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카르파티아의 정원(Grădina Carpaților) 루마니아로 떠나보겠습니다. 루마니아는 고대 다키아인의 강인한 영혼 위에 로마 제국의 라틴 문화가 뿌리내리고, 슬라브와 오스만, 합스부르크의 역사가 격렬하게 교차하며 빚어낸 독특한 문명의 용광로입니다. 우리는 흔히 '드라큘라'라는 이름에 깃든 어둠의 전설을 통해 루마니아를 상상하지만, 트란실바니아의 요새화된 교회 마을(Villages with Fortified Churches in Transylvania, 1993)은 이 나라가 품은 수천 년 역사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세계가 숨 가쁘게 동질화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럽의 마지막 야생이라 불리는 카르파티아 산맥과 유럽의 다른 지역들의 고대 원시 너도밤나무 숲(Ancient and Primeval Beech Forests of the Carpathians and Other Regions of Europe, 2017)은 태초의 장엄한 고독을 지키고 있습니다. 한때 '동방의 파리'라 불렸던 부쿠레슈티(Bucureșt)의 화려한 영광과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쿠(Nicolae Ceaușescu, 1918~1989) 독재가 남긴 깊은 상흔이 공존하는 루마니아에서, 세 개의 루마니아어 열쇠와 함께 드라큘라의 안개를 거닐어 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그리움이 만든 나라(The Nation Forged from Longing), 도르(Dor) : 루마니아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는 '도르'(Dor)입니다. 이 단어는 영어의 'Longing'(갈망)이나 한국어의 '그리움'으로 번역되곤 하지만, 그 어떤 번역으로도 본래의 의미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습니다. 루마니아인들은 '도르'를 번역하는 순간 그 풍부한 감정의 층위가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이 단어는 듣는 이의 영혼에 '다양한 상태와 감정의 폭발'을 일으키는 힘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누군가를 '보고 싶다'(missing)는 감정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 혹은 고향과 같은 장소에 대한 달콤쌉싸름한 갈망이자 영혼의 깊은 끌어당김입니다. 포르투갈의 '사우다드'(Saudade)와 비교되지만, 둘은 결이 다릅니다. '사우다드'가 15세기 대항해시대에 바다로 떠난 이들을 기다리며 생겨난, '부재(不在)의 존재감'(the presence of absence) 혹은 과거에 대한 향수 어린 슬픔이라면, '도르'는 과거에 매이지 않습니다. 루마니아 철학자들은 '도르'를 루마니아인의 존재론(ontology)을 정의하는 핵심 요소로 봅니다. 즉, '도르'는 무언가를 잃어버려서 생긴 감정이 아니라,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상태' 그 자체입니다.
▷ '도르'를 듣는 법: 유네스코 유산, '도이나'(Doina)(How to Hear 'Dor': The UNESCO Heritage 'Doina') : 이 '도르'라는 감정이 궁금하다면, '도이나'(Doina)를 들어야 합니다. '도이나'는 루마니아의 전통 서정 민요로, '도르'의 음악적 표현으로,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도이나'에는 정해진 박자나 악보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유로운 형식의 즉흥시이자 독백입니다. 목동이 부르는 '도이나'는 사랑, 슬픔, 외로움, 사회적 갈등 등 삶의 모든 주제를 다룹니다. 때로는 정식 악기 대신 나뭇잎이나 생선 비늘을 말아 불며 즉흥적으로 연주하기도 합니다. 이 음악은 수백 년간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의 지배를 받으며 억압받았던 시절, 그들의 고통과 자치(自治)에 대한 갈망을 울부짖는 소리였습니다. '도르'가 루마니아인의 영혼에 내재한 상태라면, '도이나'는 그 영혼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소리입니다.
▶ 조상들의 유산이 하늘을 빚다(Where the Ancestral Legacy Shapes the Sky), 스트러모셰스크(Strămoșesc/Ancestral) : 루마니아를 여는 두 번째 열쇠는 '스트러모셰스크'(Strămoșesc)입니다. 이 단어는 '조상'을 뜻하는 '스트러모슈'(Strămoș)에서 파생된 형용사로, '조상의', '대대로 내려오는', '선조의'라는 뜻을 가집니다. 하지만 이 단어는 단순한 '오래됨'(old)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루마니아인들에게 '스트러모셰스크'는 정체성의 뿌리이자, 수백 년간 외세의 지배와 억압 속에서도 자신들의 언어, 종교, 문화를 지켜온 고집스러운 '방식'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 역설의 시대를 살아남은 생존의 기술(The Survival Skill that Endured an Age of Paradox), 데스쿠르커레츠(Descurcăreț/Resourceful) : 루마니아를 여는 마지막 열쇠는 '데스쿠르커레츠'(Descurcăreț)입니다. 이 단어는 영어로 'Resourceful', 즉 '기지가 풍부한', '수완이 좋은'으로 번역됩니다. 하지만 이 단어의 속뜻은 훨씬 깊습니다. '데스쿠르커레츠'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해내는', 혹은 '알아서 잘 처리하는'이라는 의미로, 공식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 비공식적이고 영리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루마니아 특유의 생존 지혜를 의미합니다. 이 기질은 20세기 후반, 인류 역사상 가장 기괴한 독재 중 하나로 꼽히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șescu, 1918~1989)의 공산 독재 시절에 극단적으로 발현되었습니다. 1980년대, 차우셰스쿠는 서방에서 빌린 외채를 모두 갚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국내에서 생산된 거의 모든 식량과 자원을 해외로 수출해버렸습니다.
루마니아 국민들은 혹독한 '배급 경제'와 물자 부족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수도 부쿠레슈티(Bucharest) 밖에서는 빵을 구하기조차 어려웠고, 고기를 사려면 '아는 사람'(정육점 주인과의 인맥)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우유 한 병을 사기 위해 어머니들은 새벽 2시에 일어나 빈 병을 줄 세워 둬야 했고, 아침 6시에 우유 트럭이 오면 다시 나가 줄을 섰습니다. 당시 팔리던 닭은 비둘기보다 작았습니다. '데스쿠르커레츠'는 이런 절망적이고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필수 생존 기술이었습니다.
▷ 위대함과 굶주림의 거대한 모순: 인민궁전(The Great Contradiction of Grandeur and Starvation: The Palace of the Parliament) : 국민들이 '데스쿠르커레츠'의 지혜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바로 그 순간,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불합리한 모순의 상징을 짓고 있었습니다. 바로 부쿠레슈티 중심부에 세워진 '인민궁전'(Casa Poporului), 현재의 '의회 궁전'(Palatul Parlamentului)입니다. 이 건물에 대한 사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이 건물은 미 국방부 펜타곤(Pentagon)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행정 건물입니다. 총면적은 36만 5천 제곱미터(약 11만 평)에 달합니다. 하지만 기네스 세계 기록(Guinness Book of World Records)에 따르면, 이 건물은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건물'(Heaviest building)입니다. 총 무게는 약 409만 8천 톤. 이 무게를 위해 100만 세제곱미터의 트란실바니아산(産) 대리석, 70만 톤의 강철과 청동, 3천5백 톤의 크리스털(샹들리에용), 그리고 90만 세제곱미터의 목재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모든 자재는 루마니아산이어야만 했습니다.
이 광기 어린 낭비의 궁전을 짓기 위해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최대 10만 명의 인력(이 중 1만 2천 명은 군인)이 3교대로 24시간 내내 동원되었으며, 비공식 집계로 수천 명이 공사 중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한 이 건물을 지을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부쿠레슈티의 가장 아름다운 역사 지구 5분의 1이 불도저로 밀렸고, 9천 채의 집과 수십 개의 교회, 유대교 회당이 파괴되었으며, 4만 명의 주민이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강제 이주 당했습니다. '데스쿠르커레츠'와 '인민궁전'은 루마니아 현대사를 이해하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데스쿠르커레츠'가 없는 자원을 쪼개고 인맥을 동원해 살아남으려는 '개인의 미시적 생존술'이라면, '인민궁전'은 국민의 마지막 빵 한 조각까지 쥐어짜 내 세운 '권력의 거시적 광기'였습니다. 이 극단적인 역설을 이해할 때, 비로소 루마니아의 현대가 보입니다.
▶ 루마니아는 그저 할리우드 영화의 고풍스러운 배경지가 아닙니다. 가슴 저미는 '도르'(Dor)의 선율이 흐르고, 억압 속에서도 하늘을 빚어낸 '스트러모셰스크'(Strămoșesc)의 지혜가 빛나며, 불합리한 시대의 한복판을 '데스쿠르커레츠'(Descurcăreț)로 뚫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이 세 가지 열쇠를 손에 쥐고 그들의 땅을 밟을 때, 독자 여러분은 여러분은 비로소 드라큘라의 안개낀 성(城) 너머, 루마니아의 진짜 심장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루마니아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Buturuga mică răstoarnă carul mare.(The small stump overturns the big cart.)” 작고 보잘것없는 나무 그루터기가 거대한 수레를 뒤엎는다는 뜻입니다. 거대한 제국과 독재자라는 '큰 수레'에 맞서, 작지만 단단한 그루터기처럼 자신의 영혼과 신념, 그리고 한조각 유머를 지켜낸 사람들. 그들이 바로 루마니아인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