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천 년이나 앞선 거석 사원(Megalithic Temples of Malta, 1980)을 품은 나라, 몰타(Malta)로 떠나보겠습니다. 몰타란 국명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 섬의 독특한 꿀 생산을 기려 '꿀(honey)'을 의미하는 '멜리테(Melítē)'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습니다. 몰타를 시칠리아나 이탈리아의 일부로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몰타는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의 징검다리이자 지중해의 심장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탓에 페니키아, 로마, 아랍, 성 요한 기사단, 프랑스, 영국의 쉴 틈 없는 지배 속에서도, 유럽 유일의 셈어(Semitic language)인 몰타어(Maltese)와 사도 바울(St. Paul)의 난파선에서부터 이어진 독실한 라틴 가톨릭(Latin Catholicism) 정체성을 동시에 지켜온 독특한 하이브리드(hybrid) 문명의 교차로입니다. 또한 국토 내에 나폴레옹 군대를 몰아내고 고조국(La Nazione Gozitana, 1798~1801)이라는 사실상의 독립 국가였던 자매 섬 고조(Gozo, Għawdex)를 품고 있는 흥미로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중해의 심장(Heart of the Mediterranean)이자 기사단의 섬(Island of Knights), 몰타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꿀빛 돌에 새겨진 5천년의 역사(5,000 Years Etched in Honey-Colored Stone), 제블라(Ġebla/Gebla) : 몰타에 도착한 여행자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충격적일 만큼 통일된 '색(色)'입니다. 수도 발레타(Valletta)는 물론, 섬 전체의 모든 건물이 하나의 거대한 조각품처럼 특유의 꿀빛(Honey-blonde) 혹은 황금빛(Golden)을 띠고 있습니다. 이 색은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 아래서 아침에는 부드러운 크림색으로, 해가 질 무렵에는 불타는 오렌지색으로 시시각각 변하며 도시 전체의 인상을 바꿔놓습니다. 이는 페인트를 칠한 것이 아닙니다. 이 색의 정체는 바로 몰타의 땅 그 자체이자 이 섬의 기반암인 '글로비게리나 석회암(Globigerina Limestone)'입니다. 몰타인들은 이 돌을 '프랑카의 돌(Ġebla tal-Franka)'이라 부르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위성 사진에서조차 섬 전체가 이 돌 특유의 노란-회색빛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 땅 속부터 몰타인: 글로비게리나 석회암의 비밀(Maltese from the Ground Up: Secrets of Globigerina Limestone) : 이 꿀빛 돌은 약 2천 5백만 년 전, 이 지역이 바다였을 때 쌓인 해양 플랑크톤(Globigerinid foraminifera)의 껍데기가 굳어져 만들어진 퇴적암입니다. 그리고 이 석회암 지층이 몰타 군도(Maltese archipelago) 전체 면적의 약 70%를 덮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수천 년 전부터 이곳에 살았던 몰타인들에게 건축 재료의 선택지는 사실상 이것 하나뿐이었습니다. 이 '돌의 유일성'은 비단 풍경만이 아니라 몰타 문명의 '방식' 그 자체를 결정했습니다. 나무가 귀했던 이 섬에서, 몰타인들은 돌을 깎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 묘지 '할 사플리에니 하이포게움(Ħal Saflieni Hypogeum)'을 만들었고, 돌을 쌓아 신전을 지었으며, 돌로 난공불락의 요새 도시 임디나(Mdina)와 발레타를 세웠습니다. 몰타에서 건축은 '짓는(build)' 행위라기보다 '조각하는(carve)' 행위에 가까웠습니다.
▶ 아랍어의 뼈, 유럽어의 살(The Bones of Arabic, The Flesh of Europe), 말티(Malti/Malti) : 몰타 여행의 진짜 매력은 눈이 아닌 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발레타의 노천카페에 앉아 있으면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언어가 들려옵니다. 어떤 단어는 분명 이탈리아어처럼 들리는데, 어떤 단어는 아랍어의 'kh'나 'għ' 같은 거친 인후음(guttural sounds)이 섞여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말티(Malti)', 즉 몰타어입니다. 단언컨대, 몰타어는 지구상에서 가장 기묘한 언어학적 칵테일입니다. 몰타어는 유럽연합(EU)의 24개 공식 언어 중 하나인 동시에 유일한 '셈어(Semitic language)' 계열 언어이거든요!
▶ 섞일 수 없는 것들의 완벽한 조화(The Perfect Harmony of Mismatched Things), 타흐타(Taħlita/Tahlita) : 앞서 우리는 몰타의 단단한 '돌(제블라)'과 기묘한 '언어(말티)'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두 가지가 만나 폭발한 결과물이 바로 세 번째 키워드, '혼합물(Mixture)' 또는 '블렌드(Blend)'를 의미하는 '타흐리타(Taħlita)'입니다. 몰타는 지리적으로 시칠리아에서 92킬로미터,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 186마일(약 299킬로미터) 떨어져, 말 그대로 지중해의 교차로(crossroads)에 위치합니다. 수천 년간 페니키아인, 로마인, 비잔틴, 아랍, 노르만, 스페인, 성 요한 기사단, 프랑스, 그리고 영국까지 쉴 새 없이 정복자들이 이 섬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타흐리타'는 이 모든 문명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뒤죽박죽 섞여 녹아든 ‘몰타 문화의 본질 그 자체’입니다.
▷ 접시 위의 지중해: 음식의 '타흐리타'(The Mediterranean on a Plate: The 'Taħlita' of Food) : 이 '타흐리타'를 가장 쉽고 빠르게 경험하는 방법은 단연코 '음식'입니다. 몰타의 식탁은 그야말로 지중해의 역사 지도입니다. 이탈리아/시칠리아의 영향: 몰타 요리의 기본 골격은 이탈리아,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시칠리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알요타(Aljotta)'라는 마늘과 토마토 기반의 생선 수프는 프랑스의 부야베스(Bouillabaisse)가 몰타식으로 변형된 것입니다. 한 끼 식사에서 시칠리아풍 파스타로 시작해, 아랍식 디저트를 맛보고, 영국식 홍차로 마무리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 이곳이 바로 몰타입니다.
▷ 축제의 '타흐리타': 성(聖)과 속(俗)의 격렬한 공존, 페스타(The 'Taħlita' of Festivals: The Fierce Coexistence of Sacred and Profane, The Festa) : 이 '타흐리타' 문화의 정점은 바로 여름 내내(전통적으로 4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몰타 전역의 마을을 뒤흔드는 축제, '페스타(Festa)'에서 폭발합니다. 이 페스타는 202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페스타는 '성스러움(Sacred)'과 '세속적임(Profane)'이라는, 섞일 수 없어 보이는 두 요소가 격렬하게 공존하는 현장입니다. 페스타의 기원은 마을의 수호성인(Patron Saint)을 기리는 종교 행사입니다. 성 요한 기사단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화려하게 조각된 성상(Statue)을 건장한 신자들이 어깨에 메고 마을을 행진하는 장엄하고 경건한 행렬(Procession)이죠! 하지만 오늘날 페스타는 경건한 종교 행사라기보다, 마을 전체가 1년 동안 준비한 거대한 '커뮤니티 파티'에 가깝습니다. 그 중심에는 '카진(Każin)'이라 불리는 밴드 클럽(Band Clubs)이 있습니다. 이들은 1년 내내 축제를 준비하며 화려한 거리 장식과 조명(Luminarja)을 만들고, 밴드 행진(Marċ)을 연습하며, 특히 어마어마한 규모의 불꽃놀이(Fireworks)를 준비합니다. 몰타의 불꽃놀이는 그 수준이 세계적이어서, 리야(Lija)나 임카바(Mqabba) 같은 일부 마을은 불꽃놀이만으로도 엄청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 모든 것이 꿀빛으로 통일된 이 섬에서, 독자 여러분은 역설적으로 가장 혼란스럽고도 매혹적인 문화의 칵테일을 직면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 '단일함'과 '조화'를 미덕으로 삼아온 우리에게, 이토록 모든 것을 격렬하게 섞어버린 몰타의 방식은 낯설지만, 그래서 더욱 경이롭게 다가옵니다. 몰타의 오래된 속담 하나를 전해드리며, 서론을 마칠까 합니다. "Ġebel ma' ġebel ma jiltaqa', iżda wiċċ ma' wiċċ jiltaqa'."(Stone does not meet stone, but face to face it meets.) "돌(산)과 돌(산)은 만나지 못하지만, 사람의 얼굴과 얼굴은 언젠가 만난다."라는 뜻입니다. 5천 년의 시간을 버텨낸 저 장엄한 꿀빛 돌들은 서로 만날 수 없지만, 그 돌 위에서 살아가는 여행자들은 언제든 그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발레타의 꿀빛 골목 어귀에서, 혹은 1년 중 가장 시끄럽고 화려한 페스타의 한복판에서, 이 책을 덮은 독자 여러분과 우연찮게 마주치길 기대하겠습니다.
▶ 번외적으로 몰타는 해군 장교로 복무한 남편 필립 공과 함께 엘리자베스 공주(Princess Elizabeth)가 1949년부터 1951년까지 머물렀던 인연이 있습니다. 그녀가 바로 훗날 엘리자베스 2세 여왕(Queen Elizabeth II, 1926~2022)이며, 부부가 머물렀던 빌라 과르다만자(Villa Guardamangia)는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몰타는 영국을 제외하고, 엘리자베스가 거주한 유일한 국가이며, 즉위 후에도 결혼 60주년을 기념한 2007년을 비롯해 수차례 방문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