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교과서에 소개된 루쉰, 중국사에 등장하는 루쉰의 모습은 반쪽에 불과하다
지식인 루쉰의 삶과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라!!
『가거라 용감하게, 아들아!』는 루쉰의 시기별 활동과 주요 작품을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루쉰을 ‘~주의자’라거나 ‘중국 국민문학 작가’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루쉰은 몇 가지 틀 안에 가둘 수 없을 만큼 변화무쌍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누구나 아는 소설을 통해 루쉰을 바라보는 대신 그의 성격과 사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여러 ‘잡문’을 바탕으로 루쉰의 참 모습을 조명한다. 바로 비판적 지식인이자, 권력과 권위를 부정한 자유인이며, 모순을 안고 살아간 평범한 인간, 그리고 인간성을 끊임없이 탐구한 작가로서의 루쉰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루쉰의 참 모습에 더욱 쉽게 다가설 수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자유로운 지식인’ 루쉰의 재발견이다. 지배층을 비난하면서 민중에게 아부하는 일부 지식인과 달리 루쉰은 ‘정신승리’에 도취된 민중의 몽매함마저 따끔하게 비판했다. 「광인일기」, 「쿵이지」, 「머리털 이야기」, 「고향」, 「아Q정전」처럼 냉철한 통찰과 간결한 문체, 인간미가 배어나는 유머 가득한 작품들을 통해서. 물론 누군가는 “100여 년 전의 인물과 그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궁금해할 것이다. 답은 명료하다. 루쉰이 작품 활동에 집중했던 1920~30년대와 현재의 중국은 전혀 다르지 않고, 우리 사회 역시 사람을 소유물로 부리던 중국 전통 시대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반(反) 권력과 반(反) 노예를 향한 100여 년 전 루쉰의 외침이 오늘날 한국에서 설득력 있게 울려 퍼지는 이유를 돌아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거라 용감하게, 아들아!』가 보여주는 마지막 미덕이다. 개인과 국가의 정체성에 고민이 많은 청소년들, 올바른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자 애쓰는 청년들, 인생의 길이 보이지 않아 고군분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작가 루쉰, ‘유머’를 택하다
이 책은 ‘기존의 루쉰 이해 방식과 관점’과 다른 길을 간다. 저자가 루쉰의 ‘잡문’을 중시한다는 점이 그 첫 번째다. 냉철한 통찰과 처절한 절규에도 따뜻하게 웃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글들이 대개 그의 잡문인 탓이다. 루쉰의 소설과 잡문들은 자칫 건조하고 까칠하게 읽힌다. 그러나 보편성을 잃지 않는 주제의식, 모던한 유머감각,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도 적용되는 삶의 진수들은 그의 글을 ‘고전’으로 분류하는 데 이의를 달지 못하게 한다. 허세에 찬 문장과 유머 없는 구호만 판을 치는 우리 독서계에 큰 모범이 될 것은 물론이다. 두 번째, 이 책은 루쉰을 ‘어떤 이념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인’으로서의 작가적 정체성을 강조한다. 루쉰은 공산주의를 인정하는 어떤 글도 쓴 적이 없으며, 국수(國粹)주의에 빠진 이기적인 민족주의를 찬양한 적도 없고, 모든 사상에 회의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글을 썼다. 또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진짜 글을 쓸 수 없을 때’에는 외국 서적들을 번역하여 중국에 소개함으로써 민중의식의 지평을 넓혀주고자 애썼던 열린 작가였다.
저항하는 지식인 루쉰
루쉰은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나 지식인으로 살다가 지식인으로 죽었다. 다른 민중처럼 농기구를 쥐는 대신 그는 펜을 들었고, 중국인의 인간성과 국민성을 개혁하고자 비판의 날을 세웠다. 따라서 민중을 위한다는 핑계로 아양을 떨기는커녕 민중의 몽매함을 늘 지적했다. 물론 루쉰은 자신을 포함한 지식인과 권력자도 신랄하게 공격했다. 민중을 억압하는 전통 사상, 그것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민족주의, 민중을 미화하면서 인민에 아부하는 사회주의 역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어떤 대세와도 타협하지 않고, 항상 회의하고 비판하면서 언제나 자유로운 사고를 유지했기에 루쉰은 늘 소수파로 살았다. 우리나라에도 루쉰은 유명 작가로서 그의 작품 대부분을 서점에서 만날 수 있으며, 관련 논문과 서적도 여럿 출간되었지만 이런 책들에서는 루쉰을 대체로 민족주의자 내지 사회주의자라고 소개할 뿐이다. 자유로운 지식인의 모습은 도무지 찾아보기 힘들다. 루쉰이 위대한 것은 특정한 사상에 갇혀서가 아니라 어떤 이념에든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인데도!
중국인 루쉰
이 책의 또 다른 관점은 ‘루쉰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루쉰을 아무리 좋아해도 그는 중국인이다. 따라서 중국인에 대한 이해 없이 그를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물론 그는 동아시아인이라는 점에서 서양인보다는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진다. 학자 중에는 같은 유교 문화권이라는 이유로 그를 동아시아 작가라며 우리와 같은 테두리에 묶으려는 입장도 있다. 어쩌면 유교로 상징되는 동아시아문화는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보다 한국에 더욱 뚜렷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루쉰을 읽는 이유 중에도 동아시아적인 관점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루쉰은 그런 것들을 철저히 배격한 사람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는 루쉰을 동아시아 지식인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학계의 일부 입장에 반대한다. 그럼에도 루쉰이 중국인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이유는 루쉰을 통해 중국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또한 중국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한국을 타인의 거울에 비추어 차분하게 돌아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가거라 용감하게, 아들아!』, 이렇게 읽자
제1장에서는 우리가 루쉰을 다시 돌아보는 이유를 설명한다. 중국 사람들이 루쉰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와 더불어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인 한국과 일본에서 루쉰을 받아들이는 관점의 차이를 안내한다. 이어서 제2장 ‘성장과 모색’(1881~1908)에서는 루쉰의 젊은 시절과 일본 유학 시절 및 초기 사상을 다룬다. 제3장 ‘외침과 방황’(1909~1924)은 루쉰의 30~40대를 논하는 장으로서 루쉰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지낸 이야기, 베이징 시절, 그리고 첫 번째 소설집인 『외침』과 『방황』에 실린 작품을 각각 소개하면서 분석한다. 제4장 ‘혁명과 문학’(1925~1936)은 루쉰의 40~50대를 다루는데, 여기서는 당시 중국 상황과 맞물린 루쉰의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다. 이어 제5장에서는 루쉰이 말한 지식인의 「입론(立論)」을 검토하고, 마지막 제6장에서는 루쉰이 본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