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라!(¡Hol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전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한 스페인(Spain)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스페인이란 국명은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이곳에 상륙했을 때 토끼가 많은 것을 보고 '토끼들의 땅(I-Shapan-im)'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라틴어 '히스파니아(Hispania)'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스페인은 800년에 걸친 국토 회복 운동 레콩키스타(Reconquista, 711/722~1492)를 통해 가톨릭 정체성을 확립함과 동시에, 이슬람의 미학이 가미된 무데하르(Mudéjar) 양식이라는 독보적인 문화유산을 꽃피운 ‘인류 문명의 전시장’입니다. 15세기 '해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던 찬란한 역사와, 가우디부터 피카소와 벨라스케스의 예술혼을 품은 걸작의 땅 에스파냐(España)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삶이 축제가 되는 순간(The Moment Life Becomes a Festival), 피에스타(Fiesta, Fiesta) : 스페인에 대해 우리가 가진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아마 ‘피에스타 = 파티’라는 공식일 겁니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에게 피에스타는 삶의 방식이자, 공동체의 심장이 뛰는 소리이며, 역사를 온몸으로 기억하는 신성한 의식입니다. 스페인의 가장 작은 산골 마을부터 거대한 도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동체는 일 년에 최소 한 번, 자신들만의 피에스타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 서로의 유대를 다집니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상업적인 음악 페스티벌이나 요란한 파티와 피에스타를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피에스타는 소비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살아내는 경험이거든요!
▷ 피에스타의 독특함은 그 기원에서 비롯됩니다. 이베리아 반도는 역사적으로 거대한 ‘문화의 칵테일 바’와 같았습니다.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서고트족, 그리고 800년간 이 땅을 지배했던 무어인(이슬람 세력)과 유대인까지, 수많은 민족이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스페인의 피에스타는 이 모든 문화가 겹겹이 쌓인 지층과도 같습니다. 고대 농경 사회의 수확제와 태양 숭배 의식 같은 이교도적 전통 위에 4세기경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기존의 축제들은 교묘하게 기독교의 옷을 입었습니다. 예를 들어, 동지 축제는 크리스마스로, 춘분 축제는 부활절로, 하지 축제는 성 요한의 날로 자연스럽게 흡수되었죠. 여기에 무어인들은 음악과 불꽃놀이를,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토마토와 초콜릿 같은 새로운 재료들을 더했습니다. 이처럼 피에스타는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하고 매혹적인 혼합물 그 자체입니다.
▶ 멈춤의 미학, 삶의 재충전(The Aesthetics of Pausing, A Recharge for Life), 시에스타(Siesta, Siesta) : 스페인 여행을 하다 보면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 마치 도시 전체가 잠시 숨을 멈춘 듯한 기묘한 정적과 마주하게 됩니다. 상점 문은 굳게 닫혀 있고, 거리는 한산합니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 시간을 ‘시에스타’라고 부르며, 스페인 사람들은 모두 낮잠을 자는 게으른 민족이라고 오해하곤 합니다만, 이것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에스타의 본질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현대 스페인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낮잠으로서의 시에스타’는 사실상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특히 마드리드(Madrid)나 바르셀로나(Barcelona) 같은 대도시에서는 대부분의 회사가 점심시간 없이 쭉 일하는 ‘연속 근무(continuous workday)’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스페인 국립통계연구소(Spain's National Institute of Statistics)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스페인 사람 중 매일 낮잠을 잔다고 답한 비율은 18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2009년의 16.2퍼센트라는 조사 결과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으며, 이는 시에스타가 보편적인 습관이 아님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낮잠은 이제 노년층이나 시골 지역, 혹은 뜨거운 여름 휴가철에나 간간이 지켜지는 과거의 유산에 가깝습니다.
▷ 그렇다면 왜 아직도 스페인의 오후는 멈춰있는 것처럼 보일까요? 그 이유는 시에스타의 진정한 유산이 ‘낮잠’이 아니라, ‘삶의 리듬’에 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의 전통적인 근무 시간은 보통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하고, 두세 시간의 긴 점심 휴식 후, 다시 오후 4시나 5시부터 저녁 7시나 8시까지 일하는 방식입니다. 이 긴 휴식 시간이야말로 시에스타의 살아있는 심장입니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스페인의 ‘뽀꼬 아 뽀꼬(poco a poco, 천천히)’ 문화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한국의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종종 오후 업무를 위해 최대한 빨리 해치워야 하는 과제처럼 여겨집니다. 혼자서, 혹은 동료들과 함께 1시간 안에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사무실로 복귀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효율성과 생산성이 삶의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에스타 문화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스페인 사람들의 대답은 명확해 보입니다. ‘잘 살기 위해.’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잘 사는 삶’이란, 더 많은 것을 성취하기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희생하는 삶이 아니라, 매 순간의 여유와 관계를 충분히 누리는 삶입니다.
▶ 피와 흙의 영혼이 부르는 노래(The Song of a Soul of Blood and Earth), 두엔데(Duende, Duende) : 스페인, 특히 안달루시아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플라멩코(flamenco) 공연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어두운 무대 위, 기타 선율이 흐르고 무용수가 격렬하게 발을 구르기 시작합니다. 가수의 목소리는 절규하듯 터져 나오고, 관객석은 숨 막히는 침묵에 휩싸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저릿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가사의 뜻도, 춤의 의미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바로 그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의 정체, 그것이 바로 ‘두엔데’입니다. ‘두엔데’는 스페인어 사전에 ‘(민담에 나오는) 작은 도깨비, 악령’ 정도로 번역됩니다. 하지만 예술, 특히 플라멩코의 맥락에서 이 단어는 훨씬 더 깊고 복잡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개념을 세계에 알린 사람은 스페인의 위대한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 1898~1936)입니다. 그는 193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유명한 강연, 「두엔데의 이론과 기능(Theory and Play of the Duende)」에서 두엔데를 ‘모든 이가 느끼지만 어떤 철학자도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힘’이라고 정의했습니다.
▷ 하지만 두엔데는 천사도, 뮤즈도 아닙니다. 두엔데는 위에서도, 밖에서도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술가의 가장 깊은 곳, “혈관의 가장 먼 거처에서부터” 깨어나야 하는 힘입니다. 어느 이름 모를 명인의 말을 빌리자면, “두엔데는 목구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바닥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즉, 두엔데는 완벽한 기술이나 아름다운 형식이 아니라, 삶 자체의 진실한 스타일, 피, 고대의 문화, 그리고 창조의 행위 그 자체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투쟁을 불러일으킬까요? 로르카는 그 핵심에 ‘죽음에 대한 인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두엔데는 죽음의 가능성을 보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두엔데는 삶의 가장 어두운 소리, 즉 고통, 슬픔, 비극과 정면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두엔데가 깃든 예술은 그래서 편안하거나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그것은 “유리 가루처럼 피를 불태우고”, 우리가 배운 “달콤한 기하학을 모두 거부하며”, 때로는 화가 고야(Goya)가 그랬던 것처럼 무릎과 주먹으로 끔찍한 검은색을 칠하게 만듭니다.
▶ 스페인 여행이란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피에스타’ 속에서 삶의 환희를 맛보고, ‘시에스타’의 찰나를 즐기고, 영혼의 노래, ‘두엔데’ 앞에서 온몸으로 전율하는 것! 결국 스페인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지혜는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많이 읽고 많이 걷는 자, 많이 보고 많이 알게 되리라.(El que lee mucho y anda mucho, ve mucho y sabe mucho./One who reads and walks a lot, sees and knows a 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