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國敎)로 공인한 약속의 땅, 아르메니아(Armenia)로 떠나보겠습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스스로를 전설적인 시조 하이크(Haik)의 후손이라 여겨 국명을 '하야스탄(Hayastan)'이라 부르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진 아르메니아란 이름은 하이크의 후손 아람(Aram)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르메니아는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I, 272~337)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313년)보다 12년 빠른 서기 301년, 기독교를 받아들인 '가장 오래된 기독교 국가'입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본산 에치미아진 대성당(Cathedral of Echmiadzin)과 험준한 절벽을 깎아 만든 게그하르드 수도원(Monastery of Geghard) 등 중세 건축의 걸작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지붕 없는 박물관(Open-air Museum)'으로 유명하죠. 카르스 조약(Treaty of Kars, 1921)으로 성산(聖山) 아라라트 산(Mount Ararat)을 잃은 비운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문자 아르메니아 알파벳(Armenian alphabet)과 영혼을 조각한 십자가 돌 하치카르(Khachkar)를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지켜온 신앙의 요람(Cradle of Faith)이기도 합니다. 코카서스의 숨겨진 보석(Hidden Gem of the Caucasus), 아르메니아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돌에 새긴 영원한 신앙과 예술, 하치카르(Khachkar) : 아르메니아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여행자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자주 마주치게 되는 상징물은 바로 하치카르(Khachkar)입니다. 수도원의 이끼 낀 벽면에서부터 인적 드문 산길의 가장자리, 현대적인 예레반 시내의 공원에 이르기까지……. 하치카르는 아르메니아의 풍경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조각입니다.
▷ 하치카르의 정의와 역사적 기원 : 아르메니아어로 '하치(Khach)'는 십자가(Cross), '카르(Kar)'는 돌(Stone)을 의미합니다. 즉,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십자가 돌(Cross-stone)'이 됩니다. 그러나 하치카르를 단순한 십자가 조각상이나 기독교의 상징물로만 치부하는 것은 그 진정한 가치를 간과하는 것입니다. 하치카르는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으로 등재될 만큼 독창적인 아르메니아만의 예술 양식이자, 아르메니아인들의 신앙과 역사가 응축된 결정체입니다. 최초의 하치카르는 아르메니아가 아랍 칼리프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왕국들을 재건하던 9세기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하치카르는 879년 가르니(Garni)에 세워진 것으로, 아쇼트 1세(King Ashot I Bagratuni)의 아내인 카트라니데(Katranide) 왕비가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봉헌한 것입니다. 카트라니데 1세 왕비의 하치카르(Queen Katranide I Khachkar)는 가르니 신전 인근의 성 마슈토츠 교회(Saint Mashtots Church) 터에서 발견되었으나, 현재 아르메니아 역사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후 12세기에서 14세기 사이, 하치카르 예술은 그 기교와 예술성 면에서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몽골의 침입과 이후 이어진 이민족들의 지배로 인해 일시적인 쇠퇴기를 겪기도 했으나, 아르메니아인들은 끊임없이 이 전통을 부활시켰으며, 오늘날에도 그 맥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아르메니아 전역에는 약 50,000개 이상의 하치카르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수많은 하치카르 중 문양과 구성이 완전히 똑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하치카르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라, '바르펫(Varpet)'이라 불리는 장인들이 돌 하나하나에 자신의 영혼과 의뢰자의 염원을 담아 깎아낸 예술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 손님을 신처럼 모시는 식탁의 미학, 휴라시루춘(Hyurasirutyun) : 아르메니아를 여행하며 겪게 되는 가장 강렬한 경험 중 하나는 바로 그들의 식탁 문화입니다. 두 번째 키워드 '휴라시루춘(Hyurasirutyun)'은 아르메니아의 독특한 환대 문화를 일컫는 말로, '손님(Hyur)'과 '사랑(Ser/Sirutyun)'의 합성어입니다. 문자 그대로 '손님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삶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개념입니다.
▷ 휴라시루춘의 철학 : 아르메니아 속담에 "손님은 신이 보낸 선물이다(A guest is a gift from God)"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환대는 단순한 예절이나 사회적 규범을 넘어선, 신성한 의무이자 삶의 본질적인 기쁨입니다. 과거 실크로드의 길목에서 수많은 여행자와 상인들을 맞이하며 형성된 이러한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情)' 문화가 타인에 대한 깊은 유대감, 끈끈한 마음의 교류, 그리고 밥 한 끼라도 따뜻하게 먹이고 싶어 하는 배려를 포함하듯, 아르메니아의 휴라시루춘은 낯선 이에게도 조건 없이 음식을 나누고 잠자리를 제공하는 넉넉한 마음을 대변합니다. 한국인이 손님이 오면 "밥은 먹었냐"고 묻고, 냉장고에 있는 가장 좋은 재료를 꺼내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내는 것처럼, 아르메니아인들은 손님이 방문하면 집안의 가장 귀한 음식을 꺼내어 '세간(Seghan)'이라 불리는 식탁을 빈틈없이 채웁니다. 그들에게 빈 접시가 보이는 식탁은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 생존을 위한 문자와 사무치는 그리움, 아이부벤(Aybuben)과 카로트(Karot) : 아르메니아를 이해하는 세 번째이자 가장 지적인 키워드는 그들의 고유 문자인 '아이부벤(Aybuben)'입니다. 아이부벤은 아르메니아 알파벳의 첫 두 글자인 '아이브(Ayb, Ա)'와 '벤(Ben, Բ)'을 합친 말로, 한국어의 '가나다'나 영어의 '알파벳(Alphabet)'과 같은 구성 원리입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이 문자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 민족의 생존을 지켜낸 '무기'이자 '영혼의 성벽'입니다.
▷ 아르메니아의 세종, 성 메스롭 마슈토츠(Saint Mesrop Mashtots, 362~440) : 아르메니아 문자는 서기 405년, 성 메스롭 마슈토츠라는 승려이자 언어학자에 의해 창제되었습니다. 당시 아르메니아는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이라는 두 거대 제국 사이에서 분할 점령되어, 정치적 독립을 잃고 문화적으로 흡수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리스어나 시리아어로 예배가 집전되었고, 일반 민중들은 성경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마슈토츠는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유한 문자를 통해 신앙과 언어를 지켜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왕실의 후원을 받아 36개의 독창적인 문자 아이부벤(Aybuben)을 고안해냈고(이후 3개가 추가되어 현재는 39개), 즉시 성경 번역에 착수했습니다. 한국인 여행자에게 아르메니아 문자의 창제 역사와 그 위상은 전율이 일 만큼 한국의 '한글'과 닮아 있습니다. 두 문자의 유사성은 단순한 우연을 넘어선 역사적 필연성마저 느끼게 합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문자가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 발생적으로 진화한 것(예 : 알파벳, 한자)인 반면, 아이부벤과 한글은 특정 시기에, 특정 인물(창제자)에 의해, 뚜렷한 목적(피지배층의 언어 생활 개선 및 민족 생존)을 가지고 '발명'된 문자입니다. 이는 세계 문자 역사상 매우 드문 사례입니다. 아르메니아는 수백 년간 국가를 잃고 디아스포라로 전 세계에 흩어졌으나, 이 문자가 있었기에 언어와 종교, 문화를 잃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역시 일제 강점기라는 암흑기 속에서 한글을 지키려는 노력을 통해 민족혼을 보존했습니다. 두 나라 모두에게 문자는 물리적인 '국토'가 없을 때, 민족이 거주할 수 있는 '정신적 영토'였습니다.
▷ 문자에 담긴 영혼의 울림, 카로트(Karot) : 아이부벤이 민족을 지키는 단단한 그릇이라면, 그 그릇에 담긴 아르메니아인들의 정서는 '카로트(Karot, Կարոտ)'라는 단어로 요약됩니다. 아르메니아어 '카로트'는 사전적으로는 '그리움(Longing)'이나 '향수(Nostalgia)'로 번역되지만, 그 내면에는 훨씬 더 깊고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카로트'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사무치는 갈망',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애달픔', 그러나 동시에 '언젠가는 닿아야 할 희망'을 내포합니다. 이는 한국인의 고유 정서인 '한(恨)'과 매우 깊은 유사성을 가집니다. 한국의 '한'이 식민지배, 전쟁, 분단 등 역사적 비극과 개인의 억눌린 슬픔이 응어리진 것이라면, 아르메니아의 '카로트'는 1915년 오스만 제국에 의한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Armenian Genocide)로 인한 고향 상실, 그리고 역사적 영토이자 민족의 성산(聖山)인 아라라트산(Mount Ararat)이 현재 튀르키예 영토에 있어 갈 수 없는 현실에서 기인합니다. 예레반 시내 어디에서나 웅장하게 보이는 아라라트산을 바라보며, 갈 수 없는 그곳을 향해 깊은 숨을 내쉬는 아르메니아인들의 눈빛이 바로 '카로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