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서반구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 세인트키츠와 네비스(Saint Kitts and Nevis)로 떠나보겠습니다. 세인트키츠는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가 이 섬을 보고, 자신의 수호성인 '세인트 크리스토퍼(Saint Christopher)'의 애칭으로 부른 것에 유래합니다. 스페인어 '눈의 성모(Nuestra Señora de las Nieves)'의 네비스(Nevis)는 구름에 덮인 산봉우리가 마치 눈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졌습니다. 원주민 칼리나고(Kalinago)족은 두 섬을 각각 '비옥한 땅'이라는 뜻의 리아무이가(Liamuiga)와 '아름다운 물의 땅'이라는 뜻의 우알리에(Oualie)로 불렀죠. 세인트키츠 네비스는 1623년 유럽 열강이 카리브해에 최초로 정착한 요충지로, '서인도 제도 식민지의 어머니(Mother Colony of the West Indies)'라 불리며 영국과 프랑스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 브림스톤 힐 요새 국립공원(Brimstone Hill Fortress National Park)은 아프리카 노예들의 노동력과 영국의 군사 공학이 결합된 카리브해 최대의 성채로, '서인도 제도의 지브롤터(Gibraltar of the West Indies)'라 불립니다. 카리브해의 역사적 관문(Historical Gateway to the Caribbean), 세인트키츠 네비스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영혼의 안식과 해방의 몸짓, 라이밍(Limin, a gesture of spiritual rest and liberation) : 세인트키츠 네비스의 시가지를 거닐다 보면, 지역 주민들이 무성한 나무 그늘 밑이나 해변에 자리한 소박한 주점에 둘러앉아 특정한 목적의식 없이 그저 담소를 나누며 한가로운 때를 보내는 광경을 빈번하게 목격하게 됩니다. 이처럼 서두르지 않고 타인과 어우러져 평온을 누리는 일상적 행위를 현지 크리올어로는 ‘라이밍(Limin, 혹은 Liming)’이라 일컫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열대 기후 특유의 나태함이나 이른바 ‘무위의 미학(The Art of Doing Nothing)’으로 오인될 소지가 다분하지만, 이 어휘의 이면에는 카리브해의 참담한 과거사와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민초들의 숭고한 철학이 맥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제국주의 치하에서 이 작은 섬으로 압송된 아프리카계 흑인 노예들은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 밭에서 동트기 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단 한순간의 여유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가혹한 노동을 강요받았습니다. 백인 농장주들이 휘두르는 매서운 채찍 아래, 노예들에게 ‘시간’이란 오로지 착취를 위한 도구이자 지배자의 사적 자산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현지인들이 일상에서 누리는 라이밍의 본질은 무의미한 휴식이 아니라, 과거 권력자들이 독점했던 ‘시간 통제권’을 마침내 탈환하여 자신들만의 주체적인 리듬으로 삶을 재편하고 짓밟힌 인간의 존엄성을 수복해 낸 경이로운 문화적 쾌거로 보아야 마땅합니다.
▶ 제국의 틈바구니에서 핀 생명력, 피크니(Pickney, vitality blooming in the crevices of empires) : 세인트키츠 네비스가 보유한 언어학적 정체성과 그 혼종의 역사를 가장 뚜렷하게 증명하는 크리올어 어휘 중 하나가 바로 유아나 자식을 지칭하는 ‘피크니(Pickney)’입니다. 놀랍게도 이 단어의 뿌리는 오랫동안 이들을 지배했던 영국의 언어가 아니라, ‘크기가 작다’는 의미를 내포한 포르투갈어 ‘페케노(Pequeno)’에 닿아 있습니다. 대항해시대 초기 무렵, 아프리카 서부 해안 일대에서 흑인 노예 매매를 주름잡던 포르투갈계 상인들이 퍼뜨린 이 어휘는 수많은 아프리카 토착 부족들이 강제로 섞이며 발생한 의사소통용 혼성어(Pidgin)로 녹아들었고, 이후 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가르는 끔찍한 노예선에 실려 카리브해로 유입된 뒤 세인트키츠 크리올의 뼈대 어휘로 단단히 자리매김했습니다. 국가의 공식 언어인 영어를 골조로 삼고 있음에도 서아프리카 고유의 언어적 특성과 포르투갈어의 흔적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은, 이 외딴 섬나라가 감내해야 했던 폭력적인 세계화의 민낯과 그 이면에 자리한 슬픈 문화 융합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실제로 세인트키츠 크리올은 영어 어휘를 주축(Lexifier)으로 사용하면서도, 복수형을 표기할 때 명사 후미에 ‘뎀(dem)’을 접미하거나 진행 시제를 표현할 때 동사 전면에 ‘아(a)’를 배치하는 등 철저히 서아프리카 이보어(Igbo) 및 아칸어(Akan)의 문법 체계와 음운론적 규칙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 비극적 기록에서 인권의 증거로(From a tragic record to evidence of human rights) : 과거 무수한 ‘피크니’들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마주해야 했던 처절한 비극의 발자취는, 세인트키츠 네비스를 필두로 바하마, 벨리즈, 자메이카 등 카리브 인근 국가들과 영국 정부가 합심하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시킨 ‘영국령 카리브해 노예 등록부 1817-1834(Registry of Slaves of the British Caribbean 1817-1834)’에 적나라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방대한 문서 더미는 1817년부터 영국 관할 영토 내에서 노예 제도가 법적으로 전면 폐지된 1834년까지, 백인 농장 경영주들이 자신들의 ‘합법적 재산’인 아프리카인들의 성명, 연령, 성별, 태생지, 심지어 피부톤의 짙고 옅음까지 병적으로 집착하며 기록해 둔 행정 대장입니다. 인간을 마치 가축이나 공산품처럼 사고팔고 세습하기 위한 목적으로 편찬된 이 잔인한 재산 목록 안에는, 수많은 피크니들의 탄생과 비참한 죽음 그리고 부모와 자녀가 강제 경매로 생이별해야 했던 이산의 참상이 지극히 건조하고 행정적인 문체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허나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기본적 존엄을 완벽히 말살하기 위해 꼼꼼히 작성되었던 이 제국주의의 산물은, 오늘날 아프리카계 카리브해 후손들이 강제로 단절되었던 자신의 뿌리와 핏줄을 역추적할 수 있는 유일무이하고 소중한 족보로 거듭났습니다. 가해자가 남긴 치밀한 착취의 증거가 훗날 피해자들의 혈통을 증명하는 결정적 문서로 탈바꿈하여, 인류 보편의 인권과 아픈 기억을 수호하는 세계적인 기록유산으로 격상된 것입니다.
▶ 요새 성벽에 스며든 아프리카 원혼, 점비(Jumbie, African spirits permeating the fortress walls) : 세인트키츠 네비스의 캄캄한 밤거리를 걷다 보면, 빽빽한 열대 우림을 관통하는 을씨년스러운 바람 소리에 섞여 현지인들이 종종 짙은 공포와 경외심을 담아 내뱉는 어휘 하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억울하게 명을 달리한 자들의 떠도는 혼백이나 유령을 의미하는 크리올어 ‘점비(Jumbie)’입니다. 아프리카 대륙 고유의 토착 신앙 및 주술적 세계관에서 기원한 이 신비로운 단어는, 고향 땅을 강제로 떠나 이역만리 낯선 사탕수수 농장에서 백인들의 무자비한 채찍질을 견디다 못해 쓰러져간 무수한 조상들의 한 맺힌 영혼을 대변하는 거대한 문화적 메타포(Metaphor)로 기능합니다. 그리고 이 셀 수 없이 많은 점비들의 붉은 피와 눈물이 물리적 실체로서 가장 진하게 얼룩져 있는 장소가 바로 1999년 세인트키츠 네비스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유네스코 세계유산(World Heritage Site)으로 이름을 올린 ‘브림스톤 힐 요새 국립공원(Brimstone Hill Fortress National Park)’입니다.
해발고도 이백사십 미터(약 팔백 피트)에 달하는 가파른 안산암질 화산 지형 정상부에 위압적으로 솟아오른 이 거대한 요새는, 일천육백구십 년대 무렵부터 장장 백여 년의 세월 동안 영국 소속 군사 공병들의 치밀한 지휘 아래 건축되었습니다. 주변에 널려 있던 단단한 석회암을 현장에서 직접 구워내 제작한 박격포와 거대한 화산 암석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듬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중심부의 조지 요새(Fort George Citadel)는 18세기 서구에서 유행하던 ‘다각형 체계(Polygonal System)’ 기반의 군사 방어 축조술이 낳은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그 압도적이고 난공불락인 위용 덕에 당시 이곳을 방문한 유럽인들은 이 요새를 일컬어 ‘카리브해의 지브롤터(Gibraltar of the Caribbean)’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웅장하고 기하학적인 완벽함을 자랑하는 석조 건축물을 실제로 빚어낸 이들은 화려한 훈장을 단 영국의 군사령관들이 아니라,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짐승처럼 부림을 당했던 수천 명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었습니다.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적도의 태양 아래서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화산암을 맨손으로 깎아내고, 깎아지른 듯한 비탈길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성벽을 구축하다 끝내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응어리진 영혼, 즉 수많은 점비들이 거대한 성벽의 돌 틈새마다 깃들어 있다고 표현해도 결코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 굴곡진 역사를 넘어 공존의 바다로(Beyond the turbulent history to the sea of coexistence) :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세인트키츠 네비스 연방은 물리적인 국토 면적이나 전체 인구 규모 면에서 전 세계 최하위권에 머무는 소국(小國)임이 틀림없으나, 이들이 간직하고 있는 문화적 깊이와 역사적 서사의 무게만큼은 결코 가볍게 평가될 수 없습니다. 초기 유럽 개척자들의 침략 이래 수백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강요된 무자비한 착취와 제도적 탄압의 굴레 속에서도, 이들은 아프리카 조상들이 물려준 고유의 리듬과 언어적 뿌리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으며, 이를 서구의 문화와 절묘하게 결합하여 독창적이고 체계적인 ‘키티시안 크리올’이라는 훌륭한 언어 체계를 탄생시켰습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시간을 허비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라이밍’은 사실 혹독한 강제 노동에 정면으로 맞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쟁취해 낸 고차원적인 정신적 항쟁이었습니다. 또한, ‘피크니’라는 단어 속에 진하게 스며든 혼종의 뼈아픈 역사는 차갑고 건조한 노예 등록부라는 제국의 문서와 결합하여 오히려 이들의 역사적 존재감과 핏줄을 증명하는 단단한 정체성의 기둥으로 거듭났습니다. 나아가, 압제자의 요새를 짓다 억울하게 희생된 수많은 ‘점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거대한 화산암 성벽의 그림자 밑에서 화려하고도 슬픈 가면극을 펼쳐내는 이들의 춤사위는, 과거의 끔찍한 상흔을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껴안으며 희망찬 내일로 나아가는 성숙한 인류 공동체의 표본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One one cocoa full basket.
한 알 한 알의 코코아가 모여 마침내 바구니를 가득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