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 약동하는 인물상
극적인 이야기 전개, 진지한 사회비판
소름끼치는 광기와 천재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인간희극》 대 시리즈를 보라!
19세기 전반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사실주의의 선구자 발자크. 그는 1833년 말부터 자신의 작품을 체계화하려 애썼다. 이후 ‘19세기 풍속 연구’와 ‘철학 연구’의 두 기둥을 세워 놓고 작품 활동을 추진해 《인간희극》의 첫 초석을 세움과 아울러, 《고리오 영감》에서 처음으로 《인간희극》의 기법적인 특징인 인물 재등장 기법을 썼다. 인물 재등장 기법은 여러 작품에 걸쳐 같은 인물을 등장시키는 방법으로, 이렇게 하여 서로 관련된 여러 작품은 단일 소설로서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작품과 어우러져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를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작품의 상호 관련은 단순히 역사적?사회적인 범위를 넓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철학적인 작품이 현실적인 작품과 결부될 때 두 작품은 하나가 되어 돈과 여자를 바라는 욕망에서부터 하느님을 향해 날아가는 영혼까지, 인간정신의 온 영역을 남김없이 나타낼 수 있다.
1844년 발자크가 만든 목록에 따르면, 《인간희극》은 현실 속에 서 법칙을 찾으려는 ‘분석 연구’, 현실 뒤에 있는 원리를 나타내려는 ‘철학 연구’ 현실 사회에서 원리가 나타나는 모습을 묘사하려는 ‘풍속 연구’의 세 부문으로 크게 나뉜다. ‘풍속 연구’는 ‘사생활 정경’, ‘지방생활 정경’, ‘파리생활 정경’, ‘정치생활 정경’, ‘군대생활 정경’, ‘시골생활 정경’으로 나뉘어 총 125편을 수록한 방대한 작품집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인간희극》은 90여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머리말에서 동물계와 마찬가지로 인간계에도 사회적인 종속(種屬)이 있으며, 그 종속을 망라함으로써 고대 문명이 남겨 주지 않은 풍속의 역사를 19세기 프랑스에서 완결 짓는 것이 목적이라고 야심을 나타냈다. 이리하여 혁명기에서 7월 왕정에 걸쳐 2천 명을 웃도는 사회 각층의 등장인물들이 갖가지 활약을 벌이는 대작품군이 구성되었다.
《고리오 영감》세계문학 사상 발자크의 명성을 높이다!
발자크의 《인간희극》 90여 편 가운데 대표작을 몇 편 고른다면 《고리오 영감》은 그 안에 반드시 들어간다. 약동하는 인물상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 이야기의 극적인 전개와 진지한 사회비판 등이 이 소설을 세계문학의 걸작으로 꼽는 이유이다.
‘선량한 사나이, 하숙집, 6백 프랑의 연금, 5만 프랑의 연금을 가진 딸들을 위해 스스로 빈털터리가 된 남자, 개 같은 죽음’이라고 발자크의 창작 노트에 나타나 있듯, 《고리오 영감》은 처음부터 부성(父性)을 주제로 이야기가 구성되었다. 그 구성에 살을 붙이고 실제로 써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지금과 같은 여러 가지 테마가 복잡하게 얽혔다. 그러나 부성이라는 주제는 이 소설 바탕에 그대로 남았다.
《고리오 영감》에 묘사된 부성은, 아이의 앞날을 생각하여 훌륭히 교육한다는 식의 흔히 말하는 부성애가 아니다. 발자크의 독창성은 이 일상적인 부성애를 지독한 정념으로까지 끌어올린 점에서 빛을 발한다. 고리오의 부성애는 뜨거운 정열이 되어 그의 생활을 좀먹고 끝내는 파멸로 이끈다. 발자크의 많은 작품이 그렇듯, 이 소설도 격렬한 정열과 그 정열 때문에 몸을 망치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청춘 이야기!
고리오는 두 딸에게 편집에 가까운 정열을 보인다. 자기가 생명을 부여한 대상 속으로 들어가 그 자체의 삶을 자기 삶으로 삼는 상상력이다. 딸들이 그에 대한 반발로 모든 일에서 아버지를 배제하며 불효를 저지르면서 오히려 기쁨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마조히즘을 연상케 하는 이 테마 자체로도 하나의 소설을 구성할 만큼 흥미롭다. 그러나 그와 딸들의 관계는 소설 밑바닥에 흐르는 바탕음으로 바뀌고,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 라스티냐크가 불쑥 나타난다.
따라서 이 소설은 젊은이의 청춘 이야기다. 발자크는 자신이 품었던 젊은 날의 푸릇푸릇한 열정을 이 작품에서 그리고 있으며, 따라서 현실 묘사가 아무리 비참해도 이 작품이 반드시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고리오와 라스티냐크의 이야기는 긴밀하게 이어져 있어서 주제의 분열을 느끼지 못한다. 라스티냐크의 관찰로 고리오의 부성애가 드러나며, 고리오의 생활을 알게 되면서 라스티냐크가 사회를 보는 눈이 완성된다.
《고리오 영감》은 라스티냐크의 인생 출발과 그가 파리에서 받는 교육을 묘사한 작품이다. 라스티냐크는 파리 사교계에서 사회는 세상의 추악한 법칙을 이용하여 성공하는 강자와, 법칙을 몰라서 실패하는 약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사람들이 저마다 꿈을 좇다가 실패하는 모습을 본다. 그에게 교훈을 주는 모든 사람이 실패를 맛보고 이야기의 무대에서 퇴장할 때 비로소 ‘교육’이 끝난다. 그래도 그는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 기회를 잡아 출세하여 성공가도를 달린다. 그러나 결국 인생의 많은 감동을 잃은 채 거리를 헤매는 늙고 황량한 모습은 그 또한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절대의 탐구》몽상에 사로잡힌 광기 어린 삶의 추적!
1834년에 초판이 발행된 《절대의 탐구》는 막대한 자산과 아름다운 아내를 가져 행복한 삶을 보내야 할 아마추어 화학자가, 근원적인 물질인 ‘현자의 돌’ 또는 ‘황금’을 구하는 몽상에 사로잡혀 광기 어린 후반생을 보내는 모습을 한 편의 이야기로 유감없이 그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이 단일한 원소로 환원된다는 발자크의 지론인 ‘단일론’을 전개하고 있다.
하나의 관념 또는 몽상이 주인공 속에서 팽창하여 그것에 사로잡힌 나머지, 현실과 일상 세계로부터 괴리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매우 발자크적인 작품이다. 발자크 자신도 그러한 위기를 늘 느끼고 있었으므로, 주인공 클라스는 말하자면 발자크의 분신이기도 하다.
‘관념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발자크의 근원적인 테제였던 만큼 그 모티프에 의한 《인간희극》의 작품이 여러 편 있는데, 《절대의 탐구》가 바로 그 전형이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더듬는 마음의 역사의 총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려내어 완결시킨, 다른 작품에는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발자크는 시간적 구조에서도 대담한 수법을 구사하고 있다.
클라스 집안의 상세한 묘사가 끝난 뒤, 1812년 8월말의 어느 일요일, 기품 있는 클라스 부인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때 주인공 클라스가 머리를 산발하고 넋 나간 모습으로 부인 앞에 나타난다. 여기서 갑자기 장면은 17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클라스가 사교계에 발을 들인 뒤 화학 연구를 그만 두고 신붓감을 찾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는 결혼하자마자 한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다가, 또다시 ‘절대의 탐구’라는 심연에 뛰어들어 그의 머릿속에서 가정도 아내도 사라져 간다.
이처럼 발자크는 과거의 내력을 더듬는 특유의 수법을 자주 썼다 이 작품에서는 과거의 시간이 클라스와 그의 아내가 나누는 대화 속에 집어넣어져 있다. 이 시간 처리는 마치 영화의 플래시백 수법과 비슷한데, 그 대목을 포함하여 일요일인 이날 하루를 묘사한 부분은 전체의 3분의 1에 가까운 분량이다.
인간의 지독한 사명 ‘절대의 탐구’!
클라스가 베르초프냐를 만나 ‘절대의 탐구’라는 사명에 눈뜨는 장면은, 클라스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원적인 단일 원소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것을 추구하고자 결심하는 장면이므로 이 작품의 핵심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
클라스가 추구하는 것이 결코 고대와 중세의 연금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발자크는 고대부터 당대까지의 유명한 화학자의 이론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라부아지에를 비롯한 수많은 화학자의 이름이 실제로 작품에서 언급된다.
《인간 희극》의 중심 주제는 ‘황금’이다. 클라스는 무에서 황금을 만들어내려고 하다가 반대로 돈을 끊임없이 낭비한다. 딸 마르그리트는 어머니의 유언을 충실히 지켜, 돈의 낭비를 막아 황금을 늘리려고 한다. 딸이 어머니가 남긴 큰돈을 숨기는 것을 클라스가 발견하는 장면에서는, 그가 한순간 황금을 먹어치우는 악마가 된 것처럼 보여 독자는 전율과 함께 얼어붙고 만다. 마르그리트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버지의 미친 열정에 당당하게 맞선다. 그래서 클라스는 딸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한 발 물러서지만, 딸의 눈에서 벗어나면 미칠 듯한 열정의 포로가 되고 만다.
발자크는 클라스를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그리면서도 광인으로 단정하지는 않았다. 클라스의 사상과 삶의 태도에도 발자크의 사상과 삶이 담겨 있다. 클라스에게도 발자크에게도 탐구해야 할 ‘절대’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고, 거기에 이르려면 광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 생각건대 발자크는 광인 클라스를 그림으로써, 자신의 정신적 위기를 떨쳐 버리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 걸작만큼 소름끼치는 광기와 천재의 경계를 잘 그려낸 소설은 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