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The Oldest Republic)이자, 이탈리아 안의 또 다른 독립국! 산마리노(San Marino)로 떠나보겠습니다. 산마리노란 국명은 서기 301년, 로마 황제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아드리아해 건너편 티타노산(Mount Titano)으로 피신해 신앙 공동체를 건설한 석공 '성 마리노(Saint Marinus)'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특히 13세기부터 국가 원수인 집정관(Capitani Reggenti) 2명이 6개월마다 선출되어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독특한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고대 로마 공화정의 전통을 계승한 민주주의의 실험실로 평가받습니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자유(Libertas)'라는 가치를 지켜낸 강소국이자 구름 위의 요새, 산마리노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영혼에 새겨진 자유(Freedom Engraved in the Soul), 리베르타스(Libertas) : 지금 고개를 들어 광장 중앙을 봐주세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이는 국기가 보이시나요? 흰색과 하늘색의 두 줄무늬 중앙에 그려진 문장(Coat of Arms)을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세 개의 탑 아래, 리본에 적힌 라틴어 단어가 눈에 들어올 겁니다. 'LIBERTAS' 바로 '자유'입니다. 한국인인 우리에게 자유란 일제 강점기의 억압을 뚫고 쟁취해낸 피와 땀의 결정체이기에 가슴 뭉클한 단어이지요. 하지만 산마리노 사람들에게 이 '리베르타스'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나 헌법 조항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들의 기원이자 종교이며, 험준한 산꼭대기에서 살아남게 한 생존 본능 그 자체입니다.
▷ 성인의 마지막 유언, “두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워라” : 마리누스가 임종을 맞이하던 서기 366년의 어느 날, 그는 침대 곁에 모인 추종자들에게 산마리노 역사를 관통하는 결정적인 유언을 남깁니다. "Relinquo vos liberos ab utroque homine.(나는 너희를 두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남겨두노라.)" 여기서 '두 사람'이란 당시 세상을 양분하여 지배하던 거대한 권력, 즉 '황제(로마 제국)'와 '교황(로마 가톨릭 교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세속의 권력인 황제에게도, 종교 권력인 교황에게도 굴복하지 말고, 세금을 바치지 말며, 너희 스스로의 주인이 되라"는 뜻이었습니다. 1,700년 전, 한 석공이 남긴 이 유언은 오늘날까지 산마리노의 헌법보다 더 강력한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단군 신화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이념으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규정하듯이, 산마리노인들은 이 '리베르타스'라는 단어 하나로 수많은 침략을 견뎌냈습니다.
▷ 가리발디를 숨겨준 용기, 자유는 목숨을 건다 : 이 자유의 정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극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19세기 중반, 이탈리아 반도는 통일 전쟁의 화염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1849년,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 1807~1882) 장군이 오스트리아 군대와 교황청 군대에 쫓겨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입니다. 이탈리아 전역이 그를 현상 수배하고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산마리노는 국경을 열고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저 아래 평야에는 수천 명의 적군이 산을 포위하고 있고, 이 작은 산꼭대기 요새 안에 쫓기는 장군과 그의 병사들이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산마리노의 지도자들은 가리발디에게 피난처를 제공함으로써 국가의 존망을 걸었습니다. 오스트리아가 "반란군을 내놓지 않으면 산마리노를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협박했지만, 그들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찾는 이들을 내치지 않는다." 이것이 그들의 신념이었습니다. 결국 가리발디는 산마리노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했고, 훗날 이탈리아를 통일한 뒤 이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산마리노가 이탈리아 왕국에 흡수되지 않고 독립국으로 남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습니다.
▶ 광장에 울리는 민주주의의 종소리(The Bell of Democracy Ringing in the Square), 아렝고(Arengo) : 자, 이제 발걸음을 옮겨 팔라초 푸블리코(Palazzo Pubblico), 즉 공화국 궁전 앞의 자유 광장(Piazza della Libertà)으로 가보겠습니다. 이 건물 꼭대기를 한번 올려다보세요. 고풍스러운 시계탑 위에 작은 종탑이 보이시죠? 저 종이 울리면 산마리노의 역사가 바뀝니다. 바로 두 번째 키워드, '아렝고(Arengo)'의 현장입니다. '아렝고'는 원래 산마리노의 모든 가장(Head of Family)들이 모이는 민회(民會)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중세 시대, 전쟁이 나거나 법을 바꿔야 할 때면 저 종이 맹렬하게 울렸고, 각 집안의 대표들이 이 광장에 구름처럼 모여 들었습니다. "찬성하는 사람은 오른쪽, 반대하는 사람은 왼쪽으로 서시오!"라고 외치며 나랏일을 결정했지요. 마치 우리네 옛 시골 마을에서 이장님이 확성기로 "동네 사람들 마을 회관으로 모이세요!"라고 방송하면 온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마을 대소사를 논의하던 '향약(鄕約)'과 비슷하지 않나요? 다만 이곳은 그것이 국가의 최고 의결 기구였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이 '아렝고'는 로마 제국 멸망 후 봉건 영주들이 농노들을 지배하던 암흑기 유럽에서, 산마리노가 유일하게 시민들이 주인이 되는 공화정(Republic)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산마리노 방언(Romagnol)으로 '아렝(Arèng)'이라고도 불리는 이 모임은 그들에게 있어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소통 창구였습니다.
▷ 두 명의 대통령 그리고 6개월의 시간, 카피타니 레젠티(Capitani Reggenti) : 여기서 산마리노 정치의 가장 기이하고도 매력적인 특징을 하나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만약 한국에 대통령이 두 명이라면 어떨까요? 그것도 임기가 5년이 아니라 고작 6개월이라면요? 매일 싸우느라 나라가 엉망이 될 거라고요? 산마리노에는 대통령에 해당하는 국가 원수가 두 명입니다. 이들을 '카피타니 레젠티(Capitani Reggenti)', 우리말로 번역하면 '집정관' 또는 '섭정 대장'이라고 부릅니다. 1243년에 처음 선출된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이어져 온 제도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비효율적인 제도를 유지하는 겁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Depend on No One), 네미니 테네리(Nemini Teneri) :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키워드는 산마리노의 생존 철학이자 외교 전략을 관통하는 문구입니다. '네미니 테네리(Nemini Teneri)'. 라틴어로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 또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산마리노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상징합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주변 강대국들(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신세라고 자조하곤 합니다. 산마리노 역시 이탈리아라는 거대한 나라의 뱃속에 완전히 포위된(Enclaved) 형국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자신들을 '새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작지만 단단한 '고슴도치'입니다!
▷ 나폴레옹의 유혹을 뿌리친 지혜: "전쟁은 끝나지만 이웃은 남는다." : 1797년,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가 이탈리아 북부를 휩쓸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폴레옹은 공화주의의 이상을 간직한 이 작은 나라 산마리노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특사(Monge)를 보내 파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위대한 공화국이여, 그대들의 영토가 너무 좁고 척박하지 않은가? 원한다면 바다(아드리아해)까지 닿을 수 있도록 영토를 넓혀주겠소. 대포 4문과 식량 1,000가마니도 선물로 주겠소." 보통의 나라였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제안입니다. 땅을 넓혀준다는데 마다할 리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당대 최고의 권력자 나폴레옹의 제안입니다. 하지만 당시 산마리노의 섭정이었던 안토니오 오노프리(Antonio Onofri, 1759~1825)는 정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황제 폐하의 호의는 감사하나,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현재의 국경에 만족합니다. 영토를 넓히면 훗날 이웃 나라들과 분쟁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전쟁은 언젠가 끝나지만, 이웃은 영원히 곁에 남는 법이니까요."
▶ 석양이 지는 티타노산에서(Conclusion: At Sunset on Mount Titano) : 어느덧 해가 질 시간입니다. 해 질 녘이면, 티타노산의 성벽에 기대어보세요. 붉게 물드는 하늘 아래로 아드리아해의 반짝임이 보이고, 산마리노의 오래된 돌담들은 황금빛으로 빛납니다. 우리는 종종 더 크고, 더 높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애씁니다. 하지만 산마리노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진정한 힘은 크기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지키려는 의지에서 나오는가?" "당신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당신 스스로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