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독자 여러분! 오늘은 영국 해군의 역사가 서린 카리브해의 푸른 보석, 앤티가 바부다(Antigua and Barbuda)로 떠나보겠습니다. '앤티가(Antigua)'는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가 스페인 세비야 성당의 성모 마리아(Santa Maria de la Antigua)를 기리며 명명한 것에서, 라틴어 '바부다(Barbuda)'는 이곳에 자생하던 수염 무화과나무(Bearded)에서 따온 국명입니다. 앤티가 바부다는 18세기 대영제국 해군이 카리브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해 구축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1981년 영국으로부터 주권을 인정받은 독립 국가입니다. 특히 201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앤티가 해군 조선소와 관련 고고학 유적지(Antigua Naval Dockyard and Related Archaeological Sites)'는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세계 유일의 조지안(Georgian) 양식 조선소로서 인류 해상 방어 건축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일 년 내내 매일 다른 해변을 즐길 수 있는 365개의 비치'를 보유한 지상낙원이자, 사탕수수 농장과 노예 제도의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선 카리브 문명의 자부심, 앤티가 바부다로 떠나보시겠습니까? 테마여행신문 TTN Korea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시리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멋진 여행을!
▶ 제국의 함대가 닻을 내린 노예들의 피땀, 와다들리(Wadadli: The blood and sweat of slaves where the empire's fleet anchored) : 앤티가 바부다 민중의 저항적 정체성과 굽히지 않는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핵심 키워드는 바로 ‘와다들리(Wadadli)’입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 섬에 일방적으로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붙이기 수백 년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던 아라와크(Arawak) 족을 비롯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와다들리 혹은 왈라들리(Waladli)라 불렀습니다. 비록 유럽인들이 들여온 치명적인 전염병과 무자비한 학살, 혹독한 강제 노역으로 인해 원주민의 명맥은 비극적으로 끊어지고 말았으나, 그들이 남긴 이 고귀한 이름만큼은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입을 거쳐 오늘날까지 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현대 앤티가 바부다 사회에서 와다들리라는 단어는 단순한 지명을 넘어, 외부 침략자들에게 결단코 굴복하지 않는 ‘우리만의 고유한 영토’라는 강렬한 주체성과 문화적 자긍심을 내포한 절대적 상징어입니다.
▶ 참혹한 억압에 맞선 흑인 왕국의 반란, 바크라(Bakra: The rebellion of a black kingdom against cruel oppression) : 앤티가 바부다의 역사에서 두 번째로 주목할 키워드는 ‘바크라(Bakra)’입니다. 앤티가 크리올어(Antiguan and Barbudan Creole)에서 바크라는 직역하면 ‘백인’이나 ‘노예 주인’을 뜻하지만, 그 이면에는 흑인 노예들이 백인 지배층을 향해 품었던 극도의 공포와 뼛속 깊은 원망, 그리고 그들을 전복시키고자 했던 저항 의식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출신 부족이 달라 모어가 통하지 않던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서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은 아프리카어의 문법적 파편과 영어 어휘를 융합해 크리올어라는 새로운 소통의 도구를 발명했습니다. 생사여탈권을 쥔 바크라의 채찍 앞에서도 이들은 이 은밀한 언어로 연대하며 자유를 향한 갈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억압의 사슬을 물리적으로 끓어내고자 백인들의 심장부를 겨눈 극적인 사건이, 1736년 발생한 전설적인 영웅 프린스 클라스(Prince Klaas, 1694~1736)의 대규모 무장 봉기 모의입니다.
▷ 치밀한 무장 봉기 계획과 아칸족의 대관식(The Meticulous Armed Uprising Plan and the Akan Coronation) : 본명이 콰쿠(Kwaku)인 프린스 클라스는 가나(Ghana) 지역 아샨테(Ashante) 제국의 일원이었습니다. 권력 투쟁 속에서 노예 상인에게 납치되어 1701년 앤티가 섬에 도착한 그는 앤티가 의회 의장이자 유력 판사인 토마스 커비(Thomas Kerby)의 소유물이 되었습니다. 뛰어난 지능을 갖춘 콰쿠는 겉으론 철저히 순종적인 수석 노예(Head Slave) 행세를 했으나, 가슴속에는 아프리카 코로만티(Coromantee) 부족의 고귀한 왕족이라는 자의식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려 8년간 감시망을 따돌리며 앤티가 섬을 흑인 주권 왕국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거대한 반란을 치밀하게 기획했습니다. 클라스는 섬 전역의 거대 농장 10곳을 점조직으로 연결했습니다. 압권은 1736년 수도 세인트 존스(St. John's) 외곽에서 벌어진 대규모 의식이었습니다. 아칸족(Akan) 전통 춤사위와 축제로 교묘히 위장한 이 자리에서, 수많은 노예가 운집한 가운데 자신을 ‘코로만티의 왕(King of the Coromantees)’으로 추대하는 대관식을 거행했습니다. 무지한 바크라들은 이를 원주민들의 순진한 오락거리로 치부하며 즐겼으나, 실상 그것은 백인 지배자들의 면전에서 파멸을 선고하고 비웃는 완벽하게 계산된 기만의 전술이자 압도적인 심리적 전복의 카타르시스였습니다. 나아가 영국의 조지 2세(King George II) 즉위 기념 무도회장 관람석 밑에 대량의 화약통을 숨겨 고위층 바크라들을 일거에 몰살시킨 뒤, 섬 곳곳에 매복한 동조자들이 통제권을 장악한다는 대담한 전술이었습니다. 단 하루만 늦게 발각되었더라도 앤티가 바부다는 서반구 최초의 아프리카인 통치 국가로 역사에 남았을 것입니다.
▶ 지배자의 귀를 속인 통쾌한 민중의 리듬, 베나(Benna: The thrilling folk rhythm that deceived the ruler's ears) : 바크라를 향한 물리적 봉기가 진압된 후 백인들의 억압은 더욱 교활해졌으나, 아프리카인들은 결코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칼과 화약 대신 지배자의 눈을 완벽히 속일 은밀하고 강력한 무기, 즉 세 번째 키워드인 ‘베나(Benna)’를 탄생시켰습니다. 베나는 서아프리카 특유의 역동적 선율이 카리브해의 정서와 혼합된 독창적인 구전 가십(Gossip) 음악입니다. 한 명의 선창자를 다수의 코러스가 따르는 선후창(Call-and-Response) 형식으로, 표면적으론 고된 노동을 달래는 흥겨운 민요로 들립니다. 그러나 그 경쾌한 리듬 기저에는 착취 계급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 통렬한 조롱, 그리고 흑인 공동체 내의 긴급한 사회적 뉴스가 교묘한 암호처럼 숨겨져 있었습니다. 문맹을 강요받았던 흑인 노동자들에게 베나는 당대 최고의 '비밀 뉴스룸'이었습니다. 20세기 초반 존 콰쿠(John Quarkoo) 같은 가수들은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은밀한 성적 스캔들, 백인들의 위선을 외설적이고 해학적인 가사로 적나라하게 풀어내어 민중의 맺힌 한을 시원하게 뚫어주었습니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을 능멸하는 내용임을 직감하고 분노했으나, 가사가 즉흥적으로 변형되고 은유로 점철되어 법적 물증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베나는 기득권의 도덕적 우월성을 무너뜨리고 흑인 공동체의 심리적 연대를 다지는 치명적이고 유쾌한 평등의 무기였습니다. 1978년 미국의 문호 자메이카 킨케이드(Jamaica Kincaid, 1949~)가 발표한 단편 『소녀(Girl)』에서도 일상의 깊은 문화적 코드로 등장한 바 있습니다.
▷ 연대의 기록으로 빚어낸 카리브해의 새로운 내일(A new tomorrow for the Caribbean forged by records of solidarity) : 노예들의 육체노동이 깃든 앤티가 해군 조선소부터 프린스 클라스의 장엄한 반란, 지배자의 오만을 전락시킨 민중의 해방구 베나와 고도의 지성을 상징하는 와리에 이르기까지. 앤티가 바부다가 품은 이 다채로운 유산들은, 극한의 억압을 견뎌내고 스스로의 존엄을 되찾은 인류의 위대한 정신적 승리를 증명합니다. 노예제는 폐지되었고 무적함대 역시 카리브해에서 물러갔으나, 착취당해 온 카리브해 국가들이 진정한 자립을 이루기 위한 가시밭길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 탈식민지화의 바람 속에서, 앤티가 바부다를 포함해 영국의 통치 아래 소외되었던 카리브해 연안 10개 영어권 식민지 영토는 중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완전한 정치적 주권과 자립을 쟁취하기 위해 1958년 거대한 연합체인 ‘서인도 연방(West Indies Federation, 1958~1962)’을 결성한 것입니다. 자메이카(Jamaica), 바베이도스(Barbados) 등과 함께 앤티가 바부다 역시 이 연방에 참여하며 주권 국가로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비록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와 경제적 격차로 인해 1962년 해체되고 말았지만, 이 강렬했던 실험이 남긴 ‘서인도 연방 기록물(Federal Archives of the West Indies Federation 1958-1962)’은 카리브해 국가들이 하나 된 목소리로 거대한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적 미래를 개척하려 한 치열한 외교적 노력의 산물입니다. 유네스코는 이 초국가적 연대의 독보적인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이를 2009년과 2011년에 연이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정식 등재하였습니다. 백인 지배자들의 채찍질 아래 뿔뿔이 흩어졌던 노예들의 후손들이 주권국의 대표로서 외교 테이블에 앉아 국제 사회의 주역으로 발돋움하려 했던 가슴 벅찬 연대의 발자취가 오롯이 새겨져 있습니다.
▶ 승자의 역사를 전복한 앤티가 바부다의 빛나는 유산(The Shining Heritage of Antigua and Barbuda Subverting the History of the Victors) :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권력을 쥔 자들이 이름과 기념비를 남겨 역사를 독점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앤티가 바부다가 품고 있는 찬란한 문화유산들은 그러한 통념을 통쾌하게 비웃으며, 단 한 번도 순종적인 희생자로 남기를 거부했던 민중들의 눈부신 투쟁기임을 웅변합니다. 그들은 거대한 영국 군함 앞에서도 ‘와다들리’를 기억했고, ‘바크라’의 폭압 앞에서는 제국의 심장부를 겨누리라 결의했으며, ‘베나’와 ‘와리’를 통해 지배자의 오만을 조롱하고 마침내 다가올 해방의 날을 쟁취했습니다. 기나긴 세월 동안 백인 식민주의자들의 거짓 약속과 뻔뻔한 기만을 가장 뼈저리게 경험했던 앤티가 바부다의 지혜로운 선조들은, 두 번 다시 타인에게 자신들의 존엄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통찰력을 담아 후대에 귀중한 크리올어 속담을 남겼습니다. 제국의 폭력이 남긴 상처를 극복하고, 마침내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인 카리브해의 주인으로 우뚝 선 그들의 빛나는 승리 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요약해 주는 경구로 이 글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Time longer dan twine.
No matter how long it takes, truth and justice will ultimately prevail.
시간은 밧줄보다 길다.
(억압의 밤이 아무리 길어도, 마침내 진실과 자유의 아침은 밝아온다.)