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종교·도덕의 구속을 거부하고
열정적 구도정신으로 문학의 가능성을 실험한
20세기 현대문학 거장! 노벨문학상 수상!
문학적 감성과 지성에 대한 생명력 넘치는 시도!
절대 순수에 대한 사랑 《좁은 문》 앙드레 지드는 갈등을 겪는 영혼의 불안을 대담한 기법으로 세밀하게 묘사하여 심리소설을 개척한 거장이다. 그는 《좁은 문》《전원교향악》《지상의 양식》등 불후의 명작을 세상에 내놓아 1947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소설《좁은 문》(1909)은 성스럽고 순결한 소녀 알리사와 그의 사촌동생 제롬이 겪는 비련의 이야기이다. 평론가 자크 리비에르는 말한다. “이 작품은 단숨에 읽을 필요가 있다. 알리사가 어느 아름다운 날 사랑 때문에 눈물을 머금은 채 힘없이 의자에 기대앉아 책을 읽는 것처럼.” 이렇듯 이 작품은 읽기 시작하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흡인력을 갖고 있다. 이 자기희생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을 고뇌하고 또 도취하게 한다. 그러나 전편에 넘쳐 흐르는 서정적 아름다움에 도취해 알리사의 마음씨에 눈물 흘리는 것만으로는 이 작품을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좁은 문》은 지상의 사랑을 버리고 오로지 천상의 사랑만을 동경한 알리사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자칫 청순한 그리스도교적 풍토를 노래한 작품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야말로 앙드레 지드의 사상이 나날이 성장해 나가던 시기에 품었던 속마음을 아주 통렬하게 실험한 기록이라 할 것이다. 대를 거듭한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난 앙드레 지드가 그리스도교적 선입관을 좇은 ‘자기희생에 따른 미덕의 추구’를 극한의 경우로 두고, 그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이를테면 지드 탄생 80주년을 맞이한 방송 인터뷰에서 지드가 밝혔던 것처럼, 이 작품은 지드의 정신발달 과정에 있어서 그가 처음으로 ‘인간의 최종목적은 신의 문제를 조금씩 인간의 문제로 바꾸어 가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시기에 쓰였다는 점이다. 또한 이 소설의 여주인공 알리사의 모습은 뒷날 지드의 아내가 된 사촌누나 마들렌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좁은 문》은 그의 자전적 작품임이 분명하다.
한편 앙드레 지드는 이 작품을 통해 엄격한 금욕주의로 인한 비인간적인 자기희생의 허무함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가장 적게 말하면서 가장 많은 것을 표현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감정의 은밀한 움직임을 간결하고 꾸밈없이 표현하고 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듯 지극히 어려운 순수한 사랑의 추구! 그러나 사랑을 논리적으로 반성할 때, 오늘날에는 사실상 성립되기 어려운 사랑을 알리사의 사고를 통해 날카롭게 지적한다.
눈먼 아름다움을 연주하는 《전원교향악》 앙드레 지드가 머문 스위스 북부 한적한 시골마을은 이 소설의 주무대로서 등장한다. 소설제목에서 느껴지는 맑고 아름다운 자연의 향기는, 목사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눈먼 소녀를 만나 그녀에게 빠져들며 느낀 것과 흡사하다.
이 시각장애 소녀는 자신을 보살펴주는 목사에 대해 존경과 사랑을 품어오다가, 막상 눈을 뜨게 되자 자신에 대해 순수한 사랑과 헌신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목사가 아니라 그의 아들이었음을 깨닫고는 목사 가정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유인 지드로서는 율법으로서의 종교가 참을 수 없었다. 은총 앞에 율법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면, 그 율법 이전에 청정무구한 상태가 있었음을 어찌 인정하지 않을 수 있으랴. 성 바울의 뜻과는 관계없이,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는 내가 살았더니’라는 구절이 지드의 정신에 무시무시한 의미를 다가왔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무구한 마음으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고 자유롭게 행동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형벌·위협·금지 등은 없었으므로 이것들은 모두가 성 바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율법의 종교가 아니라 자유로운 사랑의 종교를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 앙드레 지드의 생각이었다. 《전원교향악》(1919)은 이러한 지드의 사상을 소설로 쓴 것으로서 주인공 제르트뤼드가 눈을 뜨기 전의 모습에서 그대로 드러나 있다.
복음서적인 사랑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이 소설은, 등장인물 내면의식의 은밀한 부분을 예리하게 파헤친 문제작이며, 완벽한 문체의 주옥 같은 작품이다. 《좁은 문》과 더불어 내적 자아를 살피는 프랑스 특유의 문학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존재의 어둠을 비추는 《지상의 양식》 《지상의 양식》(1897)은 지드의 사상적 자서전이다. 폴 발레리는 이 작품에 대해 “온 세계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탈출과 해방의 교과서이자 여행안내서”라고 말했으며, 평론가 자크 리비에르는 “우리의 영혼이 달라져 새로운 취향과 쾌락을 즐기게 됐다”고 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윤리규범과 기술지침, 이론지식 등이 집약된 실천의 길잡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상대를 설득하고 교육하려는 의지와, 스승의 사상을 이을 조심성 있는 제자를 기르려는 의지가 뚜렷이 드러난다. ‘양식’이라는 표제에는 나름대로 어울리는 셈이다.
앙드레 지드는 수차례에 걸쳐 아프리카를 여행한다. 아프리카의 작열하는 태양과 야성적 풍토는 지금까지 그를 묶어온 엄격한 종교적 윤리로부터 해방을 가져왔고, 모든 구속에서 풀려난 강렬한 생명력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삶의 길임을 깨닫게 한다. 지드는 이런 사상을 힘찬 시적 산문을 통해 새로 체험한 육체의 복권과 생명력의 분출을 노래한다.
앙드레 지드가 바라본 도스토옙스키론 이 《도스토옙스키》(1923)는 앙드레 지드가 도스토옙스키 탄생 100주년인 1921년에 행한 강연 내용을 출간한 것이다. 지드는 《앙드레 발테르의 수기》 이래로 그를 사로잡아 오던 반지성주의적 반항과 도스토옙스키 사상 사이에 깔린 깊은 유사점을 발견하고, 이에 대해 많은 감명을 받는다. 지드는 그의 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위대함은 그가 이 세상을 결코 하나의 이론으로 해석하지 않았고, 또 이론화의 유혹도 받지 않았던 데 있다. 발작은 항상 정념의 이론을 찾았다. 그런데 발작이 끝내 그런 이론을 찾아내지 못한 사실은 그를 위해서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론이 없어서 그만큼 더 위대하다는 역설적인 생각. 곧 이론을 넘어서는 복잡하고 다각적인 삶의 현실에 대한 외경과 고민은 이 《도스토옙스키》뿐만 아니라, 지드의 작품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참된 소설은 인간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이 아니라 인생관의 혁명을 위한 것이며, 이 혁명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지드는 도스토옙스키라는 보기 드문 동지를 만난 것이다. 따라서 지드의 이 《도스토옙스키》는 엄밀한 의미의 비평서라기보다는 도스토옙스키라는 위대한 소설가를 통해서 지드 자신의 사상을 제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