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휘게(Hygge)의 나라, 덴마크로 떠나보겠습니다. 안데르센(Andersen)의 인어공주 동상이나 화려한 왕궁만으로는 덴마크의 진짜 얼굴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늘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이 나라의 비밀은, 눈에 보이는 기념물이 아니라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공기’ 속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악명 높은 날씨와 길고 어두운 겨울을 가진 나라가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덴마크인들의 삶과 언어 속에 암호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함께 덴마크라는 자물쇠를 여는 세 개의 특별한 열쇠와 함께 덴마크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평범함 속에 숨겨진 아늑한 행복의 기술, 휘게(Hygge) : 첫 번째 열쇠는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휘게(Hygge, hoo-gah)’입니다. 이 단어를 단순히 ‘아늑함’이나 ‘편안함’으로 번역하는 것은 씁쓸한 에스프레소와 보리차만큼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휘게는 물건이나 장소가 아니라,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기분 좋은 상태’를 일컫는 심리적 경험으로, 이것은 수동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친밀감과 따뜻함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행위이자 일종의 ‘회복을 위한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휘게의 어원은 고대 노르드어에서 ‘위로하다’, ‘편안하게 하다’라는 의미의 ‘휘가(hygga)’와 ‘영혼’ 또는 ‘기분’을 뜻하는 ‘후그르(hugr)’에서 유래했습니다. 19세기 덴마크 문헌에 처음 등장했지만, 그 본질은 춥고 긴 스칸디나비아의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아주 오래된 생존 전략에 가깝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추위 속에서 온기를 찾으려는 인간 본연의 지혜인 셈이죠.
▶ 일이 즐거울 수 있다는 유쾌한 반란, 아바이츠글레데(Arbejdsglæde) : 두 번째 열쇠는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는 ‘아바이츠글레데(Arbejdsglæde, ah-bites-gleh-the)’입니다. ‘일(Arbejde)’과 ‘기쁨(glæde)’의 합성어로, 문자 그대로 ‘일에서 오는 행복’을 의미합니다. 사무실에 놓인 고급 커피 머신이나 간식이 아니라, 일 그 자체에서 얻는 본질적인 즐거움과 만족감을 뜻하는,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개념입니다. 한국의 부장님께 “부장님, 요즘 일하는 거 즐거우세요?”라고 묻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덴마크에서 ‘일에서 오는 행복’은 매우 진지하고 중요한 질문입니다. 아바이츠글레데는 세 가지 강력한 기둥 위에 서 있습니다. 첫째, ‘낮은 권력 거리(Low Power Distance)’. 네덜란드 사회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Geert Hofstede)의 문화 차원 이론에 따르면, 덴마크의 권력 거리 지수는 18점으로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이는 조직 내 계층이 평평하고, 상사의 지시는 절대적인 명령이 아니라 토론 가능한 제안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법적으로 35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이사회에 직원 대표가 참여하도록 보장합니다. 둘째, ‘합리적인 근무 시간’. 덴마크는 OECD 국가 중 연평균 근로 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 중 하나로(약 1,408~1,540시간), 주당 33~37시간 근무가 일반적입니다. 야근은 헌신의 상징이 아니라, 비효율의 증거로 여겨집니다. 상사는 늦게까지 일하는 직원에게 칭찬 대신 “무슨 문제라도 있나? 왜 정규 시간 안에 일을 마치지 못하는가?”라고 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셋째, ‘신뢰와 자율성’. 사회 전반에 깔린 높은 신뢰 수준은 유연 근무제나 재택근무 같은 제도를 활성화하여 건강한 일과 삶의 균형을 뒷받침합니다.
▷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라는 엔진 : 이러한 독특한 노동 문화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 비밀은 덴마크의 사회 모델인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에 있습니다. 이는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정성(Security)’의 합성어로, 세 가지 요소의 황금 삼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기업이 직원을 쉽게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유연한 노동 시장’. 둘째, 실직 시 최대 2년간 이전 급여의 90%까지 보장하는 ‘관대한 실업 수당’. 셋째, 실업자의 빠른 재취업을 돕는 국가 주도의 ‘적극적인 직업 교육 및 재훈련 프로그램’입니다. 아바이츠글레데는 단순히 ‘좋은 기분’이 아니라, 이처럼 정교하게 설계된 경제 사회 구조의 문화적 산물입니다. 플렉시큐리티 모델은 개인에게 엄청난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해고의 위협이 줄어들자, 직장 내 권력 관계의 불균형이 해소되고 스트레스가 감소합니다. 직원들은 생계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상사에게 이의를 제기하며, 창의적인 도전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아바이츠글레데는 개인의 경력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사회 전체가 흡수하는 시스템이 낳은 직접적인 결과물인 것입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심리적 안전지대를 만들고, 그 안에서 비로소 일의 즐거움이 싹틀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됩니다.
▶ ‘우리’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규칙, 얀테 로벤(Janteloven) : 마지막 열쇠는 덴마크 사회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조금은 까다롭고 논쟁적인 개념인 ‘얀테 로벤(Janteloven, Law of Jante)’입니다. 이는 덴마크계 노르웨이 작가 악셀 산데모세(Aksel Sandemose, 1899~1965)가 1933년에 발표한 소설 ‘도망자, 그의 길을 건너다(A Fugitive Crosses His Tracks)’를 통해 성문화된 개념입니다. 산데모세는 이 규칙들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작고 동질적인 스칸디나비아 마을에 오랫동안 존재해 온 사회적 기풍을 글로 정리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얀테의 법칙은 “너는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와 “너는 네가 우리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와 같은 10개의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규칙들의 핵심은 개인인 ‘너(you)’를 집단인 ‘우리(we)’보다 아래에 두는 것입니다.
▷ 현대 덴마크 사회의 얀테 로벤 : 현대 덴마크인들은 이 오래된 유산과 어떻게 공존하고 있을까요? 얀테 로벤은 여전히 부를 과시하거나 잘난 척하는 것을 꺼리는 태도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 미묘한 줄타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맥주 회사 칼스버그(Carlsberg)의 유명한 슬로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맥주일 겁니다(Probably the best beer in the world)”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아마도(Probably)’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얀테 로벤을 향한 윙크와도 같습니다. 대담한 주장을 하면서도 오만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지극히 덴마크적인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이죠. 물론 세계화와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젊은 세대는 점차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며 얀테 로벤에 도전하고 있지만, 겸손이라는 핵심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 아무리 부자라도 이웃 없이는 살 수 없다 : 이 세 가지 키워드는 결국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됩니다. 얀테 로벤은 평등하고 평평한 사회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이 기반 위에서 낮은 권력 거리와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아바이츠글레데가 꽃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휘게는 이 모든 사회적 계약이 삭막하지 않고, 깊은 즐거움과 인간적인 연결로 채워지도록 하는 필수적인 문화적 실천입니다. 이 세 가지는 덴마크라는 의자를 지탱하는 세 개의 다리와 같습니다. 덴마크의 진정한 독특함은 단순히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상호 책임감 위에 세워진 지속 가능하고 회복력 있는 집단적 안녕입니다. 집단의 심리적 안정이 곧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바로 덴마크의 영혼인 것입니다. 덴마크의 한 속담은 이 모든 철학을 한 문장으로 압축합니다. “Ingen er så rig, at han kan undvære sin nabo”(No one is so rich that he can do without his neighbor) ‘아무리 부자라도 이웃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소박한 문장이야말로 휘게의 온기, 아바이츠글레데의 신뢰, 그리고 얀테 로벤의 공동체 정신을 움직이는 조용한 엔진입니다. 그리고 한국인 여행자가 덴마크의 진정한 속살을 이해하기 위한 마지막 열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