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작은 나라, 수리남(Suriname)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수리남이란 국명은 유럽인들이 당도하기 전 이 지역을 터전으로 삼았던 선주민 '수리넨(Surinen)' 부족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수리남은 1975년 독립 승인을 통해 네덜란드(Netherlands)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주권을 인정받은 엄연한 국가이자, 남미 유일의 네덜란드어 공용어 국가입니다. 국토 내에 거대한 아마존 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앙 수리남 자연보호구역(Central Suriname Nature Reserve)이 자리하며, 크리올, 힌두스탄, 자바, 마룬 등 다양한 민족이 각자의 핏줄과 언어를 유지하면서도 모스크와 유대교 회당이 나란히 공존하는 독특한 다문화 사회(Multicultural Society)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화의 모자이크(Mosaic of Cultures), 수리남으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용광로 속에서 피어난 연대, 목시(Solidarity bloomed in a melting pot, Moksi) : 수리남의 첫 번째 고유한 특징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핵심 열쇠는 바로 '목시 파투(Moksi Patu)'라는 스라난 통고 단어에 숨어 있습니다. 직역하자면 '여러 이질적인 재료가 한데 섞여 끓고 있는 냄비'를 뜻하는 이 말은, 남미 원주민을 비롯해 강제 이주된 아프리카계 흑인, 계약 노동자로 유입된 인도계와 자바계, 중국계, 그리고 유럽의 네덜란드인과 종교적 박해를 피해 도망쳐 온 유대인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민족들이 촘촘한 사회적 거미줄을 이루며 살아가는 수리남 특유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多文化主義)를 가장 시적으로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서로 다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치열한 생존을 위해 수리남이라는 거대한 솥단지 안에서 부대끼며 만들어낸 역동적인 조화는 수리남을 여타 중남미 국가들과 선명하게 구별 짓는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목시'의 미학이 물리적 공간과 시각적 형태로 가장 찬란하게 구현된 기념비적인 장소가 200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파라마리보 역사 지구(Historic Inner City of Paramaribo)입니다.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형성되기 시작한 이 도시의 구도심은 유럽 제국주의의 질서 정연한 식민 도시 계획 및 대칭적 건축 양식이 아마존의 가혹한 열대 기후, 현지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건축 재료 가공법과 절묘하게 융합된 문화적 결정체입니다.
지진과 허리케인에 대비해 대부분의 중남미 식민 도시들이 육중한 석재나 단단한 벽돌을 주재료로 삼은 것과 달리, 파라마리보의 건축물들은 남미 원주민들의 지혜를 수용했습니다. 하단부에만 붉은 벽돌로 견고하게 기초를 다진 뒤, 구조물 전체를 가볍고 통풍이 잘되는 목재로 지어 올리는 파격적인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어두운 초록색으로 칠해진 창문과 문, 목재 특유의 정갈한 선형미가 어우러진 독창적인 목조 건축물(Wooden Architecture, 木造建築)들은 유럽의 권위와 크리올의 실용주의가 어떻게 하나의 공간 안에서 타협했는지를 강렬하게 웅변합니다.
▷ 엘리자베스 삼손, 견고한 장벽을 깬 자유의 상징(Elisabeth Samson, a symbol of freedom breaking solid barriers) : 거대한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던 18세기 수리남 사회의 복잡다단한 계층적 모순을 폭로하는 동시에 이를 뛰어넘은 전설적인 인물이 엘리자베스 삼손(Elisabeth Samson, c. 1715~1771)입니다. 해방 노예의 신분이었던 그녀는 뛰어난 경제적 감각을 발휘하여 18세기 수리남 경제의 핵심이었던 커피 수출업과 광활한 플랜테이션(Plantation, 大農場) 경영을 통해 당대 백인 남성들을 뛰어넘는 거대한 부를 축적한 입지전적인 자유 흑인 여성(Free Black Woman, 自由黑人女性)이었습니다.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엄격한 인종적, 성별 장벽에 정면으로 도전했으며, 흑인과 백인의 공식적인 결혼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다는 판결을 네덜란드 헤이그 의회로부터 3년여의 법정 투쟁 끝에 받아내어 백인 남성과의 혼인을 성취했습니다. 그녀의 삶은 피지배 계층이었던 흑인이 주류 백인 사회의 규범에 균열을 낸 기념비적 사건으로 평가받는 한편, 그녀 스스로가 수많은 흑인 노예를 소유하고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뼈아픈 진실을 안고 있어 식민지 사회가 품고 있던 태생적 한계를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 상처를 넘어 하나의 심장으로, 완 피펠(Beyond scars to a single beating heart, Wan Pipel) : 수리남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구성하는 두 번째 스라난 통고 키워드는 '완 피펠(Wan Pipel)', 즉 '하나의 민족(One People)'입니다. 1975년 네덜란드로부터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이뤄낸 수리남 정부와 국민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수백 년간 제국주의 통치자들이 남기고 간 인종 간의 깊은 감정의 골을 메우고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을 수리남 국민이라는 확고한 정체성으로 묶어내는 일이었습니다.
수리남 영화사상 최초의 장편 극영화이자 핌 더 라 빠라(Pim de la Parra, 1940~2024) 감독의 1976년 작인 '완 피펠'은 이러한 시대적 고뇌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걸작입니다. 유학 중이던 청년 로이가 귀국 후 아프리카계 크리올, 인도계 힌두스탄, 유럽계 네덜란드 문화가 충돌하는 현실 속에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려낸 이 영화는, 탈식민지 사회가 겪는 진통과 진정한 하나의 민족으로 거듭나기 위한 민중의 몸부림을 강렬하게 상징합니다.
▷ 밀림의 투사들, 마룬과 보니의 불굴의 항쟁(Fighters of the jungle, the indomitable struggle of Maroons and Boni) : 하나의 심장을 향한 숭고한 투쟁의 뿌리는 식민 지배 초기, 비인간적인 노동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정글로 탈출했던 도망 노예, 즉 마룬(Maroons, 逃亡奴隸)들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들은 원주민들과 연대하여 독립적인 부족 사회를 형성했고, 게릴라전으로 식민군에 끈질기게 저항했습니다. 수많은 마룬 저항군 중에서도 보니(Bokilifu Boni, c. 1730~1793)는 자유의 화신으로 추앙받습니다.
그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하고 사탕수수 농장을 습격해 식민 통치자들을 공포에 떨게 했으며, 기아나로 쫓겨난 후에도 아쿠바 보코 고(Akuba Booko Goo) 요새를 거점 삼아 최후의 순간까지 무장 투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훗날 배신으로 목숨을 잃었음에도 그의 흔들림 없는 투혼은 부당한 억압 앞에 무릎 꿇지 않는 불굴의 용기를 일깨우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 안톤 더 꼼과 동학의 연대, 펜으로 이룬 정신적 해방(Anton de Kom and Donghak solidarity, the spiritual liberation achieved through the pen) : 20세기 근대에 이르러서는 무력 충돌을 넘어 예리한 펜과 뜨거운 이데올로기로 민중을 각성시킨 국가적 영웅 안톤 더 꼼(Cornelis Gerhard Anton de Kom, 1898~1945)이 등장합니다. 그는 불후의 명저 '우리는 수리남의 노예들(Wij slaven van Suriname)'을 출간하여 네덜란드 식민 지배의 경제적 잔혹성과 구조화된 인종차별주의를 고발했습니다.
제도로서의 노예제는 1863년에 법적으로 철폐되었으나, 흑인들의 자기 비하와 노예적 순종을 비판하며 완전한 정신적 해방을 촉구한 그의 책은 글로벌 반식민주의 사상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결국 추방되어 나치에 맞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독일 산보스텔 강제수용소(Sandbostel concentration camp)에서 병사한 그의 드라마틱한 삶은 진정한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의 표상으로 남아있습니다.
평등 사회(Egalitarian Society, 平等社會)를 부르짖으며 분연히 일어선 수리남의 저항사는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동학농민혁명 기록물(Archives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의 궤적과 깊은 정신적 교감을 이룹니다.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은 외세 침탈과 지배층의 부패에 항거하여 농민들이 만민 평등의 기치를 내걸고 결성한 반봉건주의, 반외세 운동이었습니다. 혁명의 지도자 전봉준(全琫準, 1855~1895)의 영도 아래 농민군은 집강소(Jipgangso, 執綱所)라는 민관 협치 기구를 세워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억압적인 시스템에 당당히 맞서 역사의 진정한 주동자(Protagonist, 主動者)로 우뚝 섰던 전봉준과 농민군의 서사는 생존을 위해 총을 들었던 보니나 조국의 해방을 위해 펜을 쥔 안톤 더 꼼의 삶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수리남 민중의 기나긴 투쟁기 역시 과거의 분열을 넘어 완 피펠이라는 거대한 희망으로 합류하는 숭고한 여정입니다.
▶ 영혼을 깨우는 아프리카의 메아리, 오도(The African echo that awakens the soul, Odo) : 수리남의 멍든 영혼을 이해하기 위한 세 번째 언어적 키워드는 속담과 격언, 전래동화와 민담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인 '오도(Odo)'입니다. 오도는 한가로운 시절에 탄생한 말의 유희가 아닙니다.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 혹독한 노동 속에서도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삶의 지혜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치열한 구전(Oral Transmission, 口傳)의 형태로 발전시킨 생존과 저항의 텍스트였습니다. 무성한 열대우림과 포식자 등 자연의 은유를 빌려 백인 주인들의 가혹한 착취를 풍자하고, 혹독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을 다졌던 오도는 수리남 흑인 민중들의 비공식적인 정신적 헌법이었습니다.
▶ 조용히 노를 저어 당도할 내일의 해변(The shore of tomorrow reached by rowing quietly) :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수리남의 장구한 역사는 전 세계에서 흘러들어온 이질적인 파편들이 화합을 모색해 온 험난한 과정이었으며, 식민 제국의 강압적 기획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다채로운 태피스트리를 직조해 낸 위대한 민중의 기록입니다. 이념과 인종을 넘어 '목시'의 철학을 통해 다양성을 수용하고, 투쟁의 한가운데서도 '완 피펠'을 부르짖으며 갈등을 봉합하려 애썼으며, '오도'에 깃든 해학과 지혜를 등대 삼아 가장 어두운 터널을 무사히 통과해 온 수리남의 발자취는 양극화와 배타주의로 얼룩진 현대 사회에 무거운 성찰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아마존의 울창한 밀림을 가로지르는 수리남의 강물은 바위에 부딪혀도 요란하게 저항하지 않고, 마침내는 대서양의 품을 향해 단 한순간도 쉼 없이 흘러갑니다. 수많은 이민자와 그 후손들이 국가적 통합을 이루어가는 길 역시 하루아침의 기적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수많은 역사적 굴곡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수리남 사람들은 국가의 내일을 개척하는 일에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축적된 고난의 경험을 통해, 단단한 견딤의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결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헐벗은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며 절망의 늪에서 그들을 일으켜 세웠던 스라난 통고의 깊은 지혜 하나를 빌려 이 긴 여정을 맺고자 합니다.
Wan finga no man kiri loso.
One finger cannot kill a louse.
하나의 손가락으로는 이를 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