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로 알려진 에밀 졸라는 미술비평가로도 활동했다. 무명이던 마네의 예술적 가치를 최초로 인정하고 지원해 주었으며, 당시의 화단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전폭적인 미학적 지지를 보냈던 인물이다. 또한 안이하고 관례적인 미술비평 방식에 안주하고 있던, 하지만 당대에는 그 권위를 인정받던 집단과 개인을 향해 단호하게 공격을 가했던 인물이다. 예술과 사회적 정의를 위해 거대한 조직과의 전쟁도 서슴지 않았던 용기 있는 인물이었다. 불의에 대항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할 줄 알았던 그는, 그래서 표현의 자유를 몸소 실천하며 대중을 일깨워 준 영웅이기도 하다. 이 책에 소개하는 에밀 졸라의 글들은 그의 미술비평이 지니는 가치를 재평가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내용들이다.
에밀 졸라의 미술비평문은 대부분이 신문 기고용이었기 때문에 단편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미술비평에 대한 원칙과 방법론은 25세에서 30세 사이에 형성된 것이다. 미술비평에 대한 그의 지식은 생트뵈브(Sainte- Beuve), 에드몽 아부(Edmond About), 테오필 고티에(Théophile Gautier), 보들레르(Baudelaire), 카스타냐리(J. A. Castagnary), 프루동(P. J. Proudhon), 텐(H. Taine) 등과 같은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발표한 저술과 이론을 접하면서 축적되기 시작했다. 특히 1864년에 읽게 되는 카스타냐리의 글은 졸라에게 깊은 감명과 함께 예술에 대한 몇 가지 원칙을 제공하게 된다. 그것은 예술가가 자신의 스승들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사실이란 점, 현대 예술에서 풍경은 각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 우리의 일상생활은 예술의 중요한 소재라는 점 등이다. 훗날 졸라는 이러한 원칙들을 자신의 미술비평의 이론적 토대로 활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에밀 졸라 자신만의 독창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술 작품의 주제에 대한 문제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하나의 작품이 반드시 하나의 주제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 속에서 주제를 확인하는 순간, 그 작품을 이해했다고 믿는다. 이것을 역설적으로 말하면 작품의 주제가 작품을 대변한다는 것인데, 에밀 졸라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주제 중심의 비평은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작품에 어떤 줄거리나 도덕성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주제에 대한 철학적 의미 부여 행위는 경우에 따라서 예술 창작의 진실과 무관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작품의 주제가 바로 작가의 철학이라는 사고방식은 예술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변명이라고 주장하면서, 대중이 예술 작품을 어떤 주제로만 이해하고, 또 그 작품의 가치를 주제의 철학적 가치로서 평가하려는 사실에 개탄했다.
“화가들에게 있어서 주제란 그림을 그리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마네가 작품 속에 몇몇 오브제와 인물을 조합시켜 놓았다면, 그것은 마네의 철학적 사고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운 색채와 대비를 이루어내고 싶다는 그의 욕망이 표현된 것이라고 에밀 졸라는 설명한다. 마찬가지 논리에 의해, 티치아노(V. Tiziano)의 작품 〈우르비노의 비너스(Venus of Urbino)〉를 모사한 것으로 알려진 마네(E. Manet)의 〈올랭피아(Olympia)〉 역시 주제적 접근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작품이다. 그가 화폭에 담은 벌거벗은 여인과 꽃다발을 든 흑인 하녀, 그리고 검은 고양이, 이것들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란 말인가? 에밀 졸라의 설명에 따르면, 이 그림을 그린 마네도, 그리고 미술평론을 하는 졸라 자신도 이 그림의 철학적 의미를 모른다. 마네는 그저 하나의 예술 작품을 완성시켰을 뿐이며, 이 작품의 가치는 “미술은 색과 형태에 의해서만 흥미롭다”라는 보들레르의 말로써 충분히 설명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이렇게 에밀 졸라는 미술 작품을 하나의 주제로 인식하면서 그럴듯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그가 예술 작품의 주제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닌 만큼 그가 선호하는 주제들이 있었다.
에밀 졸라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예술적 주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주제들, 말하자면 우리의 생활 속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발견되는 삶의 현장에 대한 주제들이다. 이런 테마를 통해 그는 삶의 에너지와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해 내려고 했다. 그는 작품이 제공하는 생명의 소리, 냄새, 느낌 등을 통해 세상의 진실을 포착했다. 이것은 졸라에게 있어서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이 본다는 하나의 고립된 감각이 아니라 공감각적 교감으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자신을 순수하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분석가로 자평했던 에밀 졸라는, 하지만 그의 미술비평에서만큼은 낭만주의적인 취향을 간직한 채 이원적 예술관을 유지해 왔다. 그의 이원적 예술관은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예술의 자율성에 관한 상반된 사고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적으로 상쇄될 수 없는 내적 모순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 그의 사고와 기질의 차이로부터 유발된 이 이원적 모순성 때문에, 그의 미학은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정형화된 기존의 이론과 전통을 부정하던 그의 힘은 바로 이 이원적 미학이 제공하는 변증법적 힘이었으며, 그래서 그의 부정은 긍정이 되고, 그의 긍정은 다시 부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원적 예술관 덕분에 과학적이면서도 초과학적인 그의 미학적 독창성, 즉 ‘하나의 예술 작품은 하나의 기질을 통해 드러나는 창조의 한 모퉁이’라는 그의 예술 작품에 대한 정의가 탄생하게 된다.
그의 미술비평은,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화가의 ‘개성’ 또는 ‘기질’을 중심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설명하려 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졸라가 즐겨 사용한 ‘개성’이나 ‘기질’이란 용어는 그것이 미술 작품의 내재적 특성을 강조한다는 차원에서 미술의 자율성 인정에 대한 문제와 연결된다. 그리고 미술의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졸라의 주장은 미술 작품의 미학적 가치를 작품의 내재적인 구조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관점이 되므로, 결국 그의 미술비평은 더 이상 미술 작품의 평가 기준 설정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그 평가 기준에 대한 인식론적 차원으로 발전해 나간다.
졸라가 주제 중심적 미술비평을 거부한 이유는 이러한 인식론적 방법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작품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후각, 청각, 촉각 등과 교감하면서 그것을 공감각적 차원에서 이해하려 하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가 미술비평에 관련된 모든 규범과 수사학을 거부했던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였다. 물론 졸라 스스로가 인식론이란 용어를 사용했다거나 이와 관련된 어떤 구체적인 언급을 한 바는 없다. 그러나 그가 비평가를 의사에 비유하면서, 비평가는 자신이 검토한 작품과 작가에 대한 내용을 “결론을 내려고 하거나, 규범을 제기하려는 시도 없이” 있는 그대로 적어야 한다고 언급한 것 자체가 지극히 인식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