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인류 최초로 노예 혁명을 일으킨 저항의 땅, 아이티(Haiti)로 떠나보겠습니다. 아이티라는 국명은 원주민 타이노족의 '산이 많은 땅' 아야이티(Ayiti)에서 유래했습니다. 아프리카의 전통과 가톨릭이 결합된 독특한 문화의 아이티는,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Resilient Spirit)이 깃든 곳입니다. 아이티는 1804년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하고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the world's first Black republic)’이자, ‘아메리카 대륙에서 두 번째로 독립한 국가’(the second independent country in the Americas, 1783)입니다. (그럼 첫 번째는 어디냐구요? 미국!) 험준한 산 정상에 우뚝 솟은 라페리에르 성채(Citadelle Laferrière)는 아메리카 대륙 최대 규모의 요새이며, 상수시 궁전(Sans-Souci Palace)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위엄을 자랑합니다. 카리브해의 혁명의 요람(Cradle of Revolution), 아이티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속박을 끊어낸 자유의 언어와 맛, 크레올(Kreyòl, The Language and Taste of Freedom That Broke the Chains) :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할 아이티의 영혼을 담은 키워드는 바로 그들의 언어이자 정체성 그 자체인 '크레올(Kreyòl)'입니다. 17세기부터 18세기 무렵, 생도맹그의 가혹한 설탕 및 커피 플랜테이션 농장에는 콩고(Kongo), 로앙고(Loango), 앙골라(Angola) 등 아프리카 대륙 각지에서 수십만 명의 흑인들이 강제로 끌려왔습니다. 출신 지역과 부족이 달라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던 이들은, 지배 계급인 프랑스인들의 어휘를 바탕으로 삼되 서아프리카 반투(Bantu)어군의 문법 구조와 리듬, 그리고 토착 타이노족의 단어들을 경이롭게 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혼성 언어를 창조해 냈습니다. 언어학적으로 '아이티 크레올어(Haitian Creole)'라 명명되는 이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 노예들이 식민 지배자들의 눈을 피해 서로를 결속시키고 저항을 조직했던 생존의 무기였습니다. 유럽의 식민 잔재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스페인어가 압도적으로 사용되는 이웃 국가 도미니카 공화국과 달리, 아이티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언어를 재조립함으로써 민족적 융합을 이뤄냈습니다. 오랫동안 소수의 엘리트 계층이 사용하는 프랑스어에 밀려 차별받기도 했으나, 1987년 헌법에 의해 마침내 프랑스어와 동등한 공식 국어로 지정되며 그 숭고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 해방의 아침을 여는 축배, 주무 수프(Joumou Soup: The Toast that Opens the Morning of Liberation) : 이러한 크레올의 창조적 저항 정신과 자유에 대한 갈망은 아이티의 식문화에도 고스란히 체화되어 있으며,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202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주무 수프(Joumou Soup)'입니다. 주무 수프는 터번 호박(Turban squash, 아이티 크레올어로 '주무')을 주재료로 하여 소고기, 감자, 당근, 순무, 마, 양배추 등 다양한 채소와 카리브해 특유의 매콤한 향신료를 넣고 푹 끓여낸 진한 노란색의 스튜입니다. 이 요리의 기원에는 가슴 아프면서도 통쾌한 역사가 숨 쉬고 있습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영양가가 높고 맛이 뛰어난 이 호박 수프는 오직 백인 농장주와 지배 계급만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흑인 노예들은 재료를 가꾸고 수프를 끓이면서도 정작 맛볼 권리는 철저히 박탈당했습니다. 이는 음식을 통해 인종적 우월성을 과시하고 노예들을 비인간화하려는 식민 제국주의의 잔혹한 통치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1804년 1월 1일, 피비린내 나는 혁명 끝에 마침내 아이티가 독립을 선포하던 그 경이로운 아침, 아이티의 첫 번째 황후였던 마리 클레르 외뢰즈 펠리시테(Marie-Claire Heureuse Félicité)는 해방된 모든 흑인 시민들에게 이 주무 수프를 끓여 나누어 주었습니다. 억압과 금기의 상징이었던 음식을 자유와 평등, 그리고 해방의 상징으로 완벽하게 탈바꿈시킨 이 극적인 순간은 아이티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의 아이티 디아스포라(Diaspora)는 매년 1월 1일 독립기념일 아침이면 다 함께 모여 주무 수프를 나누어 먹으며 조상들의 희생을 기리고 연대를 다집니다.
▶ 고난을 함께 짊어지는 연대의 마법, 콩비트(Konbit, The Magic of Solidarity Shouldering Hardships Together) : 아이티의 영혼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두 번째 크레올어 키워드는 '콩비트(Konbit)'입니다. 콩비트는 아이티 전통의 협동적 공동 노동 시스템이자 상호 부조 정신을 의미하는 단어로,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품앗이' 혹은 '두레'와 그 궤를 같이합니다. 콩비트의 뿌리는 과거 서아프리카 다호메이(Dahomey) 왕국의 집단 노동 관습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노예무역을 통해 카리브해로 강제 이주된 아프리카인들이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생적으로 발전시킨 연대의 방식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국토의 80%가 산악 지대인 아이티는 대규모 기계화 농업이 불가능했습니다. 따라서 농번기가 되면 이웃과 친척들이 특정 가구의 밭에 모여 흙을 일구고, 잡초를 뽑고, 씨앗을 파종하는 고된 육체노동을 함께 분담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노동의 과정이 결코 고역으로만 치부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전통 악기인 타악기를 연주하고 춤추며 노동가를 부르는데, 이는 육체의 피로를 잊게 만들고 작업의 효율을 높여줍니다. 노동이 끝나면 주최자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과 술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공동체의 유대감을 축제처럼 자축합니다. 특히 2010년 대지진이나 각종 허리케인 등 국가 인프라가 붕괴되는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부의 행정력이 닿지 않는 곳마다 아이티 국민들은 이 콩비트 정신을 발휘하여 무너진 이웃의 집을 잔해 속에서 함께 일으켜 세우며 스스로를 구원해 냈습니다. 콩비트는 개인이 홀로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을 공동체의 힘으로 분산시키고 극복해 내는 가장 아름다운 사회적 안전망입니다.
▷ 장부에 갇힌 영혼들의 소리 없는 저항(The Silent Resistance of Souls Trapped in Ledgers) : 아이티 사람들이 이토록 깊은 연대와 상호 의존성을 발달시킬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을 뼈저리게 증명해 주는 유산이 있습니다. 바로 202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공동 등재된 '구 프랑스 식민지의 노예 신분 기록부(Registers identifying enslaved persons in the former French colonies, 1666-1880)'입니다. 프랑스와 아이티 등이 함께 등재에 참여한 이 방대한 기록물은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말까지 아이티를 포함한 프랑스의 여러 식민지에서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던 흑인 노예들의 세례, 결혼, 매매, 사망, 그리고 도주와 해방에 관한 행정적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흑인 노예들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와 시민적 지위(Civil status)를 완벽하게 박탈당한 채, 그저 플랜테이션 농장의 생산 도구이자 주인의 재산으로 철저히 대상화되었습니다. 이 건조하고도 정교한 장부들은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어떻게 자신의 고유한 이름과 조상의 역사를 빼앗기고 하나의 '숫자'로 전락했는지를 고발하는 서늘한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의 비인간화와 존재의 지워짐 속에서도 노예들은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록부 속의 '자산'으로 남기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물리적, 정신적으로 굳게 뭉쳐야만 했으며, 그 처절하고 위대한 연대의 결정체가 바로 콩비트라는 문화로 승화된 것입니다.
▶ 영혼이 춤추는 신성한 안식처, 라쿠(Lakou, The Sacred Sanctuary Where the Soul Dances) : 세 번째 크레올어 키워드는 '라쿠(Lakou)'입니다. 물리적 의미에서의 라쿠는 여러 채의 가옥들이 둥글게 둘러싼 형태의 공용 마당이나 안뜰(Courtyard)을 지칭하지만, 문화적·정신적으로는 여러 세대의 대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공동체적 안식처이자 아이티 정체성의 뿌리를 의미합니다. 라쿠의 탄생은 아이티의 독립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잔혹했던 식민 시대가 끝나고 노예 해방을 맞이한 후, 아이티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과제는 자신들만의 온전한 '땅'을 소유하고 가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노예 시절의 고통스럽고 획일화된 집단 농장 구조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대신, 핏줄로 이어진 친척들이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 위에 원형으로 집을 짓고 가운데 공유 마당을 두어 함께 채소를 기르고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것이 바로 라쿠 공간의 시작입니다. 더 나아가 라쿠는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영적인 보호막으로 기능합니다. 라쿠의 중심부에는 흔히 서아프리카 기원의 토착 신앙과 가톨릭이 혼합된 아이티 고유의 종교인 부두(Vodou)의 혼령, 즉 '루와(Lwa)'를 모시는 성스러운 제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안에서 가족들은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그들의 기원인 기넨(Ginen, 아이티인들이 생각하는 영적인 아프리카의 고향)의 조상들과 깊은 영적 유대를 다집니다. 극심한 정치적 불안, 경제적 빈곤, 가혹한 자연재해 속에서도 아이티 국민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내는 이유는, 상처받은 영혼을 기대고 치유받을 수 있는 이 라쿠라는 단단한 요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산 너머 산, 그럼에도 결코 멈추지 않는 위대한 발걸음(Mountains Beyond Mountains, Yet an Unstoppable Great Journey) : 역사의 촘촘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와 동북아시아의 대한민국은 지구 반대편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닮은 거울과 같다는 깊은 통찰에 다다르게 됩니다.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칠고 가파른 산맥들, 강대국들의 끊임없는 간섭과 제국주의의 침탈 속에서도 결코 국가적 주권과 민족의 자존심을 포기하지 않았던 항쟁의 역사, 그리고 고난의 매서운 겨울을 함께 버텨내며 나눔을 실천했던 콩비트와 품앗이의 정신까지. 두 나라는 형언할 수 없는 시련 속에서 빚어낸 진주처럼 눈부시고도 단단한 무형의 가치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아이티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들은 단지 박물관에 갇혀 있는 과거의 박제된 영광이 아닙니다. 식민지의 압제를 부수고 언어의 독립을 이뤄낸 크레올, 재난과 굶주림 속에서도 십시일반 힘을 모으는 콩비트, 그리고 피붙이와 영혼이 온전한 위로를 받는 성스러운 안식처 라쿠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극심한 정치적, 경제적 역경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아이티 국민들을 지탱하는 심장 박동과도 같습니다. 세계의 많은 미디어들이 그들을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라는 차가운 단어로 치부하려 할 때조차, 아이티의 민중들은 1월 1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주무 수프의 따뜻한 온기를 나누고, 험준한 산맥 위 시타델의 굳건한 돌벽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Men anpil, chay pa lou.
Many hands make the load light.
손이 많으면 짐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