대부분 그 아래에 그 시를 쓴 날짜와 장소를 기록해 두었다. 왜냐하면 그 시들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경험한 이야기의 기록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괴테의 “디반”에는 자신의 자화상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괴테는 자기 자화상을 배열할 때 전기적 순서가 아니라 테마별로 나눠 놓았다.
이에 따라 “디반” 시는 전체적으로 인물의 통일성과 균형을 갖춘, 잘 구성된 연작시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경험 많은 삶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세상을 자신 안으로 수용했던 사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드넓은 정신적 공간은 노년의 괴테이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서동시집≫의 모티프
≪서동시집≫에서는 기본 모티프들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데, ‘종교적 동경’이라는 모티프는 처음에 나오는 <시인 편>과, 좁은 의미에서 ‘종교 편’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세 편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전체 편에 사랑의 모티프와 ‘우월함’의 모티프가 들어 있다. 서정시와 격언시에도 큰 차이가 없다. 한번 가슴에서 내뱉은 말은 그 후 사물들을 더 많이 관찰하면서 이어지고, ‘위대한 개성(die große Persönlichkeit)’이 전체 영역에 전개되면서 연작시를 만들어 낸다. 처음에는 시인의 세계관으로 나타나고, 이어서 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관찰하면서 탁월하게 행동하는 인간으로서 투쟁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가 상대하는 사람과는 부정적인 의미의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이와 관련한 또 다른 존재는 전제 군주인 티무르다. 긍정적인 의미의 모티프는 사랑과 정신으로, 줄라이카와 ‘술 따르는 시동’이 이런 인물에 속한다. 마지막에는 종교적 전망을 보충하면서 연작시 전체를 위에서 덮어 주는 천장 역할을 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위대한 주제들이 울리는데, 더욱 숭고한 세계에 대한 비유로서의 인간 세계, 인간의 세계에서 더욱 숭고한 세계로 넘어가는 것, 페르시아의 자연 숭배, 광범위한 원시 종교를 상징하는 언어로서 사후 세계에 대한 이슬람 전설 등이다. 여기서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려 드는 것은 시인의 관심 밖이다. 시인은 신화와 아이러니를 독특하게 섞어 말하고 나서 그 말을 다시 허공에 띄운다. 시인은 자신의 한계를 철저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 ≪괴테 시선 VI≫에는 1827년에 괴테가 마지막으로 직접 편집했던 전집의 ≪서동시집≫, 즉 “새로운 디반(Neuer Divan)” 전문과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괴테가 직접 저술한 <서동시집의 더 나은 이해를 위한 메모와 논문들>을 수록했다. 한국괴테학회 회장을 지낸 임우영 교수는 정확한 번역과 함께 당시 시대 상황과 작품의 배경, 인간관계, 작품이 풍자하는 대상 등을 자세한 해설과 주석으로 제시해 작품을 좀 더 정확하고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