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북부의 지브롤터(Gibraltar of the North) 룩셈부르크로 떠나보겠습니다. 유럽의 심장부에 자리한, 주머니에 쏙 들어올 만큼 작고 앙증맞은 나라. 많은 이들이 룩셈부르크를 떠올릴 때 그리는 풍경은 아마 고요한 중세의 성과 푸른 언덕이 전부일 겁니다. 하지만 룩셈부르크 시티(Luxembourg City)의 버스에 올라타시는 순간! 옆자리의 신사가 룩셈부르크어로 아침 인사를 건네더니, 버스 기사에게는 프랑스어로 요금을 묻고, 전화기로는 독일어로 업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목도하게 됩니다. 시티를 출발한 버스는 어느새 키르히베르크(Kirchberg) 고원의 눈부신 유리 건물들 사이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풍경을 보노라면, 룩셈부르크가 전 세계의 자본이 숨 가쁘게 오가는 21세기 금융의 최전선이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작은 나라가 품고 있는 거대한 역동성과 복잡 미묘한 매력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룩셈부르크의 성문(城門)을 열 수 있는 세 개의 특별한 열쇠를 준비했습니다. 3개의 문이 열리는 순간, 독자 여러분의 룩셈부르크 지도는 완전히 새롭게 그려져 있을 겁니다.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세상 모든 언어가 흐르는 곳, 멩슈프로헤카이트(Méngsproochegkeet, Multilingualism) : 첫 번째 열쇠는 룩셈부르크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멩슈프로헤카이트’, 즉 다중언어사용입니다. 이곳에서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단순히 외국어를 잘하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운영체제(OS)이자 생존 방식에 가깝습니다.
▷ 일상이라는 이름의 언어 교향곡 : 룩셈부르크 빵집에서 크루아상을 주문해볼까요? 빵집 주인은 옆집 이웃과 룩셈부르크어로 정겹게 안부를 묻다가,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로 묻습니다. “Bonjour, qu’est-ce que je vous sers?(안녕하세요, 무엇을 드릴까요?)” 카운터에서 계산을 도와준 포르투갈 출신의 직원이 영어로 “Have a nice day!”라고 인사를 건넵니다. 찰나의 순간에 네 개의 언어가 물 흐르듯 오가는 광경, 이것이 바로 룩셈부르크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입니다. 이러한 언어 환경은 인구 구성과도 직결됩니다. 룩셈부르크 전체 인구의 약 47%가 외국 국적자이며, 무려 170여 개국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용광로 같은 사회입니다. 공식 언어는 아니지만, 가장 큰 외국인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포르투갈인들 덕분에 포르투갈어는 제4의 언어처럼 통용될 정도죠. 이런 환경에서 다중언어 구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 불의 마차(De Feierwon)’의 후렴구 마지막 구절을 아시오? : 두 번째 열쇠는 룩셈부르크의 국가 표어인 ‘Mir wëlle bleiwe wat mir sinn.(We want to remain what we are.)’입니다. 직역하면 ‘우리는 우리가 지금의 모습으로 남기를 원한다’는 뜻이죠. 이 문장에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수백 년간 살아남은 작은 나라의 강한 자부심과 독립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 쇠로 만든 마차 위에서 외친 독립 선언 : 이 표어는 흔히 오해하듯, 빗장을 걸어 잠그고 외부 세계를 거부하겠다는 폐쇄적인 선언이 결코 아닙니다. 그 기원을 살펴보면 오히려 정반대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문장은 1859년 시인 미셸 렌츠(Michel Lentz, 1820~1893)가 쓴 애국가요 ‘불의 마차(De Feierwon)’의 후렴구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 노래는 룩셈부르크 최초의 국제 철도가 개통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철도는 외부 세계와의 연결, 즉 현대화와 개방의 상징이었죠. 노래의 후렴구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Kommt hier aus Frankräich, Belgie, Preisen, Mir wëllen iech ons Heemecht weisen, Frot dir no alle Säiten hin, Mir wëlle bleiwe wat mir sinn.(프랑스, 벨기에, 프로이센에서 이리 와보시오. 우리의 조국을 보여주리다. 사방에 물어보시오, 우리는 우리가 지금의 모습으로 남기를 원한다고.)”. 즉, 이 선언은 국경을 닫은 채 외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웃 나라 사람들을 활짝 초대한 자리에서,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앞두고 우리의 정체성만큼은 굳건히 지키겠다는 다짐이었던 셈입니다. 이는 외부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들의 고유성을 잃지 않으려는 룩셈부르크인들의 놀라운 균형 감각과 실용주의적 태도를 보여줍니다.
▶ 실용주의가 빚어낸 기적, 슈타빌리타이트(Stabilitéit, Stability) : 마지막 열쇠는 룩셈부르크의 사회와 경제를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 ‘슈타빌리타이트’, 즉 안정성입니다. 룩셈부르크의 눈부신 경제적 번영은 단순히 운이 좋았거나 유리한 조세 정책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위기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합의를 통해 미래를 설계해 온 치밀한 실용주의와 사회적 안정의 산물입니다.
▷ 철강에서 금융으로, 위대한 전환 : 20세기 중반까지 룩셈부르크는 유럽의 대표적인 철강 강국이었습니다. 아르베드(ARBED)라는 거대 철강 기업은 국가 경제의 상징과도 같았죠. 1970년, 철강 산업은 룩셈부르크 전체 부가가치의 27.9%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철강의 시대는 1970년대 닥쳐온 세계적인 석유 파동과 철강 산업의 구조적 위기로 인해 막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1974년부터 1992년 사이 룩셈부르크의 철강 생산량은 절반으로 급감했고,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국가적 재앙이 될 수도 있었던 이 위기 앞에서 룩셈부르크는 놀라운 지혜를 발휘합니다. 정부는 노사정 대표가 참여하는 ‘삼자 협의 위원회(Tripartite Coordination Committee)’를 구성하여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냈습니다. 해고를 최소화하는 대신 노동 시간을 단축하고, 남는 인력을 재교육하여 새로운 산업으로 전환 배치하는 등 고통을 분담하며 위기를 극복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합의의 정신은 ‘룩셈부르크 사회 모델(Luxembourgish social model)’의 근간이 되었고, 극심한 사회 갈등 없이 산업 구조를 철강 중심에서 금융 및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룩셈부르크가 세계 최고 수준의 1인당 GDP를 자랑하는 부국(富國)이 될 수 있었던 보이지 않는 힘입니다.
▷ 이웃이 먹여 살리는 나라, 국경 노동자 프롱탈리에(frontaliers) : 룩셈부르크의 경제적 안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프롱탈리에(frontaliers)’라 불리는 국경 통근 노동자들입니다. 2024년 기준 룩셈부르크의 전체 노동자 약 48만 9천 명 중 무려 47%가 매일 아침 프랑스, 벨기에, 독일에서 국경을 넘어 출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수는 22만 명을 훌쩍 넘습니다. 이 중 절반 이상인 약 12만 6천 명이 프랑스에서 오며, 나머지는 독일과 벨기에에서 거의 비슷한 비율로 출근 도장을 찍고 있습니다. 이 독특한 노동 구조는 룩셈부르크 경제가 작은 인구 규모의 한계를 뛰어넘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룩셈부르크의 1인당 GDP에 대한 중요한 맥락을 제공합니다. 유럽연합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Eurostat)의 분석에 따르면, 룩셈부르크의 1인당 GDP가 유독 높게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국경 노동자들 때문입니다. 이들의 소득은 룩셈부르크의 GDP(국내총생산)에 포함되지만, 룩셈부르크 거주민이 아니므로 1인당 GDP를 계산하는 분모인 인구수에는 잡히지 않는 ‘통계의 마법’이 일어나는 것이죠. 이는 룩셈부르크의 부(富)가 자국민만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라, 주변국과의 긴밀한 상호 의존 관계 속에서 창출된 것임을 의미합니다.
▶ 삶의 태도가 된 룩셈부르크식 실용주의 : ‘멩슈프로헤카이트(Méngsproochegkeet, Multilingualism)’라는 소통의 무기, ‘Mir wëlle bleiwe wat mir sinn.(우리는 우리가 지금의 모습으로 남기를 원한다)’이라는 정체성의 방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떠받치는 ‘슈타빌리타이트(Stabilitéit, Stability)’라는 실용주의의 토대. 이 세 개의 열쇠가 있기에 룩셈부르크는 작지만 그 누구보다 강한 나라로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가 충돌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며 조화롭게 흘러가는 모습, 그것은 바로 룩셈부르크라는 나라를 축약해 보여주는 한 편의 교향곡이었습니다. 룩셈부르크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Dé sicht, dé fennt.(Seek and ye shall find)”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작은 크기에 휘둘리지 않고,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려는 여행자에게 룩셈부르크는 분명 그 어떤 거대한 나라보다 풍성한 이야기와 지혜를 아낌없이 보여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