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에 절망하는 인간의 운명!
온 세계가 전쟁의 불꽃에 휩싸였던 20세기.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정략과 음모의 도구가 되어 유린되는 시절이었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는 이 시대의 비극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꿈 많은 소년들의 사춘기부터 짚어나간다. 티보 집안 형제들뿐만 아니라 이들과 교류하는 퐁타냉 집안까지, 프랑스인의 일상에 깊이 관계된 종교문제가 이원적 대립형태로 설정되어 있다.
티보 집안의 폐쇄적인 가톨릭 환경과 퐁타냉 집안의 너무 개방적인 개신교 환경의 차이는 자크 티보와 다니엘 드 퐁타냉의 성격 차이를 만들어낸다. 또한 그들 집안 내력은 환경으로 인한 차이와 더불어 소년들의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이들이 자라서 품게 되는 꿈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뒤 가르는 인물들의 내?외면적 갈등을 통해 정신과 육체의 부조화, 병과 죽음에 대한 부조리 등 인간의 깊숙한 무의식 세계까지 파고든다. 독자는 이러한 고찰에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저자가 염두에 둔 것이었다.
바람 앞 촛불 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한가롭게 청춘의 빛나는 대로를 거닐던 청년들의 눈앞에 역사라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이름으로 불길한 얼굴을 들이민다. 평화로운 프랑스의 두 가정을 둘러싼 사람들의 심리연구로 진행된 이야기는 점차 그 무대를 확장시켜 전 세계로 나아간다.
애초, 뒤 가르는 작품 속에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1931년에 교통사고를 겪은 뒤 작품의 방향을 전면 수정하기에 이른다.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1914년 여름〉과 〈에필로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위협적 상황을 앞에 두고 집필되었다. 그래서 그러한 시대의 광포한 분위기와 그 속에 휘말린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더욱 자연스럽게 담길 수 있었다. 뒤 가르는 과거의 교훈을 통해 위험한 미래를 경고하려는 의도로 작품을 썼다. 1937년 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 산 스웨덴 아카데미는 대하소설 《티보네 사람들》의 〈1914년 여름〉 편에 노벨문학상을 수여하였다.
작중인물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흐름 속에 꿰여 그때까지 자신들이 믿고 있던 가치에 대해 돌아본다. 국경에 상관없이 공통된 인간으로서의 동일한 가치는 ‘애국주의’ 또는 ‘민족주의’라는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자크는 사람들의 변모에 좌절하면서도 끝까지 그들의 시각을 변화시키려 애쓴다. 반면 의사로서의 경력에 신경 쓰며 안락한 생활을 영위해온 형 앙투안은 과거의 느긋한 의식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평범한 인물들인 이들은 인간의 가치를 뒤흔드는 현실을 바꾸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이상주의자 자크는 현실을 너무나 앞서 나간 이상으로 인해 모욕당한 인간으로서 ‘개죽음’을 당하며, 현실주의자 앙투안은 마지막에서야 현실을 벗어난 이상적 세계를 꿈꾸다 죽는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려도 살아야하는 평범한 사람들
《티보네 사람들》은 어느 것 하나도 쉽사리 흘려버릴 수 없는 소설이다. 자칫 별것 아니라고 넘길 수 있는 곳에도 뒤 가르의 세심한 의도가 숨어 있다. 저자는 작중인물들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 이들이 마주치는 작은 사건에도 결코 작지 않은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심리의 미묘한 움직임을 간파하고, 왠지 모를 어두운 마음이나 보잘것없는 행동 하나하나를 겹쳐 놓아 작중인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는 아마도 로제 마르탱 뒤 가르가 “소설의 올바른 길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진실이라 여겨지는 것을 구체적으로 구축하고, 평범한 수단으로 착실하게 이야기해 나가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는 《티보네 사람들》을 계획하며 두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첫 번째는 인물의 성격을 유전과 환경을 포함해서 파악하고 그 심리와 감정의 움직임을 통해 작중인물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육체와 정신의 관계, 특히 병과 죽음이라는 부조리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두고 인간의 삶과 죽음이 무엇인가 하는 궁극적 문제에 파고드는 것이 두 번째였다.
이 대하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이 안에 뒤 가르의 의도와 그 소설 사상이 적절하고도 아낌없이 녹아들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비록 소설이 발표된 무렵에는 대중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날이 갈수록 작품성을 비롯해 대중성으로도 그 빛이 더하는 뛰어난 인간 고찰의 명작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