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만 개가 넘는 호수를 품은 '푸른 눈의 나라(Blue-eyed Country)' 벨라루스(Belarus)로 떠나보겠습니다. 벨라루스란 국명은 '희다'는 뜻의 '벨라(Bela)'와 고대 동슬라브의 뿌리인 '루스(Rus)'가 합쳐진 '하얀 루스(White Rus)'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몽골-타타르의 침략을 받지 않아 '순수하고 자유로운 땅'임을 의미하며, 동시에 예로부터 즐겨 입던 하얀 리넨 의복을 은유합니다. 벨라루스는 1991년 소비에트 연방(USSR) 해체 이후 독립을 선언한 젊은 국가이지만, 그 역사적 뿌리는 중세 유럽의 강대국이었던 리투아니아 대공국(Grand Duchy of Lithuania)에 깊게 닿아 있습니다. 동방 정교회(Orthodoxy)와 서방 가톨릭(Catholicism) 문명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혼재된 독창적인 건축 미학을 자랑합니다. 국토의 40%가 울창한 원시림으로 덮인 '유럽의 허파(Lungs of Europe)'이자, 잦은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유럽의 마지막 숨겨진 보석(The Last Hidden Gem of Europe), 벨라루스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생존을 넘어선 민족의 소울 푸드, 불바(Бульба, Bulba) : 한국인에게 밥이 단순한 탄수화물이 아니라 '힘'의 원천이듯, 벨라루스인에게 감자, 즉 '불바(Бульба, Bulba)'는 종교에 가깝습니다. 벨라루스 사람들을 지칭하는 별명인 '불바쉬(Bulbashi)'는 직역하면 '감자 먹는 사람들' 혹은 '감자 놈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과거 제정 러시아나 소비에트 시절, 주변국 사람들이 벨라루스인들의 유별난 감자 사랑을 빗대어 불렀던 다소 경멸적인 표현이었습니다만, 현대의 벨라루스인들은 이 별명을 불쾌해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유쾌한 상징으로 적극 수용했습니다. “우리는 감자의 힘으로 역사를 버텨냈다“는 자부심이 그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벨라루스인의 1인당 연간 감자 소비량은 약 180kg에 달하며, 이는 전 세계 1, 2위를 다투는 압도적인 수치입니다. 한국인의 연간 쌀 소비량이 약 50~60kg 수준임을 감안할 때, 이들이 얼마나 엄청난 양의 감자를 섭취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감자는 반찬이 아니라 '두 번째 빵(Second Bread)'입니다.
▷ 고스트(GOST)의 유산과 크람밤불라(Krambambula) : 벨라루스 식문화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코드는 바로 '고스트(GOST)'입니다. 이는 소비에트 연방 시절 제정된 엄격한 국가 표준 규격(State Standard)을 의미합니다. 흥미롭게도 벨라루스는 구소련 국가들 중 이 고스트 기준을 가장 철저하게 유지하고 있는 나라로 평가받습니다. 서구 자본주의가 유입되면서 식품 첨가물이나 유전자 변형 식품이 범람할 때, 벨라루스는 국가 주도의 통제 하에 과거의 엄격한 품질 기준을 고수했습니다. 때문에 러시아나 주변국 사람들에게 “벨라루스산 식품“은 곧 “믿고 먹을 수 있는 고품질의 천연 식품“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습니다. 이는 한국인들이 '국산 신토불이'에 갖는 무한한 신뢰와 유사합니다.
▶ 산이 없는 나라의 푸른 눈, 시냐보카야(Сінявокая, Siniavokaya) : 두 번째 키워드 '시냐보카야(Сінявокая)'는 '파란 눈을 가진'이라는 뜻의 벨라루스어 형용사입니다. 1만 1천여 개의 호수와 2만여 개의 강이 국토 곳곳에 박혀 마치 대지의 푸른 눈동자처럼 하늘을 응시한다는 시적 표현입니다. 이 키워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벨라루스의 극단적인 지형 차이를 먼저 인지해야 합니다. 한국인에게 자연은 곧 '산'입니다. 국토의 70%가 산지로 이루어진 한국에서 우리는 늘 시야를 가로막는 능선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반면, 벨라루스는 '산이 없는 나라'입니다. 벨라루스의 최고점인 자르진스카야 언덕(Dzyarzhynskaya Hara)은 해발 345m에 불과하여, 서울의 남산(262m)보다 조금 높은 수준입니다. 한국인 여행자가 벨라루스의 고속도로를 달릴 때 느끼는 기묘한 해방감과 막막함은 바로 이 '사라진 스카이라인'에서 기인합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과 자작나무 숲, 그리고 뜬금없이 나타나는 거울 같은 호수들…….
▷ 유럽의 허파, 폴레시에(Polesye)와 비시반카(Vyshyvanka) : 벨라루스 남부의 '폴레시에(Polesye)'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넓은 원시 늪지대로, '유럽의 허파'라 불립니다. 서유럽이 산업화를 위해 대부분의 습지를 매립한 것과 달리, 벨라루스는 이 축축하고 신비로운 땅을 보존했습니다. 이곳은 태고의 생태계가 숨 쉬는 곳이자, 벨라루스인들의 영적 고향입니다. 늪과 숲이 뿜어내는 독특한 안개와 정적은 벨라루스인 특유의 차분하고 사색적인 기질(Pamyarkounasc)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그들의 전통 의상인 '비시반카(Vyshyvanka)'에 고스란히 수놓아져 있습니다. 하얀 리넨 천 위에 붉은색 실로 기하학적인 무늬를 수놓은 비시반카는 단순한 옷이 아닙니다. 각각의 문양은 태양, 대지, 곡물, 그리고 조상을 상징하며, 악귀를 쫓고 복을 비는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경계인의 딜레마와 생존 철학, 투테이샤(Тутэйшыя, Tuteishiya) : 마지막 키워드 '투테이샤(Тутэйшыя)'는 역사적, 철학적으로 가장 묵직한 주제입니다. 한국어로 '이곳 사람들(The Locals)' 혹은 '토박이'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벨라루스인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가장 아픈 단어이자 가장 정확한 단어입니다. 수백 년 동안 벨라루스는 동쪽의 러시아 정교회 문명과 서쪽의 폴란드 가톨릭 문명이 충돌하는 파쇄대였습니다. 지배자가 바뀔 때마다 국경선은 요동쳤고, 백성들은 종교와 언어의 개종을 강요받았습니다. 19세기 말, 인구 조사를 나온 관리가 농민들에게 “당신은 러시아인입니까, 폴란드인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어느 한쪽을 선택해 불이익을 당하는 대신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폴란드인도 러시아인도 아니오. 나는 그저 '투테이샤(이곳 사람)'일 뿐이오.” 이것은 자신의 민족성을 자각하지 못한 무지함의 소산이 아니라, 강대국들의 이념 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내가 발 딛고 선 이 땅(Tut, Here)에서의 삶을 지키겠다는 처절한 생존 본능이었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평안도나 함경도 등 국경 지대 사람들이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 혹은 재일교포들이 겪는 '자이니치'로서의 애환과도 겹쳐지는 대목입니다.
▷ 얀카 쿠팔라(Yanka Kupala)와 문학적 승화 : 벨라루스의 국민 시인 얀카 쿠팔라(Yanka Kupala)는 1922년 희곡 <투테이샤(The Locals)>를 통해 이 개념을 문학적으로 공론화했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 미키타 즈노삭(Mikita Znosak)은 상황에 따라 이름을 바꾸고 정체성을 세탁하는 기회주의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쿠팔라는 이를 통해 “언제까지 우리는 주체적인 민족이 되지 못하고 '이곳 사람'으로만 남을 것인가?”라는 통렬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투테이샤'는 단순히 수동적인 의미를 넘어, 외부의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자신의 터전을 지켜온 '토착민의 저력'으로 재해석되기도 합니다. 벨라루스인 특유의 성향인 '파먀르코우나츠(Pamyarkounasc)'-신중함, 관용, 갈등 회피, 그러나 끝내 버텨냄-은 바로 이 투테이샤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우리 창문에도 언젠가 해가 비칠 것이다 : 벨라루스를 여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느림'과 '침묵'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과정입니다. '불바'를 통해 척박한 환경을 이겨낸 끈기를 맛보고, '시냐보카야'의 호수 앞에서 내면의 고요를 마주하며, '투테이샤'의 역사 속에서 주변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존엄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산이 없어 바람이 거칠게 불어오는 땅이지만, 그 바람을 막아주는 것은 울창한 숲과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독자 여러분, 만약 민스크의 낯선 거리에서 길을 잃는다면, 지나가는 이에게 주저 없이 말을 거십시오. 그들은 무뚝뚝한 표정 속에 숨겨진 가장 다정한 미소로 독자 여러분을 '빵과 소금'의 식탁으로 초대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춥고 긴 겨울을 견디며 봄을 기다리는 벨라루스 사람들의 희망이 담긴 속담을 전하며 글을 맺습니다. “Загляне сонца i ў наша ваконца.(The sun will finally peek through our window.)” “태양은 언젠가 우리 창문 안쪽도 비추어 줄 것이다.”(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의 여정에도 따뜻한 볕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