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천보 연간, 당 현종 치세의 다양한 궁중과 민간 고사
≪개원천보유사≫는 ‘당나라 현종 개원 · 천보 연간의 전해진 이야기’라는 뜻으로, 오대의 문인 왕인유가 지은 역사 쇄문류(歷史瑣聞類) 필기 문헌이다. 수많은 문학에 자취를 남긴 현종과 양귀비 고사를 중심으로 당 현종 치세의 궁중과 민간의 신기하고 재미있는 다양한 이야기 146조를 수록했다.
필기 문헌의 전문가 김장환 교수는 수많은 판본을 교감해 세계 최초로 전문을 번역 소개한다. 원문과 교감주를 첨부했을 뿐 아니라, 일본 각본에 수록된 왕인유의 자서(自序)를 보충해 실었고, <부록>에는 <왕인유전(王仁裕傳)>, <황비열(黃丕烈) 발문(跋文)>, <역대(歷代) 저록(著錄)>을 첨부했다.
전해진 소문과 숨겨진 일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는 당나라 현종(玄宗)의 치세 기간인 개원·천보 연간의 유문(遺聞 : 전해진 소문)과 일사(逸事 : 숨겨진 일)라는 뜻으로, 오대(五代)의 문인 왕인유(王仁裕)가 찬한 역사 쇄문류(歷史瑣聞類) 필기 문헌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판본에는 현종의 치세 기간 전반에 대한 다양한 고사 145조가 수록되어 있는데, 개원 연간 초기에 정사에 전념하고 간언을 채납하며 현신을 등용하는 현종의 성군으로서의 면모를 칭송하는 고사, 요숭·송경·장구령과 같은 현상(賢相)을 칭송하는 고사, 이임보·양국충과 같은 총신(寵臣)을 비판하는 고사, 양귀비의 총애와 그녀의 병증에 관련한 고사, 현종의 형제인 오왕(五王)과 양국충의 사치와 향락 행태에 대한 고사, 장안의 명기(名妓)와 부호에 관한 고사, 명사의 고상한 풍류에 관한 고사, 길조와 흉조에 관한 고사, 신비한 기물과 기이한 동식물에 대한 고사, 궁중과 민간의 상춘(賞春) 풍습과 절기에 따른 세시 풍습에 관한 고사,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는 기구에 관한 고사, 괴이한 일을 기록한 고사 등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개원천보유사≫의 내용은 전해진 소문과 숨겨진 일이라는 뜻의 “유사”를 표방했지만, 일부 고사는 사실에 근거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당시 궁중과 민간의 다양한 사회생활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보다 다양한 측면에서 당나라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필기 문헌이라고 하겠다.
≪개원천보유사≫의 문헌적 가치
첫째, ≪개원천보유사≫에는 후대 사서(史書) 편찬에 사료를 제공하거나 정사에 기술되어 있지 않은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자료들이 들어 있으므로, “보사지궐(補史之闕)”이라는 사료 필기의 가장 큰 특징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자료 취사 선택에 엄격했던 ≪자치통감≫에도 ≪개원천보유사≫의 여러 이야기가 채록된 사실은 ≪개원천보유사≫의 사료적 가치를 입증해 준다.
둘째, ≪개원천보유사≫는 그 자체로 당나라 역사 쇄문류 필기 문헌의 대표작으로서 후대 소설과 희곡 창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현종과 양귀비 관련 고사는 이후 ≪양태진외전≫·<오동우>·<장생전>의 창작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중국 문학사상 현종과 양귀비 애정 고사의 계승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 외에도 풍몽룡(馮夢龍)의 화본 소설(話本小說) ≪성세항언(醒世恒言)≫, 청나라 무명씨의 전기 <문서대(文犀帶)> 등의 창작의 바탕이 되었다.
셋째, ≪개원천보유사≫에는 후대에 성어로 정착된 고사가 다수 실려 있으며, 당나라 때 새롭게 등장한 어휘 자료가 많이 들어 있어서, 중고 시기 한어(漢語)를 연구하는 데 참고 가치가 높다. 말등자를 끊고 말채찍을 붙든다는 뜻으로 선정을 베푼 관리의 이임을 백성이 애석해함을 말하는 절등유편(截鐙留鞭), 쉽게 무너질 권력에 의지한다는 뜻의 의빙산(依冰山), 한 이불 속의 남녀, 즉 부부를 뜻하는 피저원앙(被底鴛鴦) 등은 모두 ≪개원천보유사≫에서 비롯한 성어들이다. 또한 붉은 실로 묶는다는 뜻으로 결혼을 달리 이르는 말인 계홍사(繫紅絲), 앵무새의 별칭인 녹의사자(綠衣使者), 그네 타기의 별칭인 반선희(半仙戲), 말을 이해하는 꽃이란 뜻으로 미인을 비유하는 해어화(解語花) 등은 모두 ≪개원천보유사≫에서 새롭게 등장한 어휘들이다. 이러한 성어와 어휘는 이후 문인들의 전고 활용과 수사 기교를 풍부하게 해 주었다.
넷째, ≪개원천보유사≫에는 궁중과 민간의 세시 풍속에 관한 자료가 풍부히 들어 있어서 당나라의 생활 풍습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당시 장안 도성의 화려한 상춘(賞春) 풍습, 정월대보름의 벼슬길 점치기, 한식날의 그네 타기, 단옷날에 찹쌀로 만든 분단(紛團)과 각서(角黍) 먹기, 칠석날에 견우성·직녀성에 제사 지내고 바느질 솜씨 빌기, 추석날에 달구경하기 등 주요 절기마다 궁중과 민간에서 행하던 세시 풍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다섯째, ≪개원천보유사≫는 일찍이 13세기 이전인 고려 시대 때 한국에 전래되어 한국 한문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인 예로 고려 시대의 대문호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4에 연작시 <개원천보영사시(開元天寶詠史詩)> 43수가 실려 있는데, 개원·천보 연간의 고사를 기록한 여러 전적을 인용하고 그 내용을 각각 칠언 절구(七言絶句) 1수씩으로 묘사했다. 그 밖에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문집에서도 ≪개원천보유사≫의 고사를 전고로 활용한 작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명대(明代) 건업(建業) 장씨(張氏) 동활자본(銅活字本) ≪개원천보유사≫를 저본으로 하고 일본 각본과 ≪고씨문방소설(顧氏文房小說)≫본·≪역대소사(歷代小史)≫본·≪사고전서(四庫全書)≫본·≪설부(說郛)≫본 ≪개원천보유사≫를 가지고 교감했으며, 베이징 중화서국(中華書局) 점교본(點校本)(2006)을 참고했다. 아울러 교감이 필요한 원문에 한해 해당 부분에 교감문을 붙였다. 또한 일본 각본에 수록된 왕인유의 자서(自序)를 보충해 실었고, <부록>에는 <왕인유전(王仁裕傳)>, <황비열(黃丕烈) 발문(跋文)>, <역대(歷代) 저록(著錄)>을 첨부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개원천보유사≫에 대한 번역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초역이자 완역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