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검은 산(Black Mountain)이자 지중해의 진주(Pearl of the Mediterranean)라 불리는 몬테네그로(Montenegro)로 떠나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몬테네그로를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와 묶어 '구 유고슬라비아(Former Yugoslavia)'의 일부로 여기지만, 몬테네그로는 이웃 나라들과 역사의 궤를 같이하면서도, 발칸반도(Balkan Peninsula) 대부분이 거대한 오스만 제국에 복속되었을 때 험준한 산악 지형에 기대어 수백 년간 불굴의 저항으로 '독특한 자치권'을 지켜냈으며, 전 세계에서 '최초'로 헌법에 국가 정체성으로 '생태 국가(Ecological State)'를 선언한 개성있는 역사와 철학을 간직한 국가입니다. 몬테네그로인이 스스로를 부르는 국명 '츠르나 고라(Crna Gora)'는 '검은 산'이라는 뜻이죠! 세 개의 열쇠와 함께 발칸반도의 검은산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산이 국명이고, 국명이 운명인 나라(The Nation Whose Name is Mountain, Whose Fate is Mountain), 츠르나 고라(Crna Gora/Crna Gora) : 몬테네그로(Montenegro)라는 이름, 참 이국적이죠. 하지만 이 이름은 몬테네그로어가 아닙니다. 중세 시절 이곳을 오가던 베네치아(Venetian) 상인들이 붙인 이탈리아어 이름입니다. 그들이 아드리아해에서 이 땅을 바라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로브첸(Lovćen) 산이었습니다. 울창한 상록수림과 소나무 숲이 어찌나 빽빽했던지, 산 전체가 검게 보일 정도였죠. 그래서 그들은 이곳을 ‘검은 산(Monte Negro)’이라 불렀습니다. 몬테네그로 사람들 스스로가 부르는 현지어 이름은 ‘츠르나 고라(Crna Gora)’로 뜻은 똑같습니다. 심지어 이곳을 지배했던 오스만 제국조차 터키어로 ‘카라다그(Karadağ)’, 즉 ‘검은 산’이라 불렀습니다.
국명이 이토록 강력하게 지리적 운명과 결부된 나라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 몬테네그로인들에게 ‘산’은 단순한 풍경이나 지형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의 정체성이자 운명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이름은 1053년경 교황의 서신에서 처음 언급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처음에는 로브첸산 인근의 좁은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름은 곧 이 민족 전체의 운명을 예언하게 됩니다. 15세기 오스만 제국이 발칸반도를 집어삼키기 시작하자, 1482년 지도자 이반 츠르노예비치(Ivan Crnojević)는 평지 대신 바로 그 ‘검은 산’, 로브첸산 기슭의 험준한 산악 분지인 체티녜(Cetinje)로 수도를 옮깁니다. 외부인의 눈에 그저 ‘검게’ 보였던 산이, 몬테네그로인들에게는 자유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된 것입니다.
▶ 진짜 '쎈' 사람들의 윤리 강령(The Ethical Code of the Truly 'Strong'), 초이스트보(Čojstvo/Čojstvo) : 자, 500년간 제국을 상대로 싸워 이긴 전사(戰士)의 나라. 몬테네그로인들은 거칠고, 용맹하며, 어쩌면 조금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의 윤리 강령에는 ‘유나슈트보(Junaštvo)’, 즉 ‘용맹(Bravery, Heroism)’이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몬테네그로의 위대한 장군이자 작가였던 마르코 밀랴노프(Marko Miljanov, 1833~1901)는 그의 저서 ‘인간성과 용맹의 사례들(Primjeri čojstva i junaštva)’에서 이 ‘유나슈트보’를 "타인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500년간의 항전을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생존을 위한 필수 덕목이었죠. 동시에 밀랴노프는 이 ‘유나슈트보’보다 한 수 위의 가치, 몬테네그로 정신의 정수(精髓)를 제시합니다. 바로 ‘초이스트보(Čojstvo)’입니다. 이는 ‘인간성(Humanity)’ 혹은 ‘남자다움(Manliness)’으로 번역되는데, 그 정의가 실로 충격적입니다.
▷ ‘초이스트보’란, "나 자신으로부터 타인을 지키는 것(when I defend the other from myself)" :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시죠. 이 윤리 강령은 ‘나는 힘이 세다’, ‘나는 너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합니다. ‘초이스트보’는 힘없는 자를 보호하고, 동정심을 가지며, 무엇보다 자신의 그 강력한 힘이나 분노, 권력으로 눈앞의 타인을 해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고도의 윤리 의식입니다. ‘유나슈트보’가 외부의 적(오스만)을 향한 용기라면, ‘초이스트보’는 내부의 적(나의 폭력성, 오만함, 힘)을 향한 통제입니다. 500년간 ‘용맹’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온 전사의 나라가, 그 ‘용맹’이 내부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도록 스스로 만들어낸, 지극히 성숙한 사회적 브레이크인 셈입니다. 몬테네그로가 1990년대 발칸반도가 끔찍한 내전과 인종 청소의 피바람에 휩싸일 때, 유일하게 심각한 무력 충돌을 피하고 평화적으로 독립(2006년)을 이룰 수 있었던 윤리적 기반을 바로 이 ‘초이스트보’ 정신에서 찾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나는 나의 힘으로 너를 해치지 않겠다."는 정신이 국가적 단위에서 작동한 것이죠.
▶ '빨리빨리' 민족에게 드리는 처방전(A Prescription for the 'Ppalli-Ppalli' People), 폴라코(Polako/Polako) : 몬테네그로는 ‘검은 산’ 의 기상으로 외세에 굴복하지 않은 강력한 나라이며, ‘초이스트보’라는 고결한 윤리 강령을 가진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치열하고 강인한 사람들이, 일상에서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요? 여기서 한국인 여행자들이 마주할 마지막 관문이자 가장 큰 문화 충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몬테네그로와 인근 크로아티아 달마티아(Dalmatia) 지역의 일상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단 하나의 마법, 바로 ‘폴라코(Polako)’입니다. ‘폴라코’는 "천천히", "진정해", "서두르지 마", "조심해" 등 수십 가지 의미를 담은 마법의 단어입니다. 그들은 아침 인사 대신 "폴라코", 식당에서 주문할 때도 "폴라코", 심지어 다급한 상황에서도 "사모 폴라코(Samo polako, 그냥 천천히 해)"라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느린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보다 사람과 평온함을 중시하는 그들의 확고한 삶의 가치관입니다. 이 문화는 도시의 수많은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이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 해변에서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 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폴라코’는 현대 세계의 무자비한 속도와 효율성 강요에 대한 '부드러운 저항(gentle rebellion)'입니다.
▷ 이것은 게으름이 아니다, '돌체 파르 니엔테'다(This Isn't Laziness, It's 'Dolce Far Niente') : ‘폴라코’를 그저 ‘게으름’이나 ‘비효율’로 오해한다면, 몬테네그로 여행은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철학은 사실, 유럽에서 가장 세련된 문화 중 하나인 이탈리아(Italy)의 ‘돌체 파르 니엔테(Il dolce far niente)’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돌체 파르 니엔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the sweetness of doing nothing)"을 의미합니다. 이탈리아인들에게 이는 게으름(laziness)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일상의 투쟁과 스트레스로부터 의식적으로 자신을 분리시키는 적극적인 ‘행위’이자, 휴식을 즐기는 ‘기술(art of relaxation)’입니다. 이 철학 덕분에 이탈리아인들은 유럽에서 ‘번아웃(burnout)’ 위험이 가장 낮은 국민 중 하나로 꼽힙니다.
▶ 몬테네그로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츠르나 고라(Crna Gora)’의 굳건한 저항 정신에서 우리의 잊힌 ‘의병’을 보았습니다. ‘초이스트보(Čojstvo)’라는 낯설고도 고결한 윤리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선비’의 절제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폴라코(Polako)’의 느긋함 속에서, ‘빨리빨리’ 살아온 지난 시간을 잠시 되돌이켜 보았습니다. 몬테네그로의 위대한 시인이자 지도자였던 페타르 2세 페트로비치-녜고시(Petar II Petrović-Njegoš, 1813~1851)는 그의 불후의 명작 ‘산의 화환(Gorski vijenac, The Mountain Wreath)’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U dobru je lako dobar biti,/na muci se poznaju junaci"("It's easy to be good in good times,/heroes are recognized in suffering"). "좋은 시절에는 누구나 선할 수 있지만,/영웅은 역경(muka) 속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법이다." 수백 년의 ‘무카(muka, 역경)’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낸 ‘유나치(junaci, 영웅)’의 나라, 몬테네그로. 그리고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일어선 우리. 어쩌면 몬테네그로 여행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와 꼭 닮은 또 다른 ‘영웅’들을 만나는 여정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