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지난 100년간 한국의 역사·문화·사상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
심연 김상렬 선생은 1883년에 태어나서 1955년에 73년을 일기로 돌아가셨다. 이분이 겪은 변동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시기에 시작하여 1894년 갑오개혁, 1910년 국권침탈,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해방과 건국 그리고 6·25 전쟁까지 하루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격변의 시대를 사셨다.
사실 격변기를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은 파란만장하지만 그것을 진솔하게 기록해 놓을 여유가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설령 기록해 놓은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혼란 속에서 유실(遺失)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하지만 심연 선생은 740여 편이나 되는 많은 시(詩)를 남겼고, 또 손자에 의하여 이것이 공간(公刊) 되기에 이르렀으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역사적으로는 봉건적 왕조시대를 끝내고 일제의 식민지시대를 거쳐 민주 정체를 가지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였던 시기였다. 또 건국을 둘러싼 민주체제와 공산체제라는 혼란을 겪어야 했으며, 다시 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나타났다. 심연 선생은 일련의 이 모든 일들을 온몸으로 직접 체험하셨다.
과연 일생동안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세대가 얼마나 있을까? 어찌 보면 길고 긴 역사에서 그 전·후(前·後) 세대를 막론하고 심연 선생의 시대만큼 사회·정치적으로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는 찾기 힘들다. 물론 격변기를 사신 분들은 많은 고통이 따랐겠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시대만큼 흥미진진한 시대도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시기는 우리나라에 전통사회의 질서와 문명은 붕괴되었고, 서구의 질서와 문명이 대신하여 나타났다. 신·구(新·舊)의 문명과 사상, 질서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전통을 지키고 어떻게 변화를 받아들였을까? 우리 2천 년 역사에서 처음 경험하는 급변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어떡하든지 살아남아 가족을 책임져야 했으며, 사회 변혁 속에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도록 무언의 압력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전통적 사회는 붕괴되어 가고 새로운 서구 문명이 홍수처럼 밀려오는 시대에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가족을 지키면서 살았을까?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적응하면서 살았을까?
여기서 심연 선생이 남긴 시(詩)는 구한 말에서 한국 전쟁까지 격변기를 살아낸 한 지식인이 지닌 사유를 이해하는데 더 없는 자료가 될 수 있다. 나는 심연 선생의 『소유집(小遊集)』, 『심연시집(心淵詩集)』, 『기술잡초(記述雜抄)』 속에 실린 740여 편의 시(詩)를 보고 그 가치를 발견했다.
첫째로 심연 선생은 신문명의 소산(所産)인 통신원(通信院) 충주(忠州) 전보사(電報士)로 광무 7년(1903)부터 11년(1907)까지 5년간 근무한 신문명의 수용자였다. 그러나 결국 조국이 패망하는 현장을 목도하면서 신문명을 통해 펼치려던 꿈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가족을 책임져야 했기에 상경하여 사업을 펼쳤고, 일제의 단말마적 압박 속에서 또 사업을 접고 낙향해야 했다.
이러한 경험은 비단 심연 선생 한 사람만의 특수한 경험이 아닌, 그 시대 보편적인 경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심연 선생은 그 침통한 현실 속에서 시로 그것을 남기었고, 지금은 아주 희귀한 자료가 되었다. 이 귀중한 자료를 묵혀둔 채로 다시 한 세대만 지나면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시집은 지난 100년을 연구하는 생생한 1차 사료(史料)이고, 후에 이 시대를 연구하는 후학들에게는 더 없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둘째로 상경하여 사업하는 와중에도 계산시사(桂山詩社)라는 시(詩) 동아리에서 꾸준한 활동을 했는데, 이 시집을 통해 함께 한 시우(詩友)들에 대한 추적이 가능하다. 그의 시집에 등장하는 인물은 별호만 남긴 분까지 합하여 모두 200명이나 되고, 시회(詩會) 등 단체의 이름도 16개나 등장한다. 그의 시우 가운데는 독립운동가, 의사, 법조인, 한학자, 저술가 등이 있다. 이들을 추적하여 연구한다면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사람에 대한 연구의 지평을 넓히게 될 것이다.
셋째로 심연 선생은 서구문물에 일찍 눈을 뜬 분이다. 그래서인지 새로 등장하는 서구문물을 소재로 삼아 시를 읊기도 했는데, 서구문물이 실제로 생활 속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생활사나 문명사의 한 부분을 연구하는 귀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넷째로 제2차 세계대전이 극도에 달하고 일본의 패망이 짐작되는 1943년 이후 낙향하여 작고할 때까지 사실상 자유로운 교류는 어려웠다. 그러한 시대적 특성 때문에 낙향 후 청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문객(文客)들과의 교류가 주를 이루었다. 대혼란기의 특정 지방의 문인과 교류하며 쌓은 그의 작품은 어느 지방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청주 지역 문학이나, 지역적 특성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따라서 『심연 한시집』의 출간은 지난 100년간 한국의 역사·문화·사상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를 세상에 내놓은 것과 같다. 더욱이 이 시를 번역한 배도임 박사는 한국(韓國) 한시(漢詩)를 어떻게 제대로 번역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한 글자 한 글자를 천착(穿鑿)하면서 시 속에 서술된 내용을 800여 개의 각주(脚註)를 달아 설명했다. 아마도 시집을 번역하면서 이처럼 많은 주석을 달아서 연구의 깊이를 보인 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심연 한시집』을 통해 우리 사회에 지난 격변기에 대한 연구 열풍이 불고, 시문집 번역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이 우리 학계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