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동서양의 문명이 드라마틱하게 교차하는 발칸 반도의 심장,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로 떠나보겠습니다. 보스니아란 국명은 북부 지역을 흐르는 보스나 강(River Bosna)에서 유래한 '흐르는 물'을 뜻하는 인도유럽어 '보스나(Bosna)'와, 남부의 통치자였던 스테판 부크치치 코사차가 칭했던 '공작(Duke)'을 뜻하는 독일어 '헤르초크(Herzog)'에서 파생된 '헤르체고비나(Herzegovina)'가 결합된 것입니다. 1995년 데이턴 평화 협정(Dayton Peace Agreement)에 근거해 보스니아계,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가 번갈아 국가 원수를 맡는 3인 대통령단(Tripartite Presidency)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정치 시스템으로 꼽힙니다. 이슬람의 모스크와 가톨릭 및 정교회의 성당이 한 거리에 공존하기에 '유럽의 예루살렘(Jerusalem of Europe)'이라 불리는 수도 사라예보(Sarajevo)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영혼을 위한 가장 사치스러운 낭비(The Art of Pleasure), 체이프(Ćejf) : '체이프(Ćejf)'를 검색하면 고작 '즐거움', '기분', '취미' 따위의 건조한 단어들이 나열될 뿐입니다. 하지만 만약 여행자가 한적한 보스니아의 카페에 앉아 현지인이 내뱉는 이 단어를 듣게 된다면? 보스니아 현지에서 체이프는 '자신의 영혼을 충만하게 만드는, 목적 없는 행위가 주는 깊은 만족감'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생산적인 활동과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는 개념입니다. 현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단어가 '효율(Efficiency)'과 '속도(Speed)'라면, 보스니아를 지배하는 단어는 단연코 체이프입니다. 한국인들은 쉬는 시간조차 "다음에 더 잘 달리기 위한 충전"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보스니아 사람들에게 체이프는 다음을 위한 준비 단계가 아니라, 그 순간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우주’입니다.
▷ 설탕 한 조각의 딜레마, 찍먹인가 부먹인가(The Sugar Cube Dilemma) : 한국인 여행자가 보스니아의 전통 카페(Kafana)에서 가장 당황하는 순간은 커피와 함께 나오는 투박한 각설탕(Sugar cube)과 '라하트 로쿰(Rahat Lokum, 터키쉬 딜라이트)'을 마주할 때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습관처럼 이 각설탕을 뜨거운 커피에 풍덩 빠뜨려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녹일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보스니아 시골의 오래된 카페에서 이렇게 행동한다면, 옆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던 할아버지들이 혀를 차며 쳐다볼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체이프를 즐기기 위한 보스니아식 설탕 섭취법은 매우 독특합니다. 이를 '키트르라마(Ktlama)' 방식이라고 부르는데,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 상식을 거부하는 위대한 똥고집(Spiteful Defiance), 이나트(Inat) : 두 번째 키워드는 '이나트(Inat)'입니다. 사전적으로는 '고집', '앙심', '오기', '반항' 정도로 번역되지만, 이 단어에는 훨씬 복잡하고 역사적인 맥락이 담겨 있습니다. 보스니아뿐만 아니라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 발칸 전역에서 통용되는 이 개념은 “네가 하지 말라고 하니까 나는 기어이 하고야 말겠다.”는 청개구리 심보를 뜻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춘기 소년의 치기어린 반항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자신의 존엄성, 원칙, 혹은 아주 사소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때로는 자신의 파멸을 무릅쓰고 끝까지 버티는 태도입니다. 한국어의 '오기'나 '깡', 혹은 일본어의 '곤조'와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릅니다. 한국의 '깡'이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는 악에 받친 생존 본능이라면, 이나트는 "내 집이 무너져도 내 자존심은 못 무너뜨린다"는 다소 비이성적인 고집에 가깝습니다.
▶ 가슴을 쥐어짜는 검은 담즙의 노래(Balkan Blues), 세브다(Sevdah) : 세 번째 키워드는 '세브다(Sevdah)'입니다. 이 단어는 보스니아의 전통 음악인 '세브달린카(Sevdalinka)'를 관통하는 정서이자, 보스니아 사람들의 영혼을 지배하는 감정 상태입니다. 어원은 아랍어의 '사우다(Sawda)'에서 왔는데, 이는 고대 의학에서 멜랑꼴리(우울)를 유발한다고 믿었던 '검은 담즙(Black Bile)'을 뜻합니다. 튀르키예어 '세브다(Sevda)'를 거쳐 보스니아에 정착하면서 'h'가 붙어 'Sevdah'가 되었고, 이 단어는 '사랑을 위한 고통',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 그리고 '슬픔 속에서 느끼는 묘한 황홀경'이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어에는 '시원섭섭하다'거나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표현이 있지만, 세브다는 그보다 훨씬 더 탐미적이고 자기 파괴적입니다. 슬픔을 피해야 할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푹 빠져들어 즐겨야 할 아름다운 상태로 봅니다. "나 너무 슬퍼서 행복해"라는 모순적인 문장이 완벽하게 성립하는 곳이 바로 보스니아입니다. 포르투갈의 '파두(Fado)', 미국의 '블루스(Blues)', 스페인의 '플라멩코(Flamenco)'와 자주 비교되지만, 세브다는 동양(오리엔탈)과 서양(슬라브)의 정서가 기묘하게 섞인 독보적인 장르입니다.
▷ 발칸의 블루스, 세브달린카(The Balkan Blues) : 이 세브다의 정서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보스니아의 전통 가요 '세브달린카'입니다. 이 음악은 주로 오스만 제국 시절, 닫힌 대문 뒤 정원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노래하던 여성들의 한숨에서 시작되었으며, 2024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곡인 <에미나(Emina)>를 들어보면 그 정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 시인 알렉사 샨티치(Aleksa Šantić)가 쓴 시에 곡을 붙인 이 노래는, 한 남자가 정원에서 아름다운 여인 에미나를 훔쳐보지만, 그녀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가버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밥심의 민족을 만족시킬 보스니아 미식(Bosnian Cuisine) : 체이프와 이나트, 세브다를 이해했다면 이제 그들의 식탁에 앉을 자격이 있습니다. 한국인이 '밥심'으로 산다면, 보스니아인은 '고기심'과 '빵심'으로 삽니다. 오스만 제국의 영향으로 튀르키예 요리와 비슷하지만, 보스니아만의 투박하고 진한 맛이 있답니다. 가장 먼저 맛봐야 할 것은 체바피(Ćevapi)입니다. 손가락 모양으로 빚은 다진 고기(주로 소고기와 양고기 혼합)를 그릴에 구워, '소문(Somun)'이라는 납작한 빵 사이에 끼워 먹는 요리인데, 여기에 다진 생양파와 '카이막(Kajmak, 우유 지방을 농축한 크림)'을 곁들이면 천국이 따로 없다니깐요? 한국의 떡갈비와 비슷하지만 불맛이 훨씬 강하고, 쌈장 대신 카이막의 꼬~소함이 입안을 감쌉니다. 사라예보의 바슈차르시야(Baščaršija) 거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의 8할은 바로 이 체바피 굽는 냄새입니다. 또 다른 별미는 부렉(Burek)입니다. 얇은 페이스트리 반죽(필로 도우)에 고기, 치즈, 시금치, 감자 등을 채워 돌돌 말아 구운 파이입니다. 한국의 군만두나 메밀전병과 식감은 다르지만, 바삭한 껍질 속에 꽉 찬 속 재료가 주는 포만감은 일맥상통합니다. 보스니아에서는 오직 고기가 들어간 것만 '부렉'이라 부르고, 치즈가 들어가면 '시르니차(Sirnica)', 시금치는 '젤랴니차(Zeljanica)' 등으로 엄격하게 구분한다는 점입니다. 요거트 음료인 '요구르트(Jogurt)'를 곁들이면 느끼함을 싸~악 잡아줍니다.
▶ 커피 잔 속에 남은 운명, 그리고 당신의 여행(Epilogue) : 지금까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지탱하는 세 가지 영혼, 체이프(즐거움의 미학), 이나트(고집스러운 저항), 세브다(아름다운 슬픔)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세 단어는 서로 떨어져 있는 파편이 아니라, 하나의 끈으로 단단히 연결된 보스니아인의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수세기에 걸친 식민 지배와 참혹했던 내전이라는 가혹한 역사 앞에서, 그들은 '이나트'를 통해 벽돌 한 장, 자존심 한 조각을 지켜냈습니다. 무너진 폐허 속에서도 '세브다'를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노래하며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체이프'를 통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 냈습니다. "Srce ne želi ni kafu ni kafanu; srce želi prijatelja, kafa je samo izgovor."(The heart wants neither coffee nor coffeehouses; the heart wants a friend, coffee is only the excuse.) 마음이 원하는 건 커피도, 커피집도 아니다. 마음은 친구를 원할 뿐, 커피는 핑계일 따름이다. 독자 여러분의 보스니아 여행이 커피처럼 진하고, 설탕처럼 달콤하며, 친구처럼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건배하겠습니다. 지비엘리(Živje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