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을 꿈꾸는 귀농인과 농부들은 왜 벼농사에 대한 로망을 버리지 못할까?
가장 자연적인 벼농사에서 찾는 삶의 변화!
농사 연차가 쌓이거나 귀농을 하고 나면 저절로 마음속에 품게 되는 것이 바로 ‘벼농사에 대한 로망’이다. 이러저런 작물을 재배하다 보면 작은 논에라도 제 손으로 벼를 심고, 그 벼로 쌀을 지어 식구들과 먹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과 식구들의 힘으로 온전히 자급자족할 수 있는 일상을 꿈꾼다. 사실 농사를 짓는 건, 특히나 단위면적당 소득이 제일 낮다고 하는 벼농사를 하는 건 시대의 흐름을 벗어나는 행위다. 이러한 경제적 잣대로 우리의 주곡인 쌀이 푸대접 받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자본의 논리에 꿈쩍하지 않고 벼농사를 꿈꾸는 이들의 경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벼가 우리에게 ‘쌀’이라는 곡식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벼농사는 단순히 쌀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여러 작물이 그러하겠지만, 대한민국에서 순전히 제 힘으로 쌀을 자급할 때 비로소 자족할 수 있는 범위 또한 넓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말이 있듯이 벼농사는 건강, 문화, 자녀의 교육 등 일상에 대해 성찰하고 삶을 변화하는 기재가 된다. 비단 농사를 짓는 농민이 아니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렴풋이 알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쌀시장 개방이 온 나라 화젯거리의 중심이 되고, 모두가 민감하게 받아들였던 까닭은 대한민국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쌀에 대한 특별한 DNA’ 때문이었다.
못자리도 하지 않고, 모내기 작업도 없다!
20년 차 유기농을 실천하고 생명살이를 성찰하는 ‘생명의 농부’
그가 전수하는 농사와 삶의 기술
무수히 많은 작물 중에 벼를 선택하더라도, 벼농사에는 많은 선택지가 놓여 있다. 모판을 돈으로 사고, 모내기는 이앙기로 하며, 풀은 제초제를 써서 관리하는 방법도 있고, 환경농업을 다짐하는 사람들은 왕우렁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벼농사는 ‘직파 재배’이다. 못자리를 하지 않고, 모내기도 하지 않고, 싹을 틔운 볍씨를 논에다 훌훌 뿌리는 농법이다. 자연에 가장 벼농사이다.
사실 기계와 비료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고 하면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불안감이 앞선다. 역설적이지만, 기계와 비료는 어느 정도 생산성을 보장해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러한 이기(利器)를 쓰지 않고, 벼가 자력으로 자라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직파 기술은, 한편으로 무모해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직파는 단순히 벼를 뿌리고 자랄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농부가 벼와 풀, 물과 땅을 알아야 한다. 벼의 생존방식을 이해해야 하고, 그러자면 자연스럽게 벼와 소통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그 과정을 저자는 어려운 한자어를 배제하고, 초보 귀농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로 차근차근 풀어낸다. 저자는 벼농사를 전혀 모르는 이들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 말과 풍부한 사진과 그림으로 직파 재배와 그를 통한 삶에 대해 성찰한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봄부터 4부 겨울까지 일하는 순서에 따라 계절별로 정리했다. 1부 봄의 ‘삽으로 논두렁 깎기’에서부터 3부 가을의 ‘쌀겨 거름 뿌리기와 논 갈아엎기’까지는 직파 재배의 기술적인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 4부 겨울에서는 벼농사를 둘러싼 포괄적인 이야기, 벼농사가 우리의 삶과 문화에 얼마나 밀접하게 관계 맺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1996년에 귀농하여 20년 차가 된 저자는 유기농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농부뿐 아니라 여러 귀농?농업 단체와 모임에 초청을 받아 재미있고 깊은 울림을 주는 강연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겪은 시행착오와 효율적인 방법을 바탕으로 집대성한 직파 재배의 교과서이다.
햇빛과 바람, 흙과 미생물, 물과 왕우렁이 그리고 농부의 관심으로 짓는
자연에 가장 가까운 벼농사, 직파 벼 자연재배!
벼 직파 재배는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세계적으로는 각광을 받고 있는 추세다. 미국의 주요 쌀 생산지인 아칸소 주와 캘리포니아 주는 각각 건답직파와 담수직파로 쌀을 생산하고 있고, 유럽의 벼 재배면적의 35%(2010년 기준)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직파재배를 실시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2위 쌀 생산국인 인도의 차티스가르 지역에서는 87% 면적에서 직파재배를 하고 있고, 가까운 일본에서도 직파 재배 면적이 늘어나면서 새 피해를 막고 입모율을 높이기 위해 식물의 필수 미량요소로 종자를 코팅하는 기술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제초제, 풀을 죽이는 풀약이다. 직파를 하는 많은 나라의 농부들이 약을 치고 있다. 저자는 제초제를 치지 않는 방법을 소개한다. 그 비결은 바로 논 관리에 있다. 저자는 논 수평을 맞추고 왕우렁이를 이용하여 제초제를 대신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자신의 논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논 지도’ 그리기이다. 기계와 비료를 쓰지 않는 만큼, 농부 스스로가 기계와 비료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저자는 단순히 벼를 농사하는 마음보다 직파하는 과정 하나하나를 즐기고,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고 벼와 소통하는 마음을 지니라고 충고한다. 그 과정을 겪다 보면 싹을 틔운 볍씨를 논에다 뿌리면서 묘한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생명에 대한 감성이 깨어난다. 이 책을 논농사를 하고 있는 농부뿐 아니라 귀농을 계획하고 벼만큼은 제 손으로 짓겠다고 다짐하는 예비농부가 꼭 일독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