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동쪽을 지키는 북유럽 최대의 왕국! 스웨덴(Sweden)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스웨덴(Sverige)이란 국명은 고대 노르드어로 '스베아(Svea) 부족의 왕국(rike)'을 의미하는 '스베아리케(Svearike)'에서 유래했습니다. 스웨덴은 1523년 칼마르 동맹에서 독립한 주권국가이자, 바이킹(Viking)의 진취적인 기상을 품은 북유럽의 맹주입니다. 입헌군주제(Constitutional Monarchy)의 오랜 전통 아래 '국민의 집(Folkhemmet)'이라 불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모델을 완성했으며, 헌법상 권리인 '알레만스레텐(Allemansrätten, 자연 향유권)'을 통해 누구나 대자연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열린사회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노벨상(Nobel Prize)으로 대표되는 인류애의 성지, 스웨덴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Finding "Not Too Much, Not Too Little"), 라곰(Lagom) : 스웨덴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열쇠는 바로 ‘라곰(Lagom, 발음 ‘라-곰’)’입니다. 이 단어 하나에 스웨덴 국민의 정신, 사회적 합의, 그리고 일상의 미학이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라곰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를 넘어서(What is Lagom? Beyond the Dictionary Definition) : 라곰(Lagom)은 한국어로 직역하기 매우 까다로운 단어입니다. 가장 흔한 번역은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또는 ‘딱 적당하게’입니다. 하지만 한국어의 ‘적당히’가 때로는 ‘대충’, ‘성의 없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품을 수 있는 반면, 스웨덴의 라곰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미덕이자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부족하거나 모자란 상태를 암시하는 ‘충분한(sufficient)’이나 ‘평균의(average)’와도 결이 다릅니다. 라곰은 완벽함은 아닐지라도 ‘가장 알맞은’ 상태, 즉 균형의 미학을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진짜 어원은 고대 스웨덴어에서 ‘법(law)’을 의미하는 단어 ‘라그(lag)’의 복수형에서 유래했습니다. 여기서 법이란 사법적인 법률이라기보다는 공동체의 ‘관습’ 또는 ‘상식’에 가까운 의미입니다. 즉, 라곰은 ‘관습에 따라’, ‘상식에 맞게’ 행동하는 사회적 지혜를 의미합니다.
▷ ‘얀테의 법칙’과 평범함의 강요(The Law of Jante and the Tyranny of the Average) : 하지만 모든 빛에는 그림자가 따르듯, 라곰에도 어두운 면이 존재합니다. 라곰이 자발적인 중용의 미덕이라면, 이를 강제하고 통제하는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것이 바로 북유럽 사회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불문율, ‘얀테의 법칙(Jantelagen)’입니다. 얀테의 법칙은 덴마크계 노르웨이 작가 악셀 산데모세(Aksel Sandemose, 1899~1965)가 그의 소설에서 풍자적으로 묘사한 가상의 마을 ‘얀테’의 10가지 규칙에서 유래했습니다. 그 규칙들은 “네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우리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무엇이든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와 같은 내용으로, 개인의 특별함이나 성공을 억압하고 집단의 평범함을 강요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 커피 한 잔에 담긴 관계의 마법(The Pause Button: The Magic of Connection in a Cup of Coffee), 피카(Fika) : 스웨덴을 여행하다 보면 카페마다 사람들이 모여 커피와 달콤한 빵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한 커피 타임처럼 보이지만, 이는 스웨덴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신성한 의식, 바로 ‘피카(Fika)’입니다. 피카는 스웨덴의 사회적 혈액순환을 돕는 심장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 이것은 커피 브레이크가 아니다(This is Not a Coffee Break) : 피카(Fika, 발음 ‘피-카’)는 명사이자 동사로 사용되는 독특한 단어입니다. ‘피카를 하다(att ha en fika)’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넘어 ‘커피와 함께 담소를 나누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 전체를 의미합니다. 스웨덴인에게 ‘삶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는’ 피카는 일종의 사회적 제도이자 ‘스웨덴의 종교’에 가깝습니다.
피카의 어원은 19세기 스웨덴에서 커피를 뜻하던 단어 ‘카피(kaffi)’의 음절 순서를 뒤집은 은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커피가 처음 스웨덴에 들어왔을 때는 커피 자체를 ‘피카’라고 불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커피와 함께하는 달콤한 디저트,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과의 교감이라는 사회적 의미로 확장되었습니다. 피카의 핵심은 음료나 음식이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눈앞의 사람과 순간에 집중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이는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커피를 일의 연장선상에서 ‘연료’처럼 소비하는 한국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서울의 직장인이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바쁘게 걸어가거나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홀로 커피를 마신다면, 스톡홀름의 직장인은 동료들과 함께 카페에 앉아 창밖을 보며 여유롭게 대화를 나눕니다. 피카는 효율성을 위한 휴식이 아니라, 관계와 여유 그 자체를 위한 시간입니다.
▷ 스웨덴 커피 기상천외 잔혹사(The Bizarre and Cruel History of Swedish Coffee) : 오늘날 스웨덴은 세계적인 커피 소비 대국이지만, 처음부터 커피가 환영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스웨덴 역사상 커피는 무려 다섯 차례나 금지령을 겪은 파란만장한 음료였습니다. 커피에 얽힌 가장 기이하고 유명한 일화는 18세기 구스타브 3세(Gustav III, 재위 1771~1792) 국왕의 이야기입니다. 커피를 몹시 싫어했던 그는 커피가 인체에 해롭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끔찍한 생체 실험을 계획했다고 전해집니다. 사형을 선고받은 일란성 쌍둥이 죄수 두 명을 감형해주는 조건으로, 한 명에게는 매일 세 주전자의 차를, 다른 한 명에게는 매일 세 주전자의 커피를 마시게 하여 누가 먼저 죽는지 지켜보게 한 것입니다. 이 실험을 감독하기 위해 두 명의 의사까지 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왕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 땅에 대한 가장 자유로운 상상력(Nature Belongs to Everyone: The Most Liberating Imagination of Land), 알레만스레텐(Allemansrätten) : 스웨덴을 이해하기 위한 마지막 열쇠는 ‘알레만스레텐(Allemansrätten)’입니다. 이 개념은 스웨덴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중, 그리고 ‘소유’에 대한 독특한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여행자에게는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가장 큰 자유를 선물하는 개념이 될 것입니다.
▷ 걷고, 야영하고, 채집할 자유(The Freedom to Walk, Camp, and Forage) : 알레만스레텐은 영어로 ‘모든 사람의 권리(Everyman's Right)’ 또는 ‘자유롭게 거닐 권리(Freedom to Roam)’로 번역됩니다. 이는 1994년 스웨덴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으로, 모든 사람이 국적에 상관없이 스웨덴의 자연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이 권리에 따라 독자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사유지라 할지라도 그곳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스키를 타고, 심지어 하룻밤 텐트를 치고 야영할 수도 있습니다. 숲에서 자라는 야생 블루베리나 버섯을 채집하는 것 또한 자유롭게 허용됩니다. 하지만 이 놀라운 자유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대원칙이 따릅니다. 바로 ‘인테 스퇴라, 인테 푀르스퇴라(Inte Störa, Inte Förstöra/Do Not Disturb, Do Not Destroy)’, 즉 ‘방해하지 말고, 파괴하지 말라’는 책임입니다. 자연과 야생동물, 토지 소유자, 그리고 자연을 함께 즐기는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이 이 자유를 누리기 위한 유일한 ‘입장료’입니다.
▶ 이 세 가지 키워드, 라곰, 피카, 알레만스레텐은 각각 독립된 개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스웨덴이라는 하나의 태피스트리를 짜고 있습니다.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만족할 줄 아는 ‘라곰’의 정신은, 잠시 멈추어 함께하는 시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피카’의 문화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 의식과 자연에 대한 존중은, 땅의 소유권을 넘어 모두가 자연을 누릴 권리를 인정하는 ‘알레만스레텐’에서 가장 극적으로 표현됩니다. 스웨덴 여행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는 것을 넘어, 이처럼 다른 삶의 방식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삶의 균형, 효율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멈춤의 미학, 그리고 소유보다 공유의 가치를 앞세우는 자연과의 공존. 이 세 가지 스웨덴의 지혜가 독자 여러분의 여행과 삶에 새로운 영감을 주기를 바랍니다. 스웨덴의 오랜 속담이 말해주듯, 함께할 때 모든 것은 더 나아지기 마련입니다. “나눈 기쁨은 두 배가 되고, 나눈 슬픔은 절반이 된다(Delad glädje är dubbel glädje; delad sorg är halv sorg/Shared joy is double joy; shared sorrow is half so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