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사람들의 땅(Diutisciu Land) 독일(Deutschland)로 떠나보겠습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이끈 첨단 기술,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정밀 기계, 그리고 무엇보다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hn)으로 상징되는 나라. 이성과 효율의 나라라는 독일의 진짜 영혼은 무엇일까요? 독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른 언어로는 온전히 번역되지 않는 세 개의 독일어 키워드를 손에 쥐어야 한다는 것! 이 단어들은 독일인의 정신세계, 그들의 사회, 그리고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을 여는 만능열쇠와도 같습니다. 자, 이제 판에 박힌 여행안내서는 잠시 접어두고, 독일 문화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진짜 문을 열어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질서를 넘어선 사회적 약속, 오르트눙(Ordnung/Ordnung) : 독일 하면 많은 분이 반사적으로 “오르트눙 무스 자인(Ordnung muss sein)”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질서는 있어야만 한다!”라는 이 강렬한 문장은 독일인의 정체성과 거의 동의어로 쓰이죠. 실제로 독일의 집과 거리는 세계적으로도 깨끗하고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오르트눙’을 단순히 ‘정리정돈’이나 ‘규칙 준수’ 정도로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독일 문화이란 수박의 겉모습만 핥는 셈입니다. ‘오르트눙’의 더 정확한 번역은 ‘질서’보다는 ‘규제(regulation)’에 가깝습니다. 독일인들은 사회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명확한 틀과 구조 자체를 ‘오르트눙’이라 부릅니다. 이는 단순히 존재하는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Ordnung schaffen), 유지해야 하는(Ordnung halten) 능동적인 행위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독일에서는 주말에 음악을 하루 한 시간만 연주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임대차 계약서에 명시되기도 하고, 이웃집 개가 짖을 수 있는 시간까지 법원의 판례로 정해져 있습니다. 하루 30분을 넘기면 안 되고, 한 번에 10분 이상 연속으로 짖어서도 안 되죠. 한국인의 시각에서는 “아니, 그렇게까지 해야 해?” 싶을 정도로 과도해 보일 수 있습니다만, 독일인에게 이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평온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입니다.
▷ 일상에서 만나는 오르트눙 : 이러한 ‘오르트눙’의 정신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현장이 바로 ‘뮐트레눙(Mülltrennung)’, 즉 쓰레기 분리수거입니다. 한국도 세계 최고 수준의 분리배출 시스템을 자랑하지만, 독일의 그것은 거의 예술의 경지에 가깝습니다. 일단 가정집 쓰레기통부터 색깔별로 나뉩니다. 검은색 통은 일반 쓰레기(Restmüll), 파란색은 종이(Papier), 노란색은 플라스틱과 금속 등 포장재(Gelber Sack), 갈색이나 초록색은 음식물 등 유기성 폐기물(Biomüll)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유리병은 동네 곳곳에 설치된 공용 수거함에 버려야 하는데, 이 수거함마저 백색(Weißglas), 갈색(Braunglas), 녹색(Grünglas)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다른 색깔의 유리병은 녹색 통에 넣어야 하죠. 이 모든 것은 권장 사항이 아니라 법으로 규정된 의무(Pflicht)이며,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집주인에게 경고를 받거나 심지어 벌금을 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분리수거가 공동체 의식과 ‘빨리빨리’ 문화에 기반한 실용적 효율성을 중시한다면, 독일의 분리수거는 사회적 ‘지허하이트’를 확보하기 위한 정교한 ‘오르트눙’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물입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이 명확한 규칙 덕분에 모두가 혼란 없이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죠.
▶ 아늑함, 그 이상의 관계의 온도, 게뮈틀리히카이트(Gemütlichkeit/Gemütlichkeit) : 차가운 ‘오르트눙’의 세계를 경험한 여행자가 독일의 겨울을 맞는다면, 아마 또 한 번의 문화 충격에 빠질 겁니다. 바로 ‘게뮈틀리히카이트’라는, ‘오르트눙’의 엄격함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는 또 다른 핵심 가치 때문입니다. ‘게뮈틀리히카이트’는 종종 ‘아늑함(coziness)’으로 번역되지만, 이는 이 단어가 품은 풍성한 의미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 단어는 따뜻함, 친근함, 유쾌함, 마음의 평화, 그리고 사회적 수용에서 비롯되는 소속감과 안녕감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상태’ 또는 ‘분위기’를 의미합니다. 푹신한 소파의 물리적 편안함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유쾌한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의 온도를 지칭하는 말에 가깝습니다. 이 ‘게뮈틀리히카이트’는 저절로 생겨나는 감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조성되고 유지되는 사회적 분위기에 가깝습니다. 이는 일과 가정의 의무로부터 벗어나, 구조화된 휴식과 소속감을 제공하는 일종의 ‘제3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행위입니다.
▷ 게뮈틀리히카이트의 심장, 슈탐티슈(Stammtisch) : 더 깊숙한 ‘게뮈틀리히카이트’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슈탐티슈’를 이해해야 합니다. ‘슈탐티슈’는 직역하면 ‘부족의 식탁(clan’s table)’이라는 뜻으로, 선술집이나 식당에 단골들을 위해 지정된 테이블이자, 그곳에 정기적으로 모이는 그룹 자체를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시장, 의사 등 마을의 유력 인사들만 앉을 수 있는 권위의 상징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사교의 중심지로 변모했습니다. 이들은 정해진 요일, 정해진 시간에 모여 카드 게임을 하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일요일 아침 예배 후 ‘프뤼쇼펜(Frühschoppen)’이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한잔하며 교류합니다. 이처럼 ‘슈탐티슈’는 예측 가능한 안락함, 즉 사회적 ‘지허하이트’를 제공하는 ‘정돈된’ 사교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과거를 마주하고 미래를 여는 힘, 페어강겐하이츠베밸티궁(Vergangenheitsbewältigung/Vergangenheitsbewältigung) : 이제 독일을 이해하기 위한 마지막이자 가장 무거운 열쇠를 손에 쥘 차례입니다. 바로 ‘페어강겐하이츠베밸티궁’, 나치 시대라는 끔찍한 과거를 끊임없이 마주하고 극복하려는 독일의 처절한 노력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페어강겐하이츠베밸티궁’은 ‘과거 극복’, ‘과거와의 씨름’ 등으로 번역됩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단 한 번의 사과나 배상으로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국가 정체성을 형성해 온, 고통스럽고 공개적이며 지금도 계속되는 과정입니다. 단순히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분석하고, 소화하며, 교훈을 얻으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이 끈질긴 자기 성찰의 과정은 독일이 ‘오르트눙’의 원리를 자국의 가장 혼란스럽고 도덕적으로 파탄 났던 역사에 적용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역사적 기억에 질서를 부여하고, 죄책감과 부정이라는 파괴적 잠재력을 통제하여,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한 ‘지허하이트’를 창조하려는 체계적이고 끊임없는 노력입니다. 나치 시대라는 극도의 국가적 트라우마, 즉 도덕적·사회적 혼돈을 관리하기 위해 법률, 교육, 기념물이라는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한 것입니다. 이는 독일의 가장 위대한 ‘오르트눙’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한국과 독일, 분단이라는 공통의 역사 : 독일의 이 처절한 과거사 청산은 우리 한국인에게도 깊은 성찰의 지점을 제공합니다. 독일과 한국은 냉전 시대 국가 분단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중요한 전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이 ‘페어강겐하이츠베밸티궁’이었습니다. 과거의 침략 전쟁을 철저히 반성함으로써 프랑스, 폴란드 등 주변국의 신뢰를 회복했고, 통일 독일이 유럽의 평화를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어려운 역사적 문제들을 직시하는 것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입니다.
▶ 복잡하고 역동적인 독일 사회지만, 세 가지 키워드와 함께라면 조금은 더 깊이있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낯선 독일의 풍경 곳곳에 엄격한 규칙의 틀인 ‘오르트눙’ 안에서, 따뜻하고 인간적인 피난처인 ‘게뮈틀리히카이트’를 누리며, 그 모든 것의 바탕에는 ‘페어강겐하이츠베밸티궁’이라는 무거운 도덕적 자기 성찰이 깔려 있으니까요. 이 팽팽한 긴장과 균형이야말로 독일을 피상적인 관광지 이상의, 깊이 탐구할 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국가로 만드는 힘일 겁니다. 독일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시작은 쉽지만, 꾸준함은 예술이다(Anfangen ist leicht, Beharren eine Kunst/To begin is easy, to persist is an art)”. 규칙 위에 사회를 세우고, 아늑한 저녁을 즐기고, 과거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어쩌면 시작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 세대에 걸쳐 그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체를 가꾸며, 고통스러운 역사를 끊임없이 마주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독일이라는 나라의 진정한 품격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