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권력, 노무현의 리더십
노무현 대통령은 생전에 미국의 링컨 대통령을 존경하고 좋아했다. 2003년 3월 13일, 경남 진해의 웅동중학교를 방문한 노 대통령은 학생들에게 “링컨 같은 훌륭한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 링컨의 겸손함, 도전 정신, 자기희생에 기반한 결단력을 배워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학교를 방문한 이유는 2001년 6월 29일에 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 대통령이 되면 다시 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독특한 지도자였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중에서 가장 서민과 가까운 대통령, 가장 소탈한 대통령. 우리가 다시 이런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불가능하리라 본다. 한때 대통령의 언행에 대해 시비가 일자 대통령은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다른 점에는 승복하지 않지만, 언어와 태도에서 품위를 만들어 나가는 준비가 좀 부실한 것 같습니다. 이 점은 인정합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임기 내내 그의 언행은 여러 문제를 만들었다. 문제를 만들었다는 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직원들과 식사를 하다 보면 제일 많이 나오는 얘기가 나의 인사하는 모습에 대한 것이다. 자기들보다 더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다. 항만국의 정 과장은 표창 받을 때 내가 고개를 너무 많이 숙여서 하마터면 자기 머리와 부딪칠 뻔했다고도 했다. 정치인이라면 으레 선거를 의식해서라도 인사를 잘해야 하지만, 가식적으로 하기에는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 어머니 말씀으로는 나는 어릴 적부터 어르신들을 만나면 하도 꾸벅꾸벅 인사를 잘해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인사를 많이 하다 보면 목에 힘을 주거나 어깨를 거들먹거리는 일이 자연히 적어진다. 그래서 나는 인사할 줄 아는 습관을 오늘날까지 잘 지켜 온 것을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_ 본문 중에서
노무현의 리더십은 겸손한 리더십이며, 민주적 리더십이다. 네트워크형 리더십이며 디지털 리더십이다. 독재자형의 제왕적 리더십에 익숙한 이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낮은 리더십은 낯설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힘센 장관에서 우리 장관으로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8개월간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내며 겪은 일을 기록한, 회사로 치면 일종의 경영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그가 국정 운영의 현장에서 고민하고 실천했던 ‘노무현 리더십’과 그가 생각한 국가 운영의 비전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각부의 장관은 전문가가 맡아야 하는가, 정치가가 맡아야 하는가. 지금도 말들이 많지만, 정치가가 맡아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사례를 보인 것이 바로 해양수산부 장관 노무현이다. 당시에 노무현 장관의 취임 소식을 들은 해양수산부의 많은 직원들은 ‘힘센 장관이 오는구나’라고 했다. 당시 그는 여당의 부총재를 지낸 사람이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았으며 무엇보다 논리 정연한 언변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해양수산부가 끌어안고 있던 많은 현안들을 해결해 주리라 직원들은 기대했고 실제로 그는 기대 이상으로 그 일을 감당해 냈다. 그가 떠나던 날 직원들은 개각 발표를 보며 “어, ‘우리 장관’이 바뀌네”라고 했다.
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노무현의 리더십을 경험한 해양수산부에서는 노무현을 “해양수산부가 경험한 최고의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 이 책은 서구에서 도입되기 시작하여 경영학에서는 이제 최고의 경영기법으로 평가되는 ‘지식경영’이 어떻게 노무현을 통해 해양수산부에 적용되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해양수산부를 바꾸어 놓았는지를 상세하게 밝혀놓고 있다.
책 속에서
직원들과 대화나 토론을 하면서 내가 제일 많이 했던 말 중의 하나는 “현장에 가 보라”는 것이었다.
“현장에 가면 다 있다. 문제점도 거기에 있고, 해결책도 거기에 있다. 만나야 할 사람도, 알아야 할 사실도 그곳에 가면 다 있다. 현실을 모르는데 어떻게 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정책의 시작은 현장을 확인하는 데 있다.”
나는 이 말에 덧붙여 선례를 많이 익히고 분석해 보라는 충고도 직원들에게 자주 했다. 현실적 상황을 파악한 다음에는 구체적인 대책들을 하나둘씩 마련해야 하는데 이럴 때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_제2장 ‘리더십과 문제해결’ 중에서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동력은 무엇일까.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장관의 스타일을 꼽는 분도 있고, 세세한 부분까지 검토하고 챙기는 담당 공무원의 능력을 말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정책에 대한 담당 공무원의 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일은 반드시 해야 하고, 또 그렇게 되리라 확신하는 담당자의 자세야말로 엄청난 적극성과 추진
력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무원은 명령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확신으로 움직인다. 움직이게 하는 힘은 확신이다. 자신감이다’라고 끊임없이 되새겼다. _3장 ‘리더십과 조직관리’ 중에서
이렇게 해서 해양수산부의 ‘지식항해운동’은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지식경영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에다 학습 프로그램을 가미하고, 부처의 특성을 고려하여 명명한 ‘지식항해운동’은 크게 정보의 ‘창출’과 ‘공유’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정보의 창출을 위해서 ‘지식보트’(Knowledge Boat)라고 불리는 학습조직을 출범시키고, ‘지식포럼’을 개최하였다.
지식보트는 관심사가 비슷한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공부와 토론을 하는 학습조직으로서 매달 한 번씩 발표회를 개최하는데, 2001년 봄에는 24개가 운영되었다. 한편 지식포럼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사, 창의적 사고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는 인사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토론을 벌이는 프로그램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개최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직원 각자의 학습 의욕과 정책 개발을 고취하기 위하여 ‘정책토론방’도 개설하였다. 이 방을 통해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와 관련한 지식이나 정책 방향에 대한 소고들을 소개하거나 행정 개선 사항과 비용 절감 방안 등을 제안한다. _4장 ‘리더십과 인사관리’ 중에서
100% 노무현, 노무현 전집 [전7권]
누구나 노무현에 대한 기억은 있다. 어쩌면 책장에 책 한두 권은 꽂혀 있을 수도 있다. 특히 그를 사랑한 ‘노사모’에게는 너무나 많은 기억들이 있다. 서민들의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희망돼지를 전했던 기억, 봉하에서 비를 맞으며 그를 떠나보낸 기억, 서울광장에서 목놓아 울던 기억, 그런 기억의 조각들이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100% 노무현은 없다. 그를 다 끌어 모은 전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있지만 누구에게도 없었던 노무현, 조각조각 노무현이 아니라 100% 노무현이다.
노무현 대통령 전집을 발간하며 간행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입니다. 노무현재단은 그 10년 동안 일어났던 우리 사회의 변화를 살피고 재단이 벌였던 사업을 돌아보았습니다. 이제는 애도와 추모를 넘어, ‘사람 사는 세상’을 열고자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과 뜻을 시민과 함께 더 깊고 더 넓게 펼쳐 나가는 일에 힘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전집을 펴내는 것이 그 첫걸음입니다.
여러 출판사에서 펴냈던 노무현 대통령의 책을 전집으로 묶는 과정에서 관련 사료를 면밀히 검토해 착오와 오류를 바로잡음으로써 더 정확한 텍스트로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애와 철학을 이해하고 연구하고 평가해 보려는 시민에게 이 전집은 확실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입니다. 기존 저서로 엮이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과 글 가운데 널리 알릴 필요가
있는 것을 가려 모아 말글집을 만들었습니다. 1권 『여보, 나 좀 도와줘』와 2권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3권 『성공과 좌절』, 4권 『진보의 미래』, 5권 『운명이다』는 이미 나와 있던 책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말과 글을 모은 6권은 새로 편찬한 것입니다. 전집 세트를 통해서만 만나실 수 있는 7권은 사진과 함께 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연보입니다. 앞의 책들 곁에 함께 두고 보시면 노무현 대통령의 삶이 더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올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책임이 따르는 공직을 수행했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겸손하고 소탈했습니다. ‘사람 노무현’의 느낌을 전하기 위해 소박하지만 품격이 있고 독자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책을 만들었습니다. 성의를 다해 전집을 제작한 돌베개출판사와 지난 10년 동안 노무현재단을 만들고 키우신 9만여 후원 회원 여러분께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하여 따뜻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노무현의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노무현 전집》에서 그분의 삶과 철학을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2019년 5월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