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든든했던 애인이
어느 날 중증 우울증 환자가 됐다
세상과 단절한 채 게임과 잠에 빠져든 상봉과
그의 곁에서 다정한 방관자가 되기로 한 향용,
이들의 이상하고도 특별한 집콕 연애가 시작된다!
예기치 못한 싱크홀처럼 찾아온 남자친구의 우울증
일상은 무너졌지만, 또 다른 세계의 질서가 잡혀간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우주 법칙에 적응하는 중이다!
무탈하게 운전하고 가던 도로에서 갑자기 싱크홀을 만나 차가 전복되듯, 인생에도 그런 불행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냐고 따져 묻고 싶지만, 때론 아무 이유나 전조 없이도 누군가의 인생에 벼락같은 재앙이 찾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순간이 알콩달콩 연애하던 향용이와 상봉에게도 찾아왔다. 《상봉아, 우울해?》의 저자 향용이는 스물두 살에 상봉이를 만났다. 자기 이름을 재난문자처럼 여겨서 누가 이름만 불러도 긴장하는 간이 콩알만 한 향용에게, 평온하고 잔잔한 우주 같은 상봉이는 모든 게 다 괜찮을 거라는 안도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우주가 흔들렸다. 연애 6년 차인 어느 날, 상봉이는 깨어 있는 내내 게임만 하더니, 동면하는 곰처럼 긴 잠을 자는 날이 많아졌다. 한 번 앉으면 두세 시간씩 거뜬히 공부하던 그가 이제는 다리가 후들거려 10분도 책상에 앉아 있지를 못하고, 낯가림이라곤 일도 없던 사람이 길에서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일주일을 꼬박 누워 있어야 했다. 여러 병증을 의심하던 끝에 내려진 진단은 중증 우울 장애. 게다가 약물이 잘 듣지 않아 의사도 어려워하는 치료저항성 우울증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위기가 찾아왔지만, 이들의 연애는 신기하게도 순항 중이다. 아픈 남자친구를 따라 우울증이 자연스러워진 세상에 들어와 함께 살고 있는 향용은, 그 동굴 같은 세상이 “캄캄하고 먹먹하고 때론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도망치고 싶은 곳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나와 상봉이에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우주가 열린 것인지도 모른다”며, 남자친구의 곁에서 함께 게임을 하고, 요리를 하고, 끊임없이 말을 걸며 세상과의 다리가 되어준다. 폐쇄 병동에 입원하는 상봉을 배웅하고 돌아온 어떤 날은 일부러 더 환하게 집을 밝히면서. “우리는 새로운 우주 법칙에 적응하는 중”이라고 말하면서.
이 책은, ‘우울증’이라는 인생의 싱크홀 속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새로운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향용의 에세이다. 세상에서 우울증과 제일 거리가 멀어 보였던 남자친구이자 동거인이 갑작스럽게 중증 우울 장애를 갖게 되면서 느꼈던 당혹감과,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우여곡절, 그리고 이제는 우울증이 자연스러워진 남자친구와의 일상을 담담한 에세이와 만화로 엮었다.
상봉이와 10년째 동거 중인 향용에게 사람들은 “곁에서 지켜보는 너도 힘들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남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우울하거나 숨 막히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 발랄한 두 사람의 코믹한 대화, 오랜 연애의 내공이 느껴지는 든든한 관계, 상봉에게 말로 다 하지 못한 향용의 속마음 등이 유쾌하고 진솔하게 표현돼 따듯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래서 농담을 살짝 보태 이 책을 소개해 보자면 ‘이것은 향용과 상봉의 뜨거운 연애 에세이다, 그러니까 우울증을 곁들인!’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책이 우울증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재밌게 읽힐 수 있는 이유는, 건강한 거리감에 있다. 배우자나 원가족이 아닌, 연인의 시선으로 써 내려간 이 책은, 그래서 우울증을 너무 심각하게 바라보거나 과몰입하지 않고, 상대와의 적당한 거리와 온도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혈육이나 책임감으로 묶인 관계가 아니기에 어쩌면 우울증을 더 제대로 관찰하고 현명하게 대응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두 사람이 우울과 동거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적당한 거리’ 때문이라고 말이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말한다. “우울증에 지지 않는 유일한 길은,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괜찮은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라고. 슬럼프,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같은 다른 말들로 우울증을 애써 감추려 했던 두 사람의 삶에 안정과 회복의 기쁨이 찾아온 것도 우울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난 다음부터였다.
상봉의 우울증을 ‘이미 우리 집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객식구’ 정도로 받아들이며 살던 어느 날, 상봉은 6년의 치료 끝에 “이제 우울증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봅시다”라는 선물 같은 진단을 받고 다시 대학원에 입학한다. 여전히 약을 복용 중이고, 언제 다시 우울증이 재발할지 모르지만, 설사 그런 날이 온다 해도 두 사람은 이제 지지 않을 작정이다. 이미 우울증과 지혜롭게 ‘동거동락’하는 법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상봉아, 우울해?》는 우울증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우울증이 아니더라도, 내 힘으로는 어찌할 방도가 없는 고난 앞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행복과 슬픔을 번갈아 선사하는 두 사람을 따라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사랑과 삶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