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와 워렌버핏의 평생 성공 지침서!
꿈이 없으면 청춘이 아니다!
프론티어정신의 원천 벤저민 프랭클린!
미국 민주주의 사상의 원점, 인간 행복추구 삶의 전범!
위대한 인간 프랭클린 불멸의 인생방법 대서사!
꿈이 있는 청춘들의 필독서!
위대한 미국의 정신, 벤저민 프랭클린. 그의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100달러 지폐.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출판된 자서전을 떠올린다. 불멸의 고전인 《프랭클린 자서전》은 그동안 전세계 청춘들에게 널리 읽혀 꿈을 심어주며 큰 영향을 끼쳤다.
흔히 미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는 프랭클린은 출판인쇄공이자 저널리스트, 철학자, 발명가, 자선사업가, 정치인, 외교관, 과학자, 문학가라는 다양한 직함을 갖고 있어 어느 분야에서도 일인자였다. 그중에서도 문필가, 문학가로서의 활약은 여러부문의 경력 가운데 변치 않는 그의 삶의 핵심적 특징이다. 프랭클린 자신도 그 점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몇 번이고 자서전에 ‘문필가의 재능으로 덕을 봤던 이야기’를 들고 있다. 만년까지도 업무에 파묻혀 여유가 없었던 프랭클린이 어린 시절부터 ‘문필가의 재능’과 펜을 잡는 습관을 들이지 않았더라면, 이 인류 최고의 선물 《프랭클린 자서전》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프랭클린 자서전 제1부는 1771년 7월부터 썼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실제로는 후대의 수많은 독자들에게 들려주게 되었다)으로 이루어졌으며 문체 또한 편하고 쉽다. 그 뒤 왕당파로 돌아선 아들과 소원해지면서, 1784년부터 쓰기 시작한 제2부는 아들 윌리엄이 아닌 독자를 대상으로 하 되었고 전체적으로 문체와 내용에 공적(公的) 성격이 강해졌다. 제3부는 1788년 필라델피아에서 썼고, 몇 페이지 되지 않는 마지막 제4부는 세상을 뜨기 반년 전에 썼는데 글 속에 쇠약해진 프랭클린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이렇듯 그는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19년 동안 이 귀중한 자서전을 써 냈다. 그 뒤 친필원고는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끈질긴 추적 끝에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프론티어 정신의 원천!
《프랭클린 자서전》이 처음 출간되자, 독자들은 이 책을 입신양명과 성공의 교과서로 받아들였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토머스 멜론은 열네 살 무렵 우연히 이 자서전을 읽고 용기를 얻어,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엄청난 부를 쌓아 백만장자가 되었다. 미국 대표 재벌 멜론 가문을 세운 그는 늘 “《프랭클린 자서전》을 읽었던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프랭클린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밝히고 있지는 않다. 다루어지는 내용도 집필 목적에 맞추어 그때마다 각색된다. 그럼에도 프랭클린의 생애는 그가 중단한 자서전 집필을 권한 친구의 편지에서도 드러나듯이 ‘주목받을 만한 가치 높은 것’이며, 《프랭클린 자서전》은 ‘그저 한정된 몇몇 사람만이 아닌 수백 수천만의 독자에게 유익하고 흥미로운 작품’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축약판이라 할 만큼 풍부한 세계가 《프랭클린 자서전》에 담겨 있다는 것은 세계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프랭클린은 자서전 첫머리에 밝힌 것처럼, 가난하고 이름 없는 가문에서 태어난 한 사람을 사회적 성공으로 이끈 ‘실천적 방법’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19세기까지 미국은 엄청난 경제력으로 두각을 드러내던 신흥 국가였으니 이러한 풍조는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입신양명과 무조건적인 성공예찬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치부될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독자들은 어떻게 《프랭클린 자서전》을 읽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프랭클린 자서전》은 그의 뜻대로 근면절약의 효용성과 세속적인 성공 비결이 담긴 입신양명의 바이블로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너무도 세속적인 관심, 공리주의, 물질 지상주의, 그리고 강요적이고 자기만족적인 태도 때문에 멜빌, 마크 트웨인들의 격렬한 반발과 비판을 받기도 했다.
프랭클린의 성격과 사상에서 미국정신의 원천을 찾아볼 수 있다. 여러 민족이 함께 살고 있는 미국은 전통과 정체성의 기반이 되어 줄 공통적인 민족적, 문화적 뿌리가 없다. 이러한 ‘신인류’ 미국인은 과거에 안주하지 못하고 끝없이 미래를 향해 모습을 바꿔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프랭클린 또한 결국 독립혁명 투사로서 미국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에 이른다.
또한 이 자서전을 세속적 입신양명 이야기가 아닌, 미국 사회 특유의 ‘성공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미국은 계층이 고정된 봉건사회와 달리 유동적이다. 능력만 있으면 신분이나 학력에 관계없이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젊은 나라 미국에서는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성공의 기회가 주어져 있어, 재능과 노력이 따른다면 누구나 돈과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프랭클린은 그 꿈을 이루어냈고, 그 방법과 비결을 이야기 하므로서 세계에 젊은이들을 매혹했다.
성공으로 가는 정신적 나침판!
토머스 칼라일은 프랭클린의 초상화를 보고 “여기 모든 양키의 아버지가 있다”고 했다. 또 그와 정치적, 외교적으로 수없이 대립했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조차 “프랭클린의 명성은 라이프니츠, 뉴턴, 프리드리히 대왕, 볼테르 같은 유럽 대표인물보다 더욱 널리 유럽인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고 인정했다. 그처럼 프랭클린은 왕족과 귀족, 성직자, 과학자뿐만 아니라 주방 요리사나 하인들에게까지도 ‘인류의 친구’로서 잘 알려져 있었다. 프랑스의 정치가?경제학자였던 안 로베르 자크 튀르고는 프랭클린에 대해
“그는 하늘에서 번개를 훔쳤지만, 곧 군주에게서 권위까지 훔칠 것” 놀라운 평가를 했다.
마르크스는 위대한 경제학자 프랭클린을 존경했고, 데이비드 흄은 그를 신세계 최초의 철학자이자 위대한 문필가로 꼽았다. 과학자로서도 이름을 떨쳐, 영국학사원 회원이 되어 코플리상을 받았다. 그 밖에 사회개혁가이자 정치인, 외교가로서 그가 쌓은 업적은 일일이 늘어놓을 수 없을 정도다. 프랭클린의 존재는 초창기 미국 자본주의의 큰 행운이며 그가 끼친 영향은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을 넘어설 정도다. 《프랭클린 자서전》은 그저 개성적인 한 인물의 성장 기록이 아니라, ‘이성의 시대’라고 불렸던 18세기와 독립을 노래하던 미국의 뉴프런티어 정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고전으로 끊임없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영원한 청춘의 기록이다. 이 책에서는 근면, 절약 등의 금욕적 덕목이 곧 ‘자본주의 정신’의 본질과 통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랭클린은 단순히 시대의 축복으로 위인이 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어떤 시대,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도 위인이 되었을 것이다. 때로 그는 그만의 독특한 개성을 뛰어넘어 인간의 모든 특성이 조화된 하나의 통합적 인물상을 보여준다. 프랭클린의 꿈과 열정을 통해서, 《프랭클린 자서전》에 담긴 위대한 정신의 여정을 통해서 미국인을 넘어 21세기 보편적 세계인의 한 전형을 보게 된다.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1706년 미국 보스턴에서 조사이어 프랭클린의 17자녀 가운데 15째로 태어나 사회개혁가, 과학자, 정치가, 문필가로 활동. 1790년 84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집안이 가난했던 그는 형의 인쇄소에서 견습생활을 하다가 17살 때 집을 나와 인쇄소를 시작했다. 2년 동안 학교 교육을 받은 게 전부였으나 독학으로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아랍어를 익힐 만큼 자기관리와 시간관리를 철저히 했으며 여러 방면에서 재능을 발휘, 피뢰침을 발명했다. 1748년 필라델피아 시의회 의원이 되면서 정치에 입문, 1776년 주불(駐佛) 대사로 미불공수동맹(美弗攻守同盟) 조약 체결에 성공해 미국 독립을 이끌어 내는 등 미국의 기초를 다졌다. 펜실베니아 총독, 헌법 제정위원으로도 활약했으며 우편제도 개혁, 미국 철합혁회 창설, 펜실베니아 대학을 설립했다. 이처럼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자신의 묘비에 ‘인쇄인 프랭클린(B. Franklin Printer)’이라고만 쓰게 할 만큼 진솔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