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불과 얼음의 땅(The Land of Fire and Ice), 아이슬란드(Iceland)로 떠나보겠습니다. 아이슬란드란 국명은 9세기경 바이킹 플로키 빌게르다르손(Flóki Vilgerðarson)이 피요르드를 가득 메운 유빙을 보고 명명한 이슬란드(Ísland, 얼음의 땅)에서 유래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바이킹스(Vikings, 2013~)에 등장하는 플로키(Floki)의 실제 모델이죠! 아이슬란드는 북아메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이 서로 멀어지는 대서양 중앙 해령(Mid-Atlantic Ridge)의 정점에 위치해 지금 이 순간에도 국토가 확장되고 있는 '살아있는 지질학 교과서'입니다. 유럽 최대의 빙하 바트나이외쿠들(Vatnajökull)과 오로라(Aurora)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태초의 풍경을 선사합니다. 영국보다 앞선, 세계 최초의 근대적 의회 알싱기(Alþingi)가 있는 민주주의의 발상지이자, 위대한 문학 유산 사가(Saga)를 남긴 바이킹의 후예들이 사는 곳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아이슬란드 생존의 기술(Iceland's Art of Survival), 쏘레타 레다스트(Þetta reddast) : 아이슬란드의 비공식적인 국가 표어를 꼽으라면, ‘쏘레타 레다스트’일 것입니다. 직역하면 “어떻게든 다 해결될 거야(This will be sorted out)”라는 뜻이죠. 다소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말은, 사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유전자 깊숙이 각인된 강력한 생존 주문입니다. 이는 막연한 낙관주의나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체념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예측 불가능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계획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뼈저리게 체감하며 터득한, 급진적인 수용과 창의적인 즉흥성의 철학에 가깝습니다. 이 독특한 정신세계는 아이슬란드의 혹독한 역사와 환경이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9세기 후반, 노르웨이에서 건너온 바이킹들이 처음 이 섬에 정착했을 때부터 그들의 삶은 거대한 자연과의 끊임없는 사투였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 몇 주씩 마을을 고립시키는 눈보라, 척박한 땅……. 이런 환경에서 1년, 5년짜리 장기 계획은 그야말로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당장 내일 내 농장이 화산재에 뒤덮일 수도 있는데, 먼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 그 정점은 1783년~1784년에 있었던 라키(Laki) 화산 폭발이었습니다. 이 재앙으로 당시 아이슬란드 인구의 20퍼센트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가축의 절반 이상이 폐사했습니다. 하늘은 유독 가스로 뒤덮였고, 유럽 전역에 이상 기후를 몰고 왔죠. 수백 년간 이어진 덴마크의 식민 지배와 지리적 고립은 이러한 고난을 더욱 가중시켰습니다. 이런 역사 속에서 아이슬란드인들은 거대한 계획보다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인 능력, 즉 ‘어떻게든 해내는’ 기술을 연마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에 맞서기 위한 고도로 발달된 문제 해결 전략이었습니다.
▶ 땅을 만들고 영혼을 빚는, 살아있는 얼음의 신(The Living Ice Gods Who Build Lands and Sculpt Souls), 예클라르(Jöklar) : 아이슬란드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두 번째로 마주해야 할 단어는 ‘예클라르’, 즉 빙하(氷下)입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 빙하는 단순히 얼어붙은 거대한 물덩어리가 아닙니다. 국토의 11퍼센트 이상을 뒤덮고 있는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땅을 깎고, 만들고, 파괴하는 살아있는 건축가이자 예측 불가능한 신(神)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 압도적인 힘의 중심에는 유럽에서 가장 거대한 빙하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바트나이외쿠틀 국립공원의 심장부인 바트나이외쿠틀(Vatnajökull)이 있습니다. 면적 약 7,900제곱킬로미터, 평균 얼음 두께 400미터에 달하는 이 빙하는 유럽 대륙의 다른 모든 빙하를 합친 것보다도 큽니다.
▷ 이처럼 강력하고 변덕스러운 빙하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정신세계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고대 서사시 ‘사가(Saga)’와 민담 속에서 빙하는 영웅을 시험하는 시련의 공간이자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숭고함, 그리고 그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유한함이라는 정서는 시규어 로스(Sigur Rós)의 몽환적인 음악이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할도르 락스네스(Halldór Laxness, 1902~1998)의 문학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 무서운 빙하는 현대 아이슬란드를 움직이는 심장이기도 합니다. 빙하가 녹은 물은 아이슬란드 전체 전력의 약 70퍼센트를 공급하는 수력 발전의 원천으로, 말 그대로 국가 경제의 동력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우리는 자연을 대하는 두 문화의 근본적인 태도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슬란드의 빙하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폭발하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그 앞에서 겸손해야 하고, 그 힘과 끊임없이 ‘협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퀼흐뢰이프가 지나갈 길에 영구적인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는 무모할 뿐입니다. 자연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해야 할 강력하고 도덕과 무관한 힘입니다. 반면 한국의 산은 거의 영구적이고 안정적인 존재입니다. 풍수지리는 바로 이 안정된 자연의 질서에 인간의 삶을 조화롭게 ‘정렬’시켜 번영과 안녕을 얻으려는 지혜의 체계입니다. 이처럼 아이슬란드적 인성은 강력하고 위험한 자연과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겸손함과 회복탄력성을 얻었고, 한국적 인성은 안정되고 은혜로운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올바른 질서와 명당을 찾아 번영하려는 믿음을 키워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창문으로 볼 때만 아름다운, 아이슬란드식 날씨의 유혹(The Temptation of Icelandic Weather, Beautiful Only Through a Window), 글루가베뒤르(Gluggaveður) : 아이슬란드의 영혼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열쇠는 ‘글루가베뒤르’라는 시적인 단어입니다. ‘창문(Gluggi)’과 ‘날씨(Veður)’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창문 날씨’를 의미합니다. 실내에서 창밖으로 볼 때는 더없이 아름답지만, 막상 밖에 나가기는 끔찍하게 싫은 날씨를 뜻하는 이 절묘한 단어 속에는 아름다움과 고난,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아이슬란드의 독특한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힌트가 담겨 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따뜻한 조명이 켜진 거실 안락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봅니다. 새하얀 눈송이가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며 세상을 지우고 있습니다. 혹은 카페 창 너머로, 성난 파도가 몰아치는 잿빛 바다 위로 폭풍우가 드라마틱하게 하늘을 가로지릅니다. 그 풍경은 분명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유리창이라는 안전한 경계를 통해 감상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이것이 바로 글루가베뒤르의 본질입니다.
▷ “아이슬란드 날씨가 마음에 안 들면, 5분만 기다려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이곳의 날씨는 변덕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고, 강풍과 눈보라는 일상입니다. 바로 이 혹독하고 예측 불가능한 외부 환경이 역설적으로 아이슬란드의 경이롭도록 풍요로운 ‘내면의 문화’를 키워낸 가장 큰 촉매제였습니다. 바깥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기나긴 겨울밤, 사람들은 실내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고 창조해야만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결과가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독서 문화와 ‘욜라보카플로드(Jólabókaflóð)’, 즉 ‘크리스마스 책 홍수(Christmas book flood)’라는 전통입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로 책을 선물하고, 그날 밤 다 함께 모여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인구당 도서 출간율이 세계 1위라는 통계는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과 혹독한 추위 속에서 책은 최고의 오락이자 세상과 연결되는 창이었던 셈입니다.
▷ 인구 40만 명이 채 안 되는 나라에서 비요크(Björk), 시규어 로스(Sigur Rós), 오브 몬스터스 앤 맨(Of Monsters and Men)과 같은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끊임없이 배출되는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독창적인 음악은 기나긴 겨울 동안 차고나 거실에 모여 함께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추위와 어둠에 맞서 스스로 온기와 공동체를 만들어낸 창조적 인큐베이팅의 산물입니다. 이러한 문화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코지(Kósý)’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아늑하다는 뜻을 넘어, 따뜻한 양모 스웨터를 입고 촛불을 켠 채, 가까운 친구 두세 명과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소중한 상태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코지는 글루가베뒤르에 맞서는 아이슬란드식 문화적 해독제인 것입니다.
▶ 아이슬란드의 정신은 ‘쏘레타 레다스트’라는 회복탄력성의 주문에서 시작됩니다. 이 주문은 인간의 계획을 비웃는 거대한 ‘예클라르’의 힘 앞에서 겸손과 적응을 배우며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창밖으로만 아름다운 ‘글루가베뒤르’라는 혹독한 환경은, 역설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창의적인 실내 문화인 욜라보카플로드(Jólabókaflóð)와 ‘코지’를 꽃피웠습니다. 이 세 단어는 서로 얽히고설켜 아이슬란드라는 독특한 세계를 직조해냅니다. 아이슬란드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Á misjöfnu þrífast börnin best(Children thrive best on inequality.).” “아이들은 다양함 속에서 가장 잘 자란다.”는 뜻입니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불과 얼음, 빛과 어둠, 고요와 폭풍이라는 극단적인 다양성과 역경의 땅에서 자라난 아이들과 같습니다. 바로 이 도전적인 ‘다양함’이야말로 그들의 놀라운 생존력과 독창성,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을 빚어낸 진정한 힘일 것입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예측 불가능한 무언가를 마주하게 될 때, 당황하기보다는 이 말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곳에 바로 아이슬란드의 진짜 매력이, 그리고 어쩌면 우리 자신의 새로운 모습이 숨어있을테니까요! Takk fyrir(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