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다룬 두 편의 명작
동서문화사의 'World Book' 시리즈의 124번째 권이다. 『국화와 칼』과 『사쿠라 마음』을 번역한 이 책은 '일본'이라는 주제를 공통적으로 다룬다. 베네딕트의 『국화의 칼』은 문화인류학의 고전으로, 미국와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이는 저자가 일본의 국민성을 '국화'와 '칼'이라는 단어로 명료하게 집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자 시선에서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일본사회와 일본문화를 분석한다.
한편 라프카디오 헌의 『사쿠라 마음』 역시 일본문화사적 명작으로, '불가사의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 및 연구'라는 부제가 붙은 작품이다. 현대 기술문명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실존을 되찾으려 했던 저자는 신화적 사고를 문학적 글쓰기로 되살렸다. 일본사회 속에서 전승된 다양한 민담 및 전설을 통해 그는 현대의 척박한 문명에 대비되는 생명력을 제시했다.
일본을 바라본 서양인들의 시선이란
서양인들의 동양에 대한 동경은 그들이 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이후 계속되어 왔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논쟁도 끊이지 않았다. 『국화와 칼』과 『사쿠라 마음』은 바로 그 서양인들이 그들의 물질적이고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본 일본에 대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다.
『국화와 칼』은 일본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마치 교과서처럼 읽히는 작품이다. 이는 저자가 일본의 국민성을 직감적으로 파악해 훌륭하게 부각시켰기 때문이며, 또한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일본인의 성격과 맥을 같이하는 다양한 사회현상을 풀어내는 실마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비교적 객관적인 눈으로 일본을 바라본 이 작품에 반해 『사쿠라 마음』은 친근한 눈으로 일본을 바라본 서양인의 시선을 담고 있다. 다소 주관적으로 치우친 경향이 없지 않으나 그 모습 또한 당시 일본의 한 단면을 이루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는 ‘불가사의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 및 연구(Stories and Studies of Strange Things)’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현대인이 보기엔 불가사의한 것은 하나도 실려 있지 않다. 이야기 대부분은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아마도 미지의 세계를 찾아 일본까지 흘러들어온 한 서양인 남성의 탐구정신이 사물을 색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도록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을 대비한 보고서
문화인류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베네딕트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대비하려던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작품 원형이 된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이후 여기에 살을 붙이고 보완한 것이 바로 『국화와 칼』이다. 한 번도 일본에 가보지 않은 채 자료수집만을 통해 집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6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로 자리하고 있는 놀라운 작품이다.
베네딕트는 일본의 가족제도와 사회구조, 종교와 역사의 변천과정 등을 모두 망라하며 일본에 대한 해석을 전개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미국의 모습과 대조?비교하여 일본문화의 특질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도록 하고 있다. 그녀는 이 보편적인 비교 기준을 ‘자유’라는 개념에서 찾았다. 적어도 미국인과 일본인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자유’의 기준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런데 제목이 왜 ‘국화와 칼’인가. 일본인은 국화를 좋아한다. 국화가 가진 그 소박하고 깨끗하며 엄숙한 아름다움 때문인데, 이와 동시에 그들이 마음속에 칼을 품고 있으므로 상반된 두 요소를 얽어 놓은 것이다. 베네딕트는 제목을 통해 일본인들의 겉과 속이 다른 교묘한 이중성을 철저히 꿰뚫어 보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미지의 나라 일본을 사랑한 푸른 눈동자
지구 어딘가에 유토피아가 있으리라 믿은 라프카디오 헌은 오랜 방황 끝에 극동의 나라 일본에 다다른다. “이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말하자면 몹시 견디기 힘든 바깥공기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희박한 또 매우 산화한 곳의 어느 중간적 실재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라고 할 만큼 그는 일본을 좋아했다. 때문에 그의 일본관에는 상당히 강한 주관성이 배어 있어 일본인과 일본문화에 너무 후한 점수를 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당시 일본 정부가 어떻게 황국 이데올로기를 쌓아 올렸는지, 또 그 정부가 ‘일본의 전통’을 얼마나 기만적으로 조성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유럽 근대 기술문명에 짓눌려 죽기 직전인 인간성을 되살리려고 할 때, 근원적이고 창조적인 힘을 보여줄 ‘신화적 사고’로 나아가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헌의 인생 체험과 세계 인식에 의해 여과된 일본의 귀기어린 신화를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