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아 내가 간다, 길을 비켜라! 각자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
근대 소설의 효시, 머뭇거리는 청춘에게 거울이 되어줄 유쾌한 고전, 흔들리는 사회에 명쾌한 방향을 제시해줄 지혜로운 키잡이 『돈키호테』를 함께 읽는다!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 라 만차의 돈키호테』는 고전 중의 고전 『돈키호테』를 ‘자유인의 정의감과 정신성, 인류애의 구현’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한 책으로서 ‘자유, 자치, 자연’을 현재 진행형으로 구현하는 저자 박홍규의 독특한 관점이 400년 전의 세르반테스와 그의 명저 『돈키호테』와 만나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와 정신성이 과거에 어떤 식으로 조명되었는지, 현재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보여주는 청소년을 위한 고전 읽기 해설서다. 각자가 스스로 인생의 주체가 되는 삶, 끊임없이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삶을 위한 아름답고 따뜻하며 가슴 찡한 헌사인 이 책은 장장 1500페이지가 넘는 원작을 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가장 정확하고 알찬 내비게이션이기도 하다. 그동안 세상 사람들은 『돈키호테』에 대해 “『돈키호테』는 인간의 정신이 낳은 최고이자 최후의 걸작이다(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비범하고, 자유롭고, 인간적인 작품인가?(토마스 만)”, “세상의 모든 소설은 『돈키호테』를 변주한 것이다(르네 지라르)”, “『돈키호테』는 인류의 바이블이다(생트 뵈브)” 등의 찬사를 바쳤고, 2002년 노르웨이 노벨연구원은 『돈키호테』를 “전문가들이 선정한 최고의 세계문학 100권 중 1위”라고 발표했다. 세계문학 역사상 가장 칭송받은 작품이자 ‘돈키호테형’이라는 인간 유형의 전범을 제공했을 만큼 대중에게 친밀한 소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지점에서 무엇을 시사하는지 탐색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 라 만차의 돈키호테』에 오롯이 담겨 있다. 바로 약자를 돕고 불의를 바로잡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시골구석을 뛰쳐나간 편력기사 돈키호테와 시종일관 그를 따르며 서서히 인간성의 변화를 겪는 산초 판사를 통해 ‘만들어진 세계 안에서 복종하는 존재=인간’에서 벗어나 ‘자기 운명의 개척자이자 주인공=인간’으로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한 눈에 눈물을 담고 한쪽 눈으로 윙크를 보내는’ 돈키호테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친절하고 자세한 해설은 물론, 원작에 실린 귀스타브 도레의 연작판화 120점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이 책의 특장이라 하겠다. 원작의 방대함 때문에 선뜻 책 읽기를 망설였던 청소년, 고전을 가르치는 교사, 그리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왜, 여전히, ‘돈키호테’일까?
『돈키호테』가 400년 동안 호평을 받아온 것은 17세기 초의 작품이 현대의 시각을 보유했을 뿐더러 고전의 덕목인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와 가치를 그대로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소설 안에 또 다른 작가를 내세워 이야기를 시작하게 했다가 죽게 만들고, 주인공이 직접 자기 이름을 지어 존재성을 부여하며, 작중 인물들이 자신이 등장하는 이야기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듣고 논하게 하는 장면들은 얼마나 현대적인가? 대다수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마저 보장받지 못했던 그 시기에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통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명성이나 부, 명예와 순종, 권력과 충성 같은 것들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 온전한 인격, 평등한 사회, 덕성이라고 강조한 것은 또 얼마나 도전적인가? 물론 이 외에도 『돈키호테』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를 되물으며 인간 사회의 본령을 돌아보게 해준다. 번듯한 직위나 재산을 소유하기커녕 ‘기사소설에 미친’ 그저 그런 400년 전 변방의 사나이를 통해서. 세르반테스를 위대한 작가라 칭하고, 그가 창조한 ‘돈키호테’를 영원히 살아 있는 인간상으로 인정하는 이유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의 탄생
근대 이전의 소설은 전지적 시점을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주인공들은 여러 개의 줄을 매단 마리오네트처럼 작가의 의도대로 사고하고 움직인다. 마치 오늘 우리의 청년들이 대안도 비전도 없는 어두운 사회에서 어른들이 던져주는 낡은 강령을 따라 더듬거리며 길을 걷는 것과 같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다르다. 여기서는 이름으로 결정된 ‘신분’이나 ‘특권’을 가진 주인공이 아니라 스스로 이름을 짓고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가 등장한다. ‘만들어진 인간’에서 ‘만들어가는 인간’으로, ‘객체’에서 ‘주체’로 자신의 운명과 인생을 직접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뜻에 복종하는 존재 유형은 거부된다. 『돈키호테』에 와서야 인간은 비로소 전능한 자의 뜻대로 움직이는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결정하고, 운명을 조정하며, 자신의 욕망을 좇아 타협하고 조율하는 행위의 주체가 된 것이다. 그 뿐인가? 『돈키호테』에는 수많은 등장인물이 각각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대화함으로써 소통한다. 비중이 크든 작든 각자가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운명을 개척하는 자유로운 개인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나는 정의롭게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돈키호테는 거인으로 상징되는 악을 없애고 선이 가득한 세상을 일구기 위해 노력했다. 무모하긴 해도 진심 어린 정의감에서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행동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철저한 자기 확신을 통해 권력과 물질의 탐닉에 저항하고 인류애를 추구하면서 자유인으로서의 정의감, 정신성, 인류애에 충실했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인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즉 황당무계한 에피소드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철학’을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행동한 것이다. 이는 돈키호테가 특히 ‘덕’을 강조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산초에게 “덕을 수단으로 삼고, 유덕한 일을 행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을진대… 혈통은 상속하는 것이나 덕은 습득하는 것이며, 덕은 혈통이 갖지 못하는 본질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네” 하고 충고한다. 두말할 필요 없이 인간에 대한 평등사상을 강조하는 내용인 동시에 ‘유덕한 일을 행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목적임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행동하되 헛된 꿈을 가지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세상에 덕이 되는 일을 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가 아닐까? 돈키호테는 이것을 400년 전에 이미 간파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